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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8 (토)

    “피아노 고치러 방방곡곡… 전국 국숫집 손바닥처럼 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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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주말]

    국수 맛집 모은 책 펴낸

    피아노 조율사 조영권

    조선일보

    조영권씨는 “피아노 조율사와 요리사는 둘 다 장인 정신이 필요한 일이란 점에서 비슷하다”고 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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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 케이스를 열어보면 현(피아노 줄) 230여 개가 쭉 걸려 있어요. 꼭 국수가락 같지요.”

    32년 차 피아노 조율사인 조영권(56)씨는 미식계의 숨은 고수다. 미식가들은 그의 블로그 ‘퍄노조율사’에 올라온 식당이라면 믿고 찾는다. 전문 분야는 혼밥. 혼자서 한 끼 해결하기 알맞으면서 맛도 좋은 중식·칼국수·만둣국·냉면집 수천 곳이 블로그에 빅데이터처럼 쌓였다. 전국 각지로 출장 다니며 들른 식당에서 먹은 음식과 피아노 이야기를 일기 쓰듯 올린다. 가정식처럼 소박하고 투박한 글이 오히려 읽는 이들의 식욕을 자극한다. 최근 방송 프로그램에 ‘짜장 미식가’로 출연하기도 했다.

    조씨가 전국 국수 맛집 탐방기를 모은 책 ‘국수의 맛’(린틴틴)을 최근 펴냈다. 그가 앞서 펴낸 ‘중국집’과 ‘경양식집’에 이은 세 번째 책. 조씨는 “간판만 봐도 맛집 여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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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판을 읽으면 맛이 보인다

    -간판만 보고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간판이 오래됐다면 오래 영업했다는 표시입니다. 역사가 어느 정도 맛을 담보한다는 얘기죠. 가끔 간판에 적힌 전화번호 국번이 두 자리인 식당이 있어요. 국번이 세 자리로 바뀌었는데, 옛 번호 흔적이 남은 거죠.”

    -맛집을 판단하는 다른 노하우도 소개한다면.

    “식당에 50~60대 손님이 많으면 맛집일 가능성이 커요. 똑같은 음식이 모든 테이블에 올라가 있어도 안심이죠.”

    -왜 국수·중식·경양식집만 다니나요.

    “혼자 빨리 먹을 수 있어서요.”

    -요즘은 혼밥 하기 쉬워지지 않았나요.

    “지방에 가면 여전히 1인분은 팔지 않는 식당이 많아요. 한 중소 도시에서 부대찌개집을 찾아갔어요. 2인분 이상만 주문 가능해서 ‘2인분 먹을게요’라고 했는데도 거절당했습니다.”

    -같은 국수라도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면서요.

    “지역색이 굉장히 뚜렷해요. 경북 안동에서는 국수를 반죽할 때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요. 섬진강을 낀 전남 구례·곡성과 경남 하동에는 재첩으로 국물을 내지요. 강원도와 제주도에는 메밀면, 전라도에는 팥칼국수, 충북에는 어탕국수 잘하는 식당이 많아요. 지역 특산물과 관계있는 것 같아요.”

    -가장 지역색이 뚜렷한 국수를 꼽는다면.

    “광주광역시 ‘마른모밀(메밀)’입니다. 광주식 마른모밀은 면과 장국이 따로 나온다는 점이 일본 모리소바와 비슷해 보이지만, 채반이 아닌 움푹하고 넓은 그릇에 나와 다양한 형태로 맛볼 수 있어요. 따뜻한 육수도 딸려 나와서, 메밀면을 시원하고 따뜻하게 두 가지로 즐길 수 있어서 재미있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국수는 뭔가요.

    “부산 ‘세정’의 ‘한치모밀쟁반’이요. 딸과 둘이서 여행 갔다가 먹었는데, 급랭해 얇게 썬 한치가 소면이 아닌 메밀국수와 함께 나온다는 것도 특별하지만 양념장이 너무 맛있었어요. 딸이 부산에서 유명한 암소갈비 식당보다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중국집도 지역색이 있다고요.

    “국수만큼은 아니지만 있어요. 볶음밥에 나오는 달걀이 지역마다 달라요. 인천과 부산은 반숙 달걀 프라이가 밥 위에 올라오고, 전라도에선 오므라이스처럼 풀어서 부친 달걀로 밥을 덮어요. 서울은 계란을 풀어서 밥과 함께 볶지요.”

    -책에 소개하지 않은 국숫집이 있나요.

