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겹살 시대 집구석 고깃집 개업
식비 아끼려 20만원 불판 샀다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마트용산점에서 소비자들이 880원 탄탄포크 삼겹살목살을 구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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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쇼핑 앱 결제 내역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무쇠 캐스트 아이언 그릴 팬 12만 원, 탐침형 요리 온도계 3만 원, 연기 먹는 탁상용 미니 환풍기 5만 원. 도합 20만 원이 찍힌 이 영수증의 목적은 역설적이게도 식비 절약이다. 다가오는 3월 3일 삼겹살 데이를 앞두고, 무자비하게 치솟은 외식 물가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30대 직장인의 비장한 출사표가 이 결제 내역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포털에 따르면, 서울 지역 식당의 삼겹살 1인분 평균 가격은 2만 1000원 선마저 훌쩍 넘어섰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1만 6000원대였던 서민의 소울푸드가 이제는 쳐다보기도 부담스러운 금겹살이 된 것이다. 여기에 기후 변화와 작황 부진으로 쌈 채소 가격마저 폭등하는 금추 현상까지 겹치면서 식당에서 상추를 더 달라고 하기도 눈치가 보일 지경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표도 확실히 꺾이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연간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물가 상승분을 뺀 가계의 실질 소비지출은 전년 대비 0.4% 줄어들며 5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반면 전체 지출에서 식료품과 식사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30.4%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밥값 부담이 극에 달하면서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등 각종 소비 지표를 살펴보면 고물가 부담에 가계의 실질 외식 횟수와 외식비 지출 비중이 눈에 띄게 꺾이는 추세가 확연한 숫자로 확인된다. 둘이서 고기 3인분에 소주 한 병, 찌개 하나만 시켜도 8만원이 가볍게 증발하는 팍팍한 시대 앞에서, 사람들은 식당 문을 박차고 나와 집구석 고깃집을 개업하기 시작했다.
대형 마트나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면 식당의 반의반 값에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합리적인 계산에서 출발한 방어적 소비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2030 세대 특유의 짠한 소비 셈법을 마주하게 된다. 기왕 집에서 먹을 거, 식당 화력과 감성을 완벽하게 구현하겠다며 기어코 수십만 원어치 장비를 결제하고 마는 것이다. 당장 오늘 저녁 식비 3만 원을 아끼려다 고기 굽는 장비에 20만원을 태우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영수증이 탄생한다.
누군가는 고기 몇 번 굽겠다고 그 비싼 불판을 사느냐며 혀를 찰지 모른다. 하지만 이 영수증 뒤에는 치밀한 손익분기점 계산이 깔려있다. 오늘 장비에 20만 원을 썼더라도, 1인분에 2만 원씩 하는 식당 대신 앞으로 집에서 열 번만 구워 먹으면 무조건 이득이라는 장기 투자 심리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인플레이션의 파도 속에서, 호기롭게 외식 카드를 긁는 대신 초기 자본을 투자해 생활비를 방어하겠다는 눈물겨운 자구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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