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이 이역만리 브라질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낯선 타향살이 속에서도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 애썼던 독립운동가의 삶, 이제는 후손들이 그 뜻을 이어받아 한인사회의 뿌리를 든든히 지탱하고 있는데요.
그 현장을 함께 만나보시죠.
[해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부부가 묘소를 찾았습니다.
브라질 동포 한명재 씨와 문옥 씨 부부입니다.
이름도, 이력도 남아있지 않은 빈 묘소를 조심스레 어루만져봅니다.
이 묘의 주인은 지난해, 그토록 그리던 고국,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한명재 씨의 아버지, 애국지사 고(故) 한응규 선생의 이야기입니다.
[한 명 재 / 故 한응규 애국지사 차남·브라질 동포 : (아버지는) 나 죽으면 우리 동료 옆에 가서 묻히겠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항상.]
일제 강점기, 평양에서 태어난 청년 한응규는 일본군을 탈출해 광복군에 투신했습니다.
제2지대 제3구대 강남분대에서 정보 수집과 병력 모집에 앞장서며 빼앗긴 조국을 되찾는 데 헌신했는데요.
부친 한준관 지사를 도와 짚신 발로 중국을 누비며 독립자금을 운반하기도 했습니다.
[한 명 재 / 故 한응규 애국지사 차남·브라질 동포 :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걸어 다니면서 독립운동을 하셨고. 여기 아버님. 이때가 18살.]
그 공로는 브라질 이민 후인 1990년에야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으며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광복 80주년인 지난해, 마침내 한 지사의 유해가 브라질에서 한국으로 봉환된 겁니다.
[한 명 재 / 故 한응규 애국지사 차남·브라질 동포 : 광복 80주년 기념행사로 이렇게 너무나 환대, 우대죠. 정말 한국사람으로서 자랑스럽더라고. 어느 나라 사람도 그렇게 못 할 거야.]
조국을 위해 평생을 바친 독립운동가였지만 가족에겐 그저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였습니다.
[김 가 균 / 故 한응규 애국지사 부인·브라질 동포 : 동작이 보통 빠른 사람이 아니야 예. 그런데 가정적이고 자상하시고 아무거나 열심히 하는 거지요. 사는 데만 열중하고 자식 키우는 데만 열중하는 거지요.]
그렇게 목숨을 바쳐 지켜낸 광복이었지만 이념 대립과 전쟁의 소용돌이는 또 다른 시련이었습니다.
한 지사는 결국 가족과 자식의 미래를 위해 이민을 결심합니다.
[한 명 재 / 故 한응규 애국지사 차남·브라질 동포 : 잃어버렸던 나라를 찾으려고 목숨을 걸고 가족을 버리고 싸웠는데 이거를 공산당 놈들이 이걸 두 갈래로 갈라놨구나. 그 참 한탄을 하시면서 너희를 위해서라도 외국으로 나가자 다시 전쟁이 나지 않을까 그런 위험도 있었고 정치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참 어려운 시절이었으니까….]
1972년 가족과 함께 도착한 브라질.
언어도, 문화도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는 일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지사는 가족과 동포사회를 위해 다시 한 번 궂은일에 앞장섰습니다.
일본어 통역을 자처하며 동포들을 도왔고 중국 망명 시절 배운 침술로 이웃들을 무료로 치료하며 한인 공동체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한 명 재 / 故 한응규 애국지사 차남·브라질 동포 : 이민 초창기였으니까 그다음에 너무 (한인사회가) 기반이 없었으니까 참 그 마음적으로 굉장히 고생하셨다고 (아버지가) 임시정부 때 그때 침술을 배우셨어요. 중국에서. (브라질) 현지인들을 정말 무료로도 많이 치료를 해주시고 너무나 큰 일을 해주셨어요.]
아버지, 한응규 지사는 공동체의 소중함을 늘 자녀들에게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그 가르침은 아들 한명재 씨의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한 명 재 / 故 한응규 애국지사 차남·브라질 동포 : 우리 아버님이 항상 말씀하시는 게 이 공동체의 중요성, 소속돼 있는. 혼자는 살 수 없고 그다음에 정의를 위해서는 정말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항상 말씀하시던 것이 '나라 잃은 설움이 집 없는 설움에 비할 데 없다.' 나라가 없으면 집도 없는 거고 집이 없으면은 그 우리라는 게 없잖아요.]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태권도 시범단 활동부터 한인회장까지 맡으며, 한인 사회의 가교 역할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한 명 재 / 故 한응규 애국지사 차남·브라질 동포 : 문화 그다음에 언어 제일 큰 장벽이었고 (근데) 저희는 그 시간이 없었죠. 그런 거 느낄 시간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한 주일에 한두 번 최소한도 두 번에서 세 번 정도 (태권도) 시범을 하러 다녔어요. 말을 할 줄 모르니까 그냥 기왓장 놓고선 깨고 부수고 뛰어 차고 태권도 시범으로 다 행동으로 다 보여줬으니까 그러니까 그게 뭐 참 어려웠어요.]
[채 명 희 / 초기 이민자 : (한명재 씨 같은) 그런 사람 없어요. 저렇게 봉사 저렇게 나서서 열심히 하는 사람이 몇 명 되겠어요?]
공동체의 소중함을 강조했던 아버지의 친필 격언은 이제 삶의 이정표가 됐습니다.
아버지가 끝내 지키고자 했던 그 정신을 브라질 한인사회에서 이어가는 것, 한민족 뿌리를 잊지 않는 공동체로 그 가치를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하는 것이 아들 한명재 씨에게 남겨진 사명입니다.
[한 명 재 / 故 한응규 애국지사 차남·브라질 동포 : 앞으로 우리가 여기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데 얼마나 이 한국인의 그 문화를, 좋은 문화를 심어주면서 또 한국인의 긍지를 가지면서 살 수 있는가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한국인의 얼, 한국인의 이상, 한국인의 철학, 삶의 문화 그런 걸 잘 전해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리 후세들한테 잘 전해져서 현지 사회에 잘 융합이 될 수 있으면 그게 제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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