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실패한 청년들, 알바 전선에
경험 없는 20대 초반도 타격 입어
업주들 “군미필보단 경력직 원해”
서울의 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업무를 보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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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새내기 박모(20)씨는 최근 말로만 듣던 ‘알바(아르바이트) 고시’의 실상을 뼈저리게 느꼈다. 박씨는 카페·편의점·빵집 등 93곳에 지원서를 넣었지만 면접 기회를 준 곳은 10곳뿐이었다. 그마저도 면접 자리에서 “경력이 없다”며 모두 퇴짜를 맞았다. 이후 수십 번의 면접을 더 본 끝에 한 대형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에 일자리를 구했다. 박씨는 “요즘은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는 초짜는 뽑으려 하지 않더라”며 “수능 공부보다 알바 구하기가 더 힘들 줄 몰랐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는 20대 청년들의 ‘첫 홀로서기’ 관문이자 사회 진입의 징검다리로 꼽힌다. 그런 아르바이트 시장이 최근 얼어붙었다. 경기 불황이 몇 년간 이어져 자영업자들이 신규 채용을 줄인 데다, 취업 시장 진입에 실패한 20·30대들이 알바 전선에 뛰어들면서 사회 초년생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한때 아르바이트 자리는 누구나 원하면 할 수 있는 일자리로 꼽혔다. 하지만 이젠 알바 구직 전쟁이 벌어지면서 부모가 자녀의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주고 일자리를 알아봐 주는 ‘대리 구직’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20대 임시·일용 근로자는 104만3000명이었다. 이는 코로나 여파가 몰아친 202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알바 채용 공고도 전년 동기와 비교해 19.6% 감소했다. 경기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점포 운영을 줄이거나 아예 장사를 접는 가게도 늘고 있다. 서울시의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생활밀접업종 점포 수는 51만6124개였다. 2년 전보다 2만개 넘게 줄어든 수치다. 2024년부터는 개업하는 점포보다 폐업하는 점포가 더 많은 상황이다.
그래픽=이진영 |
알바 공고에 지원자가 몰리면서 업주들은 ‘고스펙 경력직’을 골라 뽑고 있다. 인천에서 애견 카페를 하는 김모(28)씨는 “공고를 올리면 하루 만에 100명 넘게 몰리는데, 굳이 경험이 없고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20대 초반 알바를 뽑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의 한 햄버거집은 얼마 전 아르바이트 공고를 이틀간 냈는데 지원자가 40명 넘게 몰렸다고 한다. 이 가게 직원 A씨는 “지원자들 면접을 보는데 ‘휴학하는 1년간 이 가게에 뼈를 묻겠다’ ‘열심히 해서 정직원이 되고 싶다’고 하는 등 대기업 면접장을 방불케 했다”고 했다.
하루 이틀만 일하고 일당을 받는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도 경쟁이 치열하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취업 준비생 고제민(27)씨는 얼마 전 인근 팝업스토어(임시 매장)가 철수하면 매장 철거와 자재 정리를 돕는 하루짜리 아르바이트를 하고 3만원을 받았다. 이 일자리도 공고가 올라온 지 10분 만에 마감됐다고 한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은 외부 활동을 끊는 경우도 적잖다. 고교 졸업생 김모(19)씨는 “왕복 2시간 거리의 공단 아르바이트까지 지원해 봤는데 떨어졌다”며 “돈이 없으니 친구들을 만나기 어려워 그냥 집에 처박혀 있다”고 했다. 세종시에 사는 전하성(19)씨는 “용돈이 부족해 사람 만날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류모(60)씨는 최근 대학생 딸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자기소개서 첨삭까지 했다고 한다. 류씨는 “딸에게 일해서 돈을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가르쳐주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으니 부모가 나설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전역 예정인 아들의 아르바이트를 구한다’ ‘고졸 자녀를 위한 아르바이트 정보를 공유해 달라’는 부모들의 글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20대들이 일할 만한 일용직·임시직이 감소하는 흐름을 고용 시장의 ‘경고등’으로 해석하고 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박사는 “청년들이 노동시장 진입 단계에서 반복적으로 탈락을 경험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구직 포기나 자발적 사회 단절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했다.
[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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