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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6 (목)

    [기고] 제도에 막힌 ‘시니어 노동’ 고령사회가 더 가난해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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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더 사는 시대

    20년 전 규제로는 일자리의 질 올라가지 않아

    일본은 유연한 재취업 통로 먼저 열어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 65세 이후 2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시대에, 일할 수 있는 제도는 여전히 20년 전 기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의 평균 기대수명은 2024년 기준 83.7세(남 80.8, 여 86.6)까지 올라왔다. 65세 전후에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난다면 이후 삶이 15년, 20년 단위로 길어진다. 문제는 ‘수명’이 아니라 ‘소득의 지속’이다.

    국민연금만으로 노후를 버티기 어려운 현실은 통계가 말해준다. 국민연금공단 급여지급 통계(월평균 1인당 지급액)는 60만 원대 중반 수준으로 잡힌다. 노후 소득 공백이 구조화돼 있다 보니, 고령층은 일하고 싶어서라기보다 일하지 않으면 생활이 불안해지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한국의 고령층 고용률은 높다. 통계청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용률은 36.2%(2022년 기준)로 제시된다. 중요한 질문은 단순히 “일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일로,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안정적으로 일하느냐”다.

    이데일리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


    일하고 싶어도, 기업이 합법적으로 쓰기 어려운 구조

    현장에는 이미 수요가 있다. 경험 많은 인력이 필요한 단기 프로젝트, 인수인계, 품질관리, 고객 상담, 교육·멘토링 같은 일이 그렇다. 하지만 이 수요가 ‘정규직 재고용’으로만 흡수되기엔 기업 부담이 크다. 임금 체계, 인사관리, 직무 재설계, 노사 이슈까지 한꺼번에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프리랜서 계약으로 우회하면 다른 리스크가 생긴다. 업무 지휘·감독이 수반되는 순간 “실질은 근로자인데 계약만 외주”라는 시비가 붙고, 파견·도급 경계가 애매한 영역은 늘 분쟁 가능성을 안고 간다. 결국 시장은 회색지대로 밀리고, 고령자는 불안정한 형태로 남는다.

    이 구조에서 공공 단기 일자리로 쏠림이 발생한다. “일자리 개수”는 늘어도 “일자리 질”이 오르기 어렵다. 여기까지가 지금 한국 고령 고용의 핵심 문제다.

    정년 연장이나 재고용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년 연장·재고용 논의는 필요하다. 다만 이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령층 노동의 현실이 “한 조직에 오래 남는 고용”보다 “여러 현장을 오가며 필요한 만큼 일하는 고용”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상시 인력으로 안고 가기보다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기간만” 쓰고 싶어 한다. 수요와 공급이 모두 ‘유연성’을 원하지만, 제도는 이를 담아내지 못한다.

    일본이 열어둔 ‘단기·재진입’ 통로

    일본은 1994년 개정으로 60세 이상 파견 허용 업무 제한을 사실상 전면 철폐했다.

    일본 제도에서 “짧게 일하기”와 “퇴직 후 빠르게 다시 들어가기”를 제도권 예외로 설계해 둔 셈이다.

    첫째, 일본은 이른바 ‘일용(30일 이내) 파견’에 원칙적 금지 규정이 있지만, 예외 대상에 60세 이상이 포함된다. 후생노동성 자료에 “60세 이상”이 예외 대상임이 명시돼 있다. 이 장치는 고령층이 하루·일주일 단위로 일하는 형태를 제도적으로 담는 역할을 한다.

    둘째, “퇴직 후 1년 이내에는 같은 사업장에 파견 형태로 돌아오기 어렵다”는 취지의 규정에서도, 60세 이상 정년퇴직자는 예외로 분류된다는 설명이 후생노동성 자료에 확인된다. 즉 숙련 인력이 퇴직 직후에도 ‘합법적 통로’를 통해 필요한 현장에 재진입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런 유연성은 결과로도 보인다. 일본의 65세 이상 고용(취업) 관련 수치는 2024년에 65세 이상 취업자가 930만 명으로 늘었고, 65세 이상 고용률이 25.7%로 상승했다는 자료가 있다.

    고령자 일자리는 청년 일자리와 제로섬이 아니다

    그런데 ‘파견 완화는 청년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반론이 늘 등장한다. 그러나 이 논점은 핵심을 비켜 간다. 지금도 고령층은 이미 일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만 봐도 65세 이상 고용률이 높다. 문제는 ‘있던 노동’이 회색지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제도권 통로를 열어주는 것은 신규 비정규직을 찍어내는 정책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고령 노동을 합법·투명한 고용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기업은 불법 시비를 줄이고, 고령자는 선택권과 이동성을 얻는다. 시장은 음성화된 수요를 양성화한다.

    “배려”가 아니라 “자격”을 주는 정책

    고령층에게 필요한 것은 시혜성 단기 일자리 확대만이 아니다. ‘시장에서 당당히 일할 수 있는 자격’과 ‘합법적 통로’다.

    정책의 방향은 분명해진다. 단기·간헐 노동 수요를 제도권으로 담아낼 예외 규정 설계, 퇴직 숙련 인력이 현장에 재진입할 수 있는 합법적 경로 마련, 기업이 “정규직 재고용”과 “불안한 우회계약” 사이에서 선택 강요를 받지 않게 하는 중간지대 제도화 등이다.

    우리는 오래 살라고 말해왔다. 이제는 “오래 일할 수 있게” 제도를 바꿔야 한다. 질문은 이것 하나로 정리된다.

    우리는 65세에게 더 오래 살라고 말하면서, 왜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제도는 만들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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