    “서울 서초동 ‘신숙(新宿)’이요. 일본어로 신주쿠죠. 일본에서 태어나 살다가 귀국한 할머니가 차리신 걸로 알고 있어요. 이 집 ‘해초칼국수’가 독특한 게 뭐냐면, 반죽할 때 해초 가루를 넣어서 국수가 푸르스름해요. 육수는 버섯과 해물이 들어가서 건강한 맛이고요. 그리고 곁들여 나오는 김치가 끝내줘요. 삼박자가 딱 맞죠.”

    -그런데 왜 뺐나요?

    “고민 많이 했어요. 책에는 일로 갔다가 찾은 국숫집들을 소개했는데, 이 집은 단지 국수만 먹으러 가기 때문에 뺐어요. 가짜로 만들어 넣을 수는 없잖아요.”

    -인기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와 닮았습니다.

    “샐러리맨이 출장 가서 혼자 식사한다는 점이 같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어요. 몇 편 봤는데 비슷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고독하지 않습니다. 외롭다는 생각을 아예 안 해봤어요. 피아노 조율을 마치고 허기진 배를 이끌고 식당에 홀로 앉아 앞에 놓인 음식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 몰라요.”

    -식당은 어떻게 고르나요.

    “추천받거나 소셜미디어(SNS)·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식당을 수첩에 적어둬요. 출장 갈 때 수첩을 뒤적여 가까운 곳을 찾아가요. 별로면 지우고, 맛있으면 날짜와 함께 간단하게 한두 단어 메모해 놓습니다. 이노가시라 고로(고독한 미식가 주인공)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출장지에서 식당을 찾는 반면, 저는 먹을 식당을 미리 정해 놓고 출장에 나선다는 점도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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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튜닝해머, 롱노즈 등 피아노 튜닝 도구들과 함께 조영권씨가 전국으로 출장 다니며 먹어본 맛집을 메모해 놓은 수첩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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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출장 다니다 식도락 득도

    조율사는 피아노를 고쳐달라는 의뢰가 들어오면 전국 어디건 가야 하는 직업이다. 낯선 식당에 도전해야 할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조씨는 “이왕 먹는 거 맛있게 먹자 했다가 식도락에 눈떴다”고 했다.

    -조율사니까 음감(音感)은 예민할 것 같은데 미감(味感)도 타고났나요.

    “둘 다 후천적으로 길러졌어요. 많이 들으니 소리를 가늠하는 귀가 트였고, 많이 먹으니 맛을 구분하는 혀가 길러졌죠.”

    -어떻게 조율사가 됐나요.

    “어릴 때부터 평생 먹고살려면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보건전문대에 합격했는데, 입학을 앞두고 진학을 포기했어요. 2년 방황하다가 조율사의 길을 택했습니다.”

    -다른 기술직도 많지 않나요.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피아노 조율하는 장면을 본 게 잊히지 않았어요. 피아노 내부는 상상을 초월한 모습이었죠. 조율사가 작은 망치로 두드리며 음을 하나씩 조율하는 장면이 숭고하기까지 했어요.”

    -기술 다음으로 조율에서 중요한 게 있다면.

    “인간관계요. 피아노는 정기적으로 조율해야 해요. 한번 일을 맡긴 손님은 계속 찾아옵니다. 멀리 이사 가도 연락하는데 절대 거절하지 않습니다. 먼 길 마다치 않고 달려가다 보면 신뢰가 쌓이죠.”

    -지금까지 피아노를 몇 대나 조율했나요.

    “32년 동안 3만대 정도? 예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1년에 300대 이상 조율합니다.”

    -그동안 조율사 일도 많이 바뀌었죠.

    “디지털 피아노가 늘면서 일이 많이 줄었죠. 전자음은 조율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웨딩홀에서도 피아노 연주 대신 MR(반주 음원)을 트는 경우가 많죠. 어쿠스틱 피아노 조율 방식도 바뀌고 있어요. 저는 여전히 소리굽쇠를 튕겨서 나는 음을 듣고 기준음을 맞추지만,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음을 맞추는 조율사도 많습니다. 후배들이 점점 줄어 안타깝지요.”

    -문 닫는 노포(老鋪)를 보면 남 일 같지 않겠어요.

    “조율사라는 직업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겁니다. 피아노 학원처럼 어쿠스틱 피아노를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하는 곳이 여전히 있어요. 전통 교재가 다 클래식 곡이라 디지털 피아노만으로는 가르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전보다 피아노 학원 업무 비중이 많이 늘었어요. 공연장·교회 출장도 자주 나가죠. 가정집은 이제 거의 없고요.”

    -조율사와 요리사 인생이 비슷하다고요.

    “장인 정신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가끔 일이 지겨울 땐 최고의 음식을 내기 위해 한평생 주방에서 보낸 노포 주인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습니다. 나도 저렇게 한우물을 파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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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권씨가 펴낸 '국수의 맛'./린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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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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