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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7 (금)

    수많은 취미를 전전해도 결국 나는 ‘게임’ [플랫][퇴근 후,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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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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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근 후는 온전히 나를 위한 회복의 시간입니다. 일상에 지쳐 쉬는 방법을 잊은 당신에게, 경향신문 여성 기자들이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의 일상을 공유하는 [퇴근 후, 만나요]를 연재합니다. 누군가의 사소한 일상이 영감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성공한 3040 여성의 취미라면 뭔가 ‘갓생’에 어울리는 이미지여야 하는 것 아닐까. 근 20년간 나는 나만의 아름다운 취미를 갖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킥복싱도 해보고, 기타와 피아노도 배워보고, 유료 독서모임에도 참여해봤다. 모두 재밌었지만 결국 나는 한 자리로 돌아왔다. 게임.

    이것은 갓생이라는 말과는 도무지 화합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취미이므로, 누군가 취미를 물어보면 ‘달리기’라고 가짜 대답을 내놓곤 한다.

    경향신문

    코에이 삼국지3, 세가 골든액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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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부터 나는 게임이 좋았다. 나때는 콘솔 게임이 널리 보급된 시대는 아니었으므로 주로 컴퓨터 게임을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다니던 한자학원의 컴퓨터는 늘 한두 살 많은 오빠들의 차지였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삼국지나 황금도끼 같은 고전 게임을 하곤 했다. 게임에 열중한 사이 누군가 내 책가방에 내 이름으로 유치한 언어유희 낙서를 해놓았고, 집에 와서 그걸 발견하고 분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예컨대 이름이 김주희라면 ‘김주둥’ 같은 식의 낙서였다. 유치할수록 더 잘 긁히고,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

    게임이라면 모바일·패드·콘솔·PC를 가리지 않고 기회가 닿는 대로 즐기는 편이지만, 한 10년 전부터는 하나의 게임에 빠져 있다. 스스로를 재활원에 가두려는 중독자처럼 깔았다 지웠다를 열 번쯤 반복했지만, 그 게임은 지금도 바탕화면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 내가 결국 이 자리로 돌아오고야 마는 이유는, 마치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해롱이에게 다시 약을 하자고 유혹하는 이처럼 나를 끊임없이 부르는 혈육이 있기 때문이다.

    ‘가능?’


    주로 주말 저녁, 여느 때처럼 세 살 많은 언니에게서 짧은 카톡이 온다. 확인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왜 확인 안 해’ ‘오늘 일찍 잘 각이야?’ 같은 재촉이 이어진다. ‘11시 이후 가능할 듯’이라고 답하면 ‘ㅇㅋ’ ‘늦으면 1분에 꿀밤 한 대씩’이라는 답이 곧바로 돌아온다. 첫째들은 DNA에 폭력적인 성향이 새겨져있을 것이다. 서둘러 집안일을 마치고 이르면 오후 10시, 늦으면 11시쯤 책상 앞에 앉는다.

    경향신문

    게임메이트 언니와의 카카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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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빠져 있는 게임은 공포 게임인데, ‘얼음땡’ 같은 술래잡기 게임이라고 보면 된다. 4명의 생존자가 살인마에게 들키지 않고 미션을 모두 수행해야 탈출할 수 있다. 살인마 눈에 띄어 두 대를 얻어맞으면 기절해서 갈고리에 걸린다. 다른 생존자가 얼음땡에서 ‘땡’을 하듯 나를 구출해줘야 다시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

    나는 언니와 통화를 하면서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고 같이 모여서 미션을 수행한다. 갈고리에 걸린 상대방을 구하기 위해 살인마의 눈을 피해 달려가고, 때로는 서로를 위해 죽는다. 손발이 잘 맞아 미션을 모두 끝내고 둘 다 살아남아서 탈출하는 날은 기분 좋게 잠에 든다.

    “우리 나중에 환갑이 돼서도 이 지경으로 살고 있을까?”


    한참 게임을 하다가 우리는 종종 서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예순이 넘어서도 취미가 게임이라고 말하기는 부끄러울 것 같지만,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오래오래 즐겁게 게임하고 싶다.

    갓생바라기.

    중견 기자. 인류애가 느껴질 땐 눈물이 차오르는 ENFJ.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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