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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2 (월)

    ‘폭풍의 언덕’ 8번째 영화화-번역본 재출간으로 보는 고전의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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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소설 ‘폭풍의 언덕’은 2020년대 들어서만 국내에서 새 번역본이 9종 이상 출간됐다. 왼쪽 사진부터 윌북, 열린책들, 앤의서재 출간본. 각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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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폭풍의 언덕’(감독 에메랄드 펜넬)은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여덟 번째 영화다. 이번엔 마고 로비(캐시 역)와 제이콥 엘로디(히스클리프 역)가 주연을 맡았다. ‘폭풍의 언덕’은 우리 출판계에서도 2020년대 들어서만 새 번역본이 적어도 6종 이상 출간되는 등 재해석이 잇따르는 고전이다.

    이 소설은 영국의 벽촌에서 나고 자라 짧은 생을 살다 간 에밀리 브론테(1818~1848)가 1847년 발표한 유일한 작품이다. 폭풍이 휘몰아치는 요크셔 황야의 저택을 배경으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격정적이고도 비극적인 사랑을 그렸다. 특히 최근 번역본들은 특히 캐서린의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면모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If all else perished, and he remained, I should still continue to be; and if all else remained, and he were annihilated, the universe would turn to a mighty stranger”라는 원문은 2023년 출판사 앤의서재가 ‘여성작가 클래식’ 시리즈로 선보인 판본(이신 옮김)에서 “만일 다른 모든 게 소멸하고 그 애만 남는다면 난 그래도 계속 존재할 수 있어. 만일 다른 모든 게 남고 그 애만 사라진다면 이 우주는 지극히 낯설어질 거야”로 옮겨졌다.
    오랫동안 ‘자기 소멸적 사랑의 표지’로 읽혀왔던 문장이지만 “난 그래도 계속 존재할 수 있어”에 방점을 찍으며 해석이 달라진 것. 새 번역은 사랑으로 사라지는 인물이 아니라, 사랑 속에서도 자기 존재를 자각하는 인물로 캐서린을 재조명한다. 강조점의 이동은 인물의 성격까지 달리 보이게 만든다.

    작품에서 ‘피부색이 어두운 집시’ 등으로 묘사되는 히스클리프의 인종성과 계급성 역시 이 고전을 재해석하는 중요한 축이다. 열린책들 판 ‘폭풍의 언덕’(2024년)의 전승희 번역가는 “인종, 재산, 계급을 축으로 차별과 착취를 자행하던 당대 사회 질서와 그런 질서를 바탕으로 제국 경영을 하던 영국 사회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통렬한 비판이 담긴 작품”이라고 말했다.

    출판사 윌북은 올해 초 에밀리와 샬럿 브론테뿐 아니라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막내 앤 브론테의 작품까지 함께 조명한 ‘브론테 세 자매 컬렉션’을 출간했다. 특히 앤 브론테의 자전적 경험이 반영된 ‘아그네스 그레이’는 상류층의 위선과 모순, 가정교사로 살아가던 여성의 삶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세 자매 가운데 계급 의식과 젠더 문제를 가장 예리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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