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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신사건립 강제모금 면(面)까지 조직적으로 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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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향토사학자인 심정섭 씨가 제107주년 3·1절을 맞아 일제가 면(面) 단위까지 신사건립을 위한 강제모금을 자행했다는 증거서류를 공개하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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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가 조선의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신사(神社) 건립 강제모금을 전국 면(面) 단위까지 조직적으로 진행했다는 증거 서류가 공개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백강 조경한 선생의 외손자이자 향토사학자인 심정섭 씨(83)는 24일 제107주년 3·1절을 맞아 옥룡신사 조영(건립) 봉찬회 납입고지서 1장, 영수증 12장을 공개했다.

    납입고지서 발행날짜는 1938년 8월 1일이었고 발행자는 당시 옥룡면장이었다. 옥룡신사 설립비 납부 기간은 1938년 9월 말까지이며 납부 장소는 전남 광양 옥룡면사무소였다. 납입고지서는 옥룡면 주민들에게 보내졌다.

    당시 주민들에게 강제로 부과된 옥룡신사 설립비는 20원부터 1원 31전까지 다양했다. 20전은 현재 화폐가치로 2000원 정도, 1원은 1만 원가량이다. 당시 조선인들은 대부분이 소작인이어서 설립비를 강제로 내는 데 부담을 느꼈다는 게 심 씨의 설명이다. 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낸 설립비에 대해 옥룡면사무소 직원이 영수증을 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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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토사학자인 심정섭 씨가 제107주년 3·1절을 맞아 일제가 면(面) 단위까지 신사건립을 위한 강제모금을 자행했다는 증거서류를 공개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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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 건립과 참배는 일제의 대표적인 조선인 신민화 정책이다. 역사학계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전국에 신사를 세워 1945년 8월 광복 당시 조선에는 신궁(神宮) 2곳, 신사(神社) 77곳, 면 단위에 세워진 작은 규모의 신사 1062곳 등 1141개에 달했다고 한다고 설명한다.

    광복 이후 옥룡신사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신사가 철거됐다. 신사 터는 대부분 공원, 학교, 교회 등 공공장소로 이용됐다. 현재 한센인들에게 참배를 강요했던 전남 고흥군 소록도갱생원 신사만 유일하게 남아있다. 소록도가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살던 외진 섬이어서 철거되지 않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일제는 앞서 1918년부터 1929년 서울 남산에 조선신궁을 건립해 일본신 아마데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 메이지 천황을 안치하고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이어 1940년 부여신궁을 착공하고 1942년 황도수련원을 설치해 경성제국대학에서 강좌를 열기도 했다.

    신사참배 강요에 앞장선 친일단체는 조선신궁(신사) 봉찬회다. 이 단체는 1933년 10월 조선총독부 주도로 조선호텔에서 창립됐다. 단체 회장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부회장은 조선총독부 내무국장, 이사는 조선총독부 고위 관료들이었다. 조선인으로는 박영효, 김신석 등이 참여했다.

    단체 지부장은 13도 도지사였고 친일 인사들에게 제례 비용 등 운영기금을 모았다. 조선신궁 봉찬회 회원은 현재 화폐 가치로 10만 원에서 1000만 원 이상으로 5단계로 구분됐다. 기부금·헌납물 강제모금은 정무총감부터 시장·군수, 시도위원, 읍면 단위 위원들에게 치밀하게 할당돼 이뤄졌다. 단체는 1935년 1월 신궁 봉찬회 노래를 공모해 3편을 선정했다. 이후 노래 3편을 전국 학생들에게 부르게 강요했다.

    심 씨는 “민족정신과 혼을 말살하려 했던 일제의 만행은 서구 열강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다”며 “신사 건립과 참배는 조선인들의 얼을 말살하기 위한 야만적 정책이었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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