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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1 (수)

    “노란 커튼 보이니? 저기서 서태후가 황제 대신 통치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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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중국 베이징 고궁박물원(자금성)의 양심전 내 동난각 전경. 서태후가 커튼 뒤에서 ‘수렴청정’을 했던 곳이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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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가 자희(慈禧·서태후)가 황제 뒤에서 정치를 주도하던 현장이란다.”

    지난 27일 오전 베이징 자금성 양심전(養心殿)의 동쪽 동난각(東暖閣)에서 한 관람객이 딸에게 말했다. 2015년 복원을 시작한 뒤 10년 만인 지난 25일 다시 문을 연 양심전은 주말을 맞아 방문한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사진애호가 양(楊)씨는 연신 셔터를 누르며 황제와 황태후를 가른 여덟 폭 노란색 가림막을 찍었다. 재개장 뉴스를 보고 예약해 문을 열자마자 달려왔다고 했다. 양심전 안내판에는 “동난각은 서쪽을 향해 앞뒤로 두 개의 보좌(寶座)를 놓고 가운데를 황색 비단 커튼으로 가렸다. 청 말에 두 명의 황태후(慈安·慈禧)가 수렴청정을 펼친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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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륭제의 서재였던 삼희당(三希堂). 신경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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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금성 내에 있는 양심전은 청 중기 이후 여덟 명의 황제가 집무실 및 숙소로 사용한 제국 권력의 심장이었다. 정전과 동난각, 서난각(西暖閣), 서재인 삼희당(三希堂) 등으로 구성됐다. 옹정제는 즉위 직후 아버지 강희제의 건청궁을 버리고 이곳을 집무실로 택했다. 서난각의 근정친현전(勤政親賢殿)에는 옹정제의 친필 편액이 걸려 있었다. 당 태종의 책사 장온고(張蘊古)가 바친 문장 대보잠(大寶箴)의 한 구절을 개작한 “천하가 다스려지고 다스려지지 않고는 나 하나의 책임(惟以一人治天下), 이 한 몸을 위해 천하를 고생시키는 일은 하지 않으리(豈爲天下奉一人)”라는 내용이다.

    관객들은 삼희당으로 몰렸다. 건륭제가 책과 서화를 감상하던 작은 공간이다. 안내원은 “새치기 말라”며 끼어드는 관람객과 실랑이를 했다. 사진을 한장이라도 더 찍으며 꼼짝 않는 관객을 향해 뒷줄의 관람객들은 연신 “빨리빨리”를 외쳤다.

    황제의 서재는 크지 않았다. 광적인 문물 수집가였던 건륭은 동진 시대의 서예가 왕희지(王羲之)의 ‘쾌설시청첩(快雪時晴帖)’, 그의 아들 왕헌지(王獻之)의 초서 명작 ‘중추첩(中秋帖)’에 이어 왕순(王珣)의 ‘백원첩(伯遠帖)’까지 얻자 “세 가지 귀한 보물이 있는 집”이라며 삼희당을 조성했다. 삼희는 “선비는 현인을, 현인은 성인을, 성인은 하늘을 희구한다(士希賢 賢希聖 聖希天)”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자오펑(趙鵬) 고궁박물원 고건축부 주임은 “양심전 복원 사업은 고궁박물원 최초로 철저한 사전 연구를 바탕으로 모든 복원 및 보존 작업을 진행했다”고 인민일보에 말했다. 고건축부 주도로 목재, 채화, 장식, 도배팀 등 14개 복원팀 100여명이 넘는 전문가가 복원작업에 참여했다고 자오 주임은 소개했다.

    양심전은 지난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빈 방문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안내해 함께 차를 마시며 환담했던 곳으로도 전해진다. “큰 눈이 내리더니 때마침 맑아졌다(快雪時晴)”라는 왕희지의 서예 작품을 소재로 두 나라의 공존을 제안했다고 알려진다.

    자금성 측은 관객이 쇄도하자 입장을 통제하겠다는 방침이다. 고궁박물원은 28일 공식 SNS를 통해 “양심전은 공간이 좁아 안전을 위해 현장 상황에 따라 입장 제한 조처를 하겠다”며 “오전 예약 관람객은 양심전을 먼저 방문하고 다른 곳을 관람하기를 권장한다”고 제안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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