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매일 정구철 기자]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은 사회 구성원 다수의 보편적 상식과 합의에 따라 만들어진다.
법이 추상적 규범에 그치지 않고 현실 속에서 권위를 갖기 위해서는, 그 해석과 집행 역시 국민적 상식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특히 법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판사의 책무는 막중하다.
판결 하나가 개인의 삶은 물론 공동체 전체에 중대한 파장을 미치기 때문이다.
판사에게 단순한 법률 지식 뿐 아니라, 냉철한 이성과 균형 감각, 그리고 사회적 책임과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이유다.
최근 일련의 정치적 사건 판결을 둘러싸고 사법부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지귀연 판사는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통상적인 구속기간 산정 방식을 벗어난 계산법으로 구속취소를 결정해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그동안 날짜로 계산했던 구속기간 산정 방식을 유독 해당 사건만 시간으로 산정해 형평성 논란을 촉발시켰다.
또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둘러싼 대법원의 신속한 파기환송 결정 역시 정치적 파장 속에서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다.
상식적이지는 않은 판결이다.
이른바 '50억 클럽' 의혹으로 기소된 곽상도 전 의원에 대한 공소기각과 아들에 대한 무죄 판결,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서 김건희 씨의 무죄 판단 등도 국민적 의문을 키웠다.
48억원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던 '김건희 집사' 김예성씨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명태균씨의 부탁을 받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김영선 전 국회의원의 공천을 위해 압력을 행사한 녹취록까지 공개됐지만 명태균과 김영선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자신의 공천을 위해 김건희씨 측에 고가 그림을 제공한 김상민 전 부장검사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같은 판결의 학습효과로 지방선거 공천을 앞두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유사 사례가 잇따라 발생할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법원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판결은 증거와 법리에 따라 내려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최근 각종 의혹 사건에서 반복되는 무죄 또는 공소기각 결정은 법리적 타당성과 별개로 "과연 상식에 부합한가"라는 질문을 낳고 있다.
문제는 개별 판결의 논란을 차치하고 사법부가 그 판단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을 보였는가 하는 점이다.
사법부의 독립은 헌법이 보장한 가치지만, 비판과 검증으로부터의 면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독립은 외압으로부터의 자유이지, 국민으로부터의 단절이나 독립은 아니다.
아무런 해명 없이 신뢰를 당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 현대사에는 사법부가 권력에 편승해 정의를 외면했던 어두운 기억도 있다.
군사독재시절, 조작된 인혁당 사건으로 대법원이 8명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불과 18시간만에 사형을 집행했다.
대법원은 무려 32년 뒤에 이들에게 다시 무죄를 선고하고 사과했지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 역사에 오점으로 기록된 사법부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사법부의 일탈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재판의 공정성이나 객관성을 위해 반드시 사법부의 독립은 이뤄져야 하지만 사법부의 독선으로 변질돼서는 안된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은 언제든 부패할 수 있고 사법부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사법부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변질될 경우, 정치권을 좌우할 수도 있다.
사법 개혁 논의가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배경에도 이러한 누적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재판의 공정성과 투명성은 제도적으로 보완돼야 한다.
사법부는 사회 정의를 위한 최후의 보루다.
그 권위는 스스로 주장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 속에서만 성립한다.
최근의 논란 속에서 "사법부의 판결에 가장 먼저 AI가 도입돼야 한다"는 비판 여론까지 나오고 있다.
사법부는 이를 부끄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독립과 책임, 권위와 신뢰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사법부는 흔들림 없는 정의의 이름으로 설 수 있다.
정구철 충북북부본부장 공직선거법,판결,사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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