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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6 (금)

    호르무즈 물류마비 시작… 운임료, 연초의 17배로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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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유조선 10척 불태웠다, 중동 경제 인프라 완전 파괴할 것”

    코스피 사상 최대 12% 폭락

    조선일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하겠다고 공언한 가운데 3일(현지 시각) 아랍에미리트 푸자이라 해안에 유조선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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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현지 시각) 이란 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 10여 척을 미사일로 공격해 불태웠다고 주장하면서 세계 경제의 동맥인 이 해협이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 이후 46년 만에 사실상 ‘기능적 마비’ 상태에 빠졌다. 하루 평균 36척이 넘던 통항(通航)량은 단 3척으로 급감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필요한 경우 미 해군이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 호송을 시작할 것”이라고 했지만,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날 “역내 (중동) 군사·경제 인프라를 완전히 파괴할 준비가 됐다”고 추가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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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르무즈발 물류 위기는 원유·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송 문제를 넘어 글로벌 물류망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공포로 번지고 있다. 실제 4일 기준 중동발 중국행 유조선 운임은 하루 약 42만달러로 연초(약 2만8700달러) 대비 17배 넘게 폭등했다. 이란의 우방국인 중국조차 이란에 대한 압박에 나설 정도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모든 당사국이 즉각 군사 행동을 중단하고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중동 원유·LNG 의존도가 높은 중국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한국 산업계도 비상이다. 광범위한 공급망과 물류 충격이 예상되면서 스마트폰 등 소형 가전이나 반도체·바이오 의약품 등의 수출이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일 반도체 주도 급등세가 이어졌던 코스피는 이날 12.06% 폭락했다. 역대 최대 낙폭이다.

    ◇세계 원유 34%, LNG 20% 길목 호르무즈… 실제 마비된 건 처음

    과거 중동 위기 때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실질적인 통항 중단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 이번 이란발(發) 리스크를 두고 “과거 어떤 중동 위기에서도 없었던 최초의 실질적 통항 마비 사례”라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1991년 걸프전, 2019년 미·이란 긴장 국면과 비교해 이번 사태는 위기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과거에는 유조선 피격이나 보험료 급등이 있었지만 해협 자체가 봉쇄되지는 않았고 위험을 감수한 운항도 유지됐다. 반면 이번에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통항 불가를 공식 통보하고, 실제 피격 사례가 잇따르며 전쟁 보험 인수 제한과 선박 철수, 운항 중단 조치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 해군이 상선을 직접 호송하겠다”고 했지만 해상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는다. 호르무즈 해협의 지형적 특성 때문이다. 이 해협은 가장 좁은 지점의 폭이 33㎞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초대형 유조선이 다닐 수 있는 깊은 수로는 상·하행 각각 폭 3㎞에 불과하다. 이 길목은 이란 영해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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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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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중동 사태와 차이는

    더 치명적인 것은 수심이다. 해협의 평균 수심이 50m 내외로 얕아 미국의 항공모함이나 원자력 잠수함이 기동하기 어렵다. 반면 이란은 연안 절벽에 지대함 미사일을 숨기고, 수심이 낮은 곳에 5000여 기뢰를 깔아 ‘수중 지뢰밭’을 만들 수 있다. 미군 군함이 상선에 바짝 붙어 호위한다고 해도 물밑에서 터지는 기뢰나 절벽에서 나오는 미사일과 드론의 벌떼 공격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미 블룸버그도 전문가를 인용해 “이란의 기뢰 부설 능력, 대함 순항미사일, 드론 위협까지 무력화해야 호위가 가능하다”고 했다. 영국의 해운 전문 매체 로이드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호위 발언 당일 미 해군이 해운 업계에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을 호위할 전력 여유가 없다”고 비공개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한국해양진흥공사도 4일 이례적으로 ‘호르무즈 해협 통항 제한에 따른 해운·물류 영향 분석’ 보고서를 내고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물리적 단절 위기에 직면했다”고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은 글로벌 해상 원유 물동량의 34.2%(하루 1570만 배럴), LNG의 20%(연간 8600만t)가 통과하는 단일 핵심 통로다. 하루 평균 유조선 36척이 오가며 약 1580만 배럴 원유를 운반했는데, 지난 1일 기준 겨우 3척만 지나면서 운반량도 200만 배럴 수준으로 87% 급감했다. 한국 역시 원유 수입의 13.9%를 이 해협 운송로에 의존하고 있어, 사태가 장기화하면 국내 에너지 안보에도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美 호송 계획 현실성은

    글로벌 화물 물류의 핵심인 홍해도 이란 사태 유탄을 맞았다. 이란 편에 선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에서 상선 공격 재개를 선언한 것이다.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우회할 경우 왕복 기준 홍해 항로보다 운항 일수가 15일 이상 늘어난다. 해운 분석 업체 제노타는 “희망봉 우회가 임시방편이 아니라 상설 항로가 될 가능성이 커졌고, 이 경우 세계 컨테이너선 상당수가 장거리 항해에 묶여 운임 압박이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충격파는 이미 에너지 시장과 물류 시장으로 번지고 있다. 유조선 운임 지표인 WS 지수는 2월 중순 WS 138 수준에서 지난 3일 465까지 치솟았다. 컨테이너 운임도 폭등 조짐이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부산항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제다를 향하는 주요 해운사의 컨테이너 운임은 지난주 40피트 컨테이너 1개당 1975달러에서 4일 1만214달러로 417% 급등했다.

    주요 글로벌 해운사들은 이른바 ‘전쟁 할증료’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세계 1, 2위 해운사인 MSC와 머스크 등 주요 선사는 컨테이너당 최대 4000달러 추가 요금을 공지했다. 물류비 급등으로 한국 수출 기업의 타격도 불가피하다. 해양진흥공사도 “운임 등 단기적 비용 급증은 국내 제조업 및 수출입 경쟁력 타격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과거 사례를 고려하면 물리적 봉쇄 해제 후에도 정상화까지는 봉쇄 기간의 2배 이상 소요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이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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