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빛나리 위원장 “글쓰기는 노동, 작가는 노동자”
시·소설·에세이·칼럼·웹소설·웹툰 등 장르 망라
‘불공정 계약·만성 저임금’ 공론화 활동 본격화
오빛나리 작가노조 위원장은 1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해 ‘예술이냐 노동이냐’의 이분법을 넘어 ‘작가들은 왜 노동자가 될 수 없는지’ 우리 사회가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지윤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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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동은 노동이다. 작가노동자는 노동자다. 우리는 더 이상 각자도생하며 침묵하지 않는다. 우리는 노동조합으로 말하고, 노동조합으로 교섭하고, 노동조합으로 싸운다.”(작가노조 출범 결의문)
3년여의 준비 끝에 작가들의 권익을 향상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작가노조’가 지난달 28일 창립 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시·소설·에세이·칼럼·웹소설·웹툰 등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는 이들은 불합리한 계약 환경과 만성적 저임금을 공론화하기 위한 조직적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총회에서 선출된 오빛나리 작가노조 위원장은 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예술은 원래 가난하다’라는 식의 글쓰기를 낭만화하는 말들은 그 이면의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감추게 된다”며 “예술이냐 노동이냐의 이분법을 넘어 ‘작가들은 왜 노동자가 될 수 없는지’ 우리 사회가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작가노조는 <검정 고무신> 이우영 작가 사건이 있던 2023년 작가들의 온라인 단체대화방에서 시작됐다. 백희나 작가 <구름빵> 사건, 이상문학상 불공정 계약 논란 등 여러 이슈들이 불거졌는데 다른 예술노동자들에 비해 작가들은 잘 뭉치지 못했다. “노동 조건에 직접 개입해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연대체가 아닌 ‘노조’라는 형식이 꼭 필요했다. 문제 의식을 공유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작가노조 준비위원회에 85명이 참여했다. 길어진 준비 과정은 작가들의 현실과도 닿아 있었다. 오 위원장은 “글쓰기만으로 생계를 꾸릴 수 없다보니 다른 일들을 하느라 노조 일에 속도를 내기가 어려웠다”며 “개별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보니 뭉치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준비위원회가 펴낸 <작가노동 선언>에서 은유 작가는 20년째 오르지 않는 원고료 문제를 지적했다. 은유 작가가 2006년 ‘자유기고가’로 기업·정부 간행물에 글을 쓰고 받은 20만원이 전업작가로 이름을 알린 2016년에도 비슷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합당한 보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청탁에는 거절 의사를 밝히기도 하지만, 숱한 자기검열 과정을 거쳐야 했다고 썼다. 박권일 작가는 작가 노동 현장을 “한마디로 체계도, 기준도 무엇 하나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혼돈의 아수라장”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준비위원회가 지난해 3~5월 작가 2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이러한 현실은 구체적 수치로 확인됐다. 최근 3년간 집필 노동으로 얻은 연평균 소득이 ‘500만 원 이하’라고 답한 비율이 33.7%였으며, 집필노동 임금으로 생계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은 73.7%에 달했다. 출간·연재 시 계약서를 매번 작성한다는 응답은 65.9%, 계약 조건 협상 경험이 있다는 비율은 52%에 그쳤다. 협상을 하지 않은 이유는 ‘관행에 따름’,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서’ ‘정보 부족’ 등이었다.
현실의 열악함을 인정한다 해도 뒤따르는 질문들은 있다. ‘작가는 노동자인가?’ ‘작가 노조의 교섭 상대는 누가 되는 걸까?’ 오 위원장은 “프리랜서라고 정말 ‘프리’한 사람은 없다. 작가도 계약을 맺고, 작업 지시와 수정 요구를 받으며, 정해진 일정과 조건 속에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며 “협업이라는 말로 포장되지만, 일의 방식과 결과를 좌우하는 편집자·디자이너와 같은 ‘중간관리자’들의 개입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사용자가 누구인지 애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노동의 결과물이 있는데 출근하지 않는다고 노동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라면서 “최근 플랫폼 노동에서 보듯 노동의 형태도 다양해졌는데, 인식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글쓰기 노동의 ‘애매함’을 이유로 ‘노동이 아니다’라고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노동이 애매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위에서 최소한의 기준과 교섭의 틀을 만들자는 것이 노조의 문제의식”이라고 말했다.
작가노조는 올해를 ‘교섭을 위한 준비의 해’로 잡았다. 오는 4~5월 중에 상담창구를 열어 불공정·불평등 사례를 모으고 의제를 도출해 ‘교섭의 씨앗’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출판사·출판 단체·플랫폼·정부 등에 대한 요구 사항을 구체화하는 일도 필요하다. 이달 중에는 노조설립신고에도 나선다. 지난해 8월 통과된 노조법 2·3조 개정안에서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던 조항(2조4호 라목)이 삭제되면서 노조 설립 신고의 문턱이 낮아질 가능성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오 위원장은 ‘돈’이 창작에 미치는 영향을 묻자 “크게 아플 때 병원을 못가는 것. 일상적인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것”이라는 답을 고민 끝에 내놨다. 그는 “사실 요구는 간명하다. ‘계약서를 작성해달라’ 그리고 ‘원고료를 언제 얼마를 주겠다고 알려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들의 노동 환경이 개선되면 독자들에게도 좋은 일이 될까. 오 위원장은 “능동적인 독서를 위해선 텍스트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뒤에 있는 사람을 읽는 것도 중요하다”며 “자신들이 좋아하는 작가와 글이 있다면 그들의 노동을 이해하고 연대해 주는 응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가가 그 일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불합리한 운명을 짊어지는 구조는 부당한 만큼, 더 이상 가난을 미학화하지 말고 최소한의 기준선, 하한선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8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열린 작가노동조합 창립총회의 모습. 작가노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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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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