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러햄 뉴먼 미국 조지타운대 외교학대학 교수
과거 글로벌 경제 네트워크는 기회 공간
이제는 美·中 등 강대국 강압 수단 이용
트럼프, 공공선 아닌 본인 이해관계 중요
韓, 누구와 어떻게 협력할지 전략 세워야
加·濠·日 등 중견국들과 연대 강화 도모
연대 정부·기업들 모두 함께 목소리 내야
美 주도 공급망 질서 내 韓의 위치 변화
대중 관리 파트너에서 지금은 ‘의문 부호’
韓, 더 이상 전략적 모호성 유지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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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햄 뉴먼 미국 조지타운대 외교학대학·정부학과 교수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같은 중견국에 “과거 글로벌 경제 네트워크는 기회의 공간으로 인식됐지만, 이제는 동시에 ‘취약성의 공간’”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뉴먼 교수는 공저 ‘언더그라운드 엠파이어: 미국이 글로벌 경제를 무기화하는 법’ 등을 통해 ‘무기화된 상호의존(weaponized interdependence)’ 개념을 제시한 국제정치학계의 석학이다. 그는 공급망·금융망 등 세계화를 떠받치는 경제 네트워크가 중앙집중적이고 위계적인 구조를 띠며, 강대국이 이를 강압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음을 설명해왔다. 이러한 분석은 핵심 광물·반도체를 둘러싼 공급망 재편과 미국·중국 패권 경쟁이라는 국제 질서의 최신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틀로 평가받는다.
무엇보다 한국이 처한 구조적 현실을 적확히 보여준다. 그는 “한국 기업들은 강대국의 영향력이 행사되는 경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정책의 핵심 대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미국의 동맹국 압박이 더 이상 ‘중국 견제’라는 목표로만 설명되기 어려워졌다는 점도 한국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뉴먼 교수는 “2차 대전 이후 만들어진 ‘규칙 기반 질서’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더 큰 구조적 변화”라며 “한국은 누구와 협력할 것인지, 경제 관계의 목적이 무엇인지, 개방과 무역 중심 질서를 당연시해온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먼 교수는 한국에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조언했다. 먼저 한국이 ‘시장 다변화’를 통해 캐나다, 호주, 일본 등 비슷한 위치의 중견국들과 더 촘촘히 연결되는 것이다. 그는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 역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다른 중견국 기업들과 함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이달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설에서 중견국들이 함께 행동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또한 한국이 공급망에서 대체될 수 없는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먼 교수는 “한국 기업들은 다른 나라들이 의존하는 핵심 제품들을 많이 만들고 있다. 이는 큰 기회”라며 “미국·중국 등 강대국의 핵심 산업 공급망에서 한국이 얼마나 결정적인 위치를 차지하는지 전략적으로 계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경제안보를 이해하는 유능한 전문가가 정부뿐 아니라 기업 내부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뉴먼 교수와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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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화된 상호의존’은 무엇이며, 한국 등 중견국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세계화를 떠받치는 핵심 네트워크는 평평하지 않고, 고도로 집중돼 있다.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보면 사실상 구글과 애플 두 개뿐이고, 핵심 반도체는 TSMC나 삼성 같은 극소수 기업이 만든다. 국제 금융 거래도 소수의 핵심 은행을 거쳐 이뤄진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같은 강대국은 감시와 배제를 통해 이런 구조를 다른 국가에 대한 ‘강압(coercion)’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의존성 심화는 한국 같은 중견국에는 근본적 도전이다. 한국이 미국·중국의 압박 대상이 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삼성 등 한국 기업을 정책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미국의 대중 수출통제 정책에서 ASML 같은 네덜란드 기업은 갑자기 미·중 경쟁의 한복판에 섰다.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도 같은 상황에 놓였다.”
―미국이 만드는 공급망 질서에서 한국은 어떤 위치인가.
“지금 미국의 정책은 지난 수십 년 중 가장 모호하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조 바이든 행정부에선 한국에 대한 기본 시각이 꽤 비슷했다. 한국은 중국을 관리하는 미국의 노력에 함께하는 ‘불가결한 파트너’였다. 다만 미국 내에서 ‘한국이 과연 그 정도까지 같이 갈까’ 같은 의문이 있긴 했다. 한국과 중국의 경제 관계가 워낙 긴밀해서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 안에서 목표 자체가 충돌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벌이고 있는 관세 전쟁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가하는 압박은 그 관점에서는 설명이 잘 안 된다. 중견국엔 더 큰 혼란이다.”
