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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5 (수)

    “한·일 제조업 美로 옮겨도 中 따라잡기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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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준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 인터뷰

    美 상호관세 위헌 판결 이후 한미 통상전략 진단

    서울경제


    미국 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 조치에 대해 위법판결을 내리면서 글로벌 통상 질서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판결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강한 불만을 표출하며 미국 무역법 ‘섹션 122’를 근거로 글로벌 관세를 10%에서 15%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사법부 판단에도 관세를 지렛대로 한 압박 기조를 쉽게 거두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미국이 관세 압박과 투자 유치를 통해 한국·일본 등 동맹국의 제조업을 자국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설령 일부 이전이 이뤄지더라도 중국을 따라잡기에는 구조적으로 한계가 명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일·독 미국으로 공장 옮겨도 글로벌 지형 바꾸기 힘들어”

    장하준 영국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는 23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제조업 규모와 구조를 감안할 때 한국·일본·독일 기업 일부가 미국에 공장을 옮긴다고 해서 글로벌 제조업 지형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미국의 세계 제조업 생산 비중은 최근 기준 약 16~17% 수준이고, 중국은 30% 안팎이다”며 “중국은 제조업 생산 비중에서 미국의 두 배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일본은 약 5.6%, 독일은 4.9%, 한국은 2.7% 수준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은 워낙 덩치가 커서 한국·일본·독일이 자국의 제조업을 20%씩을 미국으로 옮긴다고 해도 미국 제조업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에서 20%로 오르는 정도고 중국을 추월하거나 기본적인 판이 바뀌지 않는다”며 “현실적으로 한국과 일본, 독일이 이렇게까지 제조업을 미국으로 옮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고 내다봤다.

    실제 이들 국가는 자국 내 일자리와 산업 생태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핵심 제조 역량을 대거 해외로 이전하기 어렵다. 미국이 기대하는 제조업 회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관세는 트럼프의 도깨비 방망이…美 중간선거까지 한국은 시간 벌어야”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통해 해외 기업의 미국 내 투자를 압박해 왔다. 장 교수는 “관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종의 도깨비 방망이와 같다”며 “무엇이든 관세로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몽상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장 교수는 특히 한국 정부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서둘러 한미 무역합의와 관련한 법을 만들거나 구조적 양보에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장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판결 직후 꺼내든 무역법 섹션 122의 실효성부터 짚었다. 그는 “미국 무역법 제122조는 최대 150일까지만 적용할 수 있고, 연장하려면 의회의 비준이 필요하다”며 “공화당이 의회에서 4석이 우세한 상황에서 몇 명만 입장을 바꿔도 비준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모든 국가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관세라는 점에서 너무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장 교수가 반복해서 강조한 핵심은 ‘시간’이다. 그는 “지금 한국도 최소한 미국 중간선거까지는 시간을 끌어야 한다”며 “미국은 관세 권한이 기본적으로 의회에 있는데 의회 구성이 바뀌면 정책도 확 바뀐다”고 말했다.

    미국이 한국에 대미 투자와 관련한 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강하게 선을 그었다. 장 교수는 “미국 대법원에서 판결이 나왔는데도 정작 미국은 관련 법을 제대로 만들지 않고 있다”며 “그런 상황에서 왜 한국만 먼저 법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자유무역협정(FTA) 등 주요 통상 사안은 한국 역시 국회 비준이 필요하다”며 “미국이 우리에게 관련 법 제정을 요구한다면 우리도 미국에 법적 근거를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과 속도 비교할 필요 없어…성급한 법제화가 위험”

    최근 일본이 미국에 대한 투자를 비교적 빠르게 결정한 것과 관련해 한국도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속도를 비교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장 교수는 “각국의 산업 구조와 대미 관계, 안보 환경이 다르다”며 “한국보다 앞서 대미투자 프로젝트를 발표한 일본은 이와 관련된 법안을 준비하는데 우리는 이렇게 서두르면 오히려 발이 묶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는 이 정도까지 협력하겠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를 법으로 고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지금 투자할 아이템이 있다고 해도 4~5년 뒤 아이템이 고갈됐을 때 법에 묶여 억지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장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배경에 대해 “세수 확보 목적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미국 기업을 대신해 외국 기업을 압박하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 기업들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일부를 제외하면 투자 여력도, 생산 능력도 매우 낮다”며 “그래서 한국·일본·독일을 압박해 투자를 끌어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관세는 자해행위, 결국 소비자들 부담 안아”

    관세 정책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이어졌다. 장 교수는 “현재 미국 상황에서 관세는 자해 행위에 가깝다”며 “모든 나라, 모든 제품에 관세를 매기면 결국 소비자들이 여기저기서 얻어맞는 구조가 된다”고 말했다.

    무역적자 축소 효과도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최근 무역적자를 보면 오히려 더 커졌다”며 “재정적자는 조금 줄었을지는 모르지만 위헌판결 이후 관세 환급이 이뤄지면 재정 부담은 다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 교수는 미국 경제 전반에 대해 “AI를 제외하면 활성화된 산업이 거의 없다”고 진단하면서 AI 산업 역시 거품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신기술이 나올 때는 주목을 받지만 거품이 커지다 결국 꺼지는 경우가 많다”며 “1년 뒤 AI 거품이 꺼지면 금리 정책도 급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서도 “반도체와 자동차 외에는 수출이 잘 늘어나지 않는 구조”라며 “미국의 거품이 꺼지면 한국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으므로 반도체 산업의 경우 기금 조성 등을 통해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향후 한국의 산업 전략으로는 재생에너지, AI, 반도체 경쟁력 강화와 함께 중견 제조업 육성을 꼽았다. 그는 “독일이나 스위스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의 중견 기업들이 강하다”며 “한국도 이런 기술·능력을 가진 중견 기업들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활용 가능한 협상 카드 충분…끌려다니지 말아야”

    대미 협상에서 한국이 활용할 카드도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배를 만드는 능력이 한국은 1년에 800척 정도지만 미국은 10척 정도에 불과하다”며 “우리가 미국에 조선소를 지어줘도 미국이 과연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느냐고 되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조지아주에서 한국의 기술자들이 체포된 사례를 언급하며 “미국은 한국 기술이 필요하므로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향후 정치 지형 변화에도 주목했다. 그는 “미국 중간선거에서 하원은 민주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고 상원도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할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트럼프의 손발은 크게 묶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지금은 한국이 먼저 나서서 자세를 낮출 때가 아니라 원칙을 지키며 상황을 지켜볼 때”라며 “서두르지 말고 약속을 최소화하고 선택지를 남겨두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욱 기자 myk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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