뉴먼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현 대중 정책에 대해 “한쪽에선 대중 매파가 동맹들에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압박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동조하지 않는다”며 “동맹국 입장에선 딜레마가 커졌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예전처럼 정확한 신호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중국에 엔비디아의 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인 H200 수출을 허용했다.
―한국은 과거 미·중 사이 ‘전략적 모호성’을 추구하기도 했다.
“경제 이슈가 강압의 영역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렇게 모호하게 둘 여지가 줄었다. 중국은 (안보적으로도) 한국에 강압을 행사하고, 미국도 한국에 압박을 가한다. 한국은 아주 어려운 전략 환경을 받아들여야 한다. ‘중국은 경제 파트너이고 안보 위협은 없다’는 인식은 더는 성립하지 않는다. 한국은 이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중국의 경제적 보이콧 등으로 그걸 경험했다.”
그는 ‘무기화된 상호의존’ 질서에서도 강대국이 상호의존성을 효과적으로 쓰려면 동맹국들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강대국이 혼자 밀어붙이면 동맹국들의 ‘우회’가 늘어나고, ‘반발’이 생긴다는 설명이다. 과거 아테네가 경제 협력을 기반으로 ‘델로스 동맹’을 만들었지만 동맹국들로부터 ‘공물’을 걷어 아테네의 금고를 채우자 동맹국들은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아테네를 돕지 않았다. 최근 그린란드 사례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공공선’이 아닌 목적으로 경제적 압박을 썼다. 이는 동맹 구조를 약화시킬 수 있다.
뉴먼 교수는 이 같은 점에서 트럼프 2기 국제 질서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네오-로열리즘’(neo-royalism)을 새롭게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현 국제 질서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뉴먼 교수는 관세 정책을 예로 들며 “트럼프와 그 측근들이 동맹에 양보와 경제적 이익을 끌어내려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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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한국에 관세 인상을 위협했다.
“한국 등 중견국들이 위협이 현실화하기 전 미리 양보해선 안 된다. 한국은 미국에 경제적·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나라이며, 한국을 상대로 한 위협이 실행되면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도 큰 비용이 생긴다.”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대체되기 어려운 한국의 자체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일본은 군사, 하이테크 등에서 자국 기업을 핵심 공급망에 깊이 참여시켜 다른 나라가 의존하도록 한다. ‘불가결성’(indispensability)이라고 부르는 전략이다. 둘째, 다른 파트너들과의 경제 관계를 강화하고, 시장과 관계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같은 (다변화된) 협정, 유럽과의 경제 관계 심화 등이 필요하다. 일본, 한국, 호주를 합치면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 국가들이 함께 움직이는 경우는 드물다.”
뉴먼 교수는 중견국이 협력해 억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2023년 주요 7개국(G7)이 중국을 겨냥해 만든 ‘반강압 조정 메커니즘’이 대표적 예다. 더 중요한 것은 시장 확대 효과다. 그는 중국이 호주의 철강 등 핵심 원자재 수입을 사실상 중단하자 호주 정부·기업이 다른 나라로 수출길을 돌린 사례를 들었다.
―한국 기업에는 조언할 것이 있나.
“한국은 정부와 기업 사이에 대화 구조가 있다. 미국은 그런 구조가 약하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경제안보 전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 중견국 기업끼리도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 가장 큰 위험은 중견국의 기업들이 각자 따로 매우 강력한 정부들과 맞서는 상황이다. 과거 산업계는 예측 가능성을 위해 함께 목소리를 냈는데, 지금은 다음 타깃이 될까 봐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기업들은 최고경영진 수준에서 경제안보를 핵심 의제로 통합해야 한다. 기후변화 다음으로 경제안보는 앞으로 수십 년간 기업이 맞닥뜨릴 핵심 딜레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무기화된 상호의존 (Weaponized Interdependence)=뉴먼 교수와 헨리 패럴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교수가 제시한 개념으로 글로벌 경제를 떠받치는 공급망·금융망·데이터망 같은 핵심 네트워크가 소수 국가·기업에 집중된 구조를 이루면서, 강대국이 이를 감시·차단·배제 수단으로 활용해 다른 국가에 정치·경제적 압박을 가할 수 있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미국이 국제 금융망이나 첨단 기술 공급망을 통해 동맹국과 제3국의 정책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에이브러햄 뉴먼 교수는 …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외교학대학·정부학과 교수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UCB) 정치학 박사·석사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정치경제학 석사·국제관계학 학사 ●‘언더그라운드 엠파이어: 미국은 어떻게 세계 경제를 무기화했는가’ 공저자
워싱턴=홍주형 특파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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