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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6 (금)

    민희진 256억 포기가 프레임이라고? 그런 말이 진짜 프레임[위근우의 리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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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민희진 어도어 전 대표가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교원챌린지홀에서 열린 민희진-하이브 간 255억 풋옵션 소송 1심 승소 관련 기자회견을 마치고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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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들이 민희진을 정말 미워하나보다. 지난 2월 25일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의 5분 기자회견 이후 쏟아진 기사들을 보며 든 생각이다. 2월 12일 하이브와의 256억 원 규모 주식매수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이후 민희진은 기자회견을 통해 하이브가 뉴진스를 포함해 진행 중인 모든 소송을 포기하면 자신도 하이브로부터 받을 256억 원을 포기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인터넷 은어인 ‘보법이 다르다’는 표현이 떠오르는 승부수였다. 이것이 얼만큼 진심일지, 혹 진심이 아닌 전략적 의도라면 이 말로 현재 뉴진스를 둘러싼 구도를 어떻게 흔들 생각인지는 내 깜냥으로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특유의 기개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본인의 명분 확보를 위한 말이든 아니든 “이토록 갈가리 찢겨진 마음으로는 결코 좋은 문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라는 발언만큼은 백 번 맞는 말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민희진에게 우호적이든 아니든, 그가 말한 ‘좋은 문화’를 위해 과연 어떤 방식의 화해나 슬기로운 해법이나 선결 과제가 필요할지에 대한 유의미한 논의가 이 기회에 나올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좋은 문화의 핵심인 아티스트를 위해 자신의 몫을 포기할 수 있다고 선언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기자회견을 전하는 연예 매체들의 논조는 기대와 달랐다. 관련 기사들은 크게 두 흐름으로 요약된다. 첫째, 10분이나 늦고 5분 동안 자기 할 말만 하고 갈 기자회견을 왜 했느냐. 많은 매체가 질의응답 없는 일방적 입장 발표를 지적했고, 이럴 거면 보도자료를 뿌리면 되지 왜 불렀느냐, 기자를 모아 쇼의 배경으로 쓴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가령 한국경제는 ‘민희진 씨, 합의는 ’쇼통‘이 아닌 진정성을 갖고 하이브와 하는 겁니다’라는 제목으로 들러리가 된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미리 좋은 자리를 잡고 대기하느라 시간을 들였을 기자들 입장에서 화가 날 수 있겠지만 기사에 사감을 담는 걸 넘어 사감 자체를 기사화하는 건 보도의 공적 가치도 없고 미적으로도 구질구질하다. 이건 못난 기사다. 그래도 못난 기사는 그게 못났음을 독자가 쉽게 알아챌 수 있다는 일말의 장점이 있다. 문제는 체계적으로 왜곡하는 기사다. 그게 이 사안을 전하는 두 번째 방식이다. 민희진의 통 큰 제안은 사실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손해를 막기 위한 계산적 행위라는 것. 이 주장에 따르면 민희진은 256억 원을 포기한다고 말하지만, 하이브가 뉴진스와 관련해 건 모든 소송에서 받을 수 있는(승소 가정) 총액은 467억 원에 달하기 때문에 오히려 하이브가 210억 원을 포기해야 하는 제안이라는 것이다. 스포츠서울은 기자회견 당일 “뉴진스 멤버들과 측근들을 누르고 있는 수백억 원 규모의 전방위적 법적 리스크를 일괄 타결하겠다는 ‘빅딜’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나는 이 해석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진실이란 뉴진스를 향한 사심 없는 진정성과 화제성을 노린 쇼의 이분법 사이 회색지대에 있을 것이며, 그것이 빅딜이든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뉴진스를 자유롭게 한다면 거기에 ‘좋은 문화’를 향한 진정성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수 연예 매체들은 이 관점으로 민희진의 제안이 낳을 긍·부정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대신 오직 민희진의 속내를 지레짐작하고 비난하는데 골몰했다.

    유튜브 ‘연예뒤통령 이진호’ 채널은 ‘256억 포기쇼’라는 냉소적인 제목의 영상에서 “댓글에 ‘대인배’가 나오는데 산수부터 배우자. (중략) 다니엘 관련 431억, 빌리프랩 20억, 소스뮤직 5억 등 467억이고 467억에서 256억을 빼면 211억이다. 결국 ‘나는 1 포기할 테니 너는 2 포기해’라는 구조다. 이게 무슨 대인배냐”고 비판했다. 그는 “포기라기보다 프레임”이라며 민희진이 짠 프레임을 깨려 했지만, 사실 그야말로 또 다른 왜곡된 프레임을 제공했다. 그의 주장은 하이브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서는 충분할지 몰라도, 민희진이 256억 원을 포기할 이유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는 마치 민희진이 마진 –1인 상황을 0으로 만들며 결과적으로 1을 이득 보는 것 같은 프레임을 구성했지만 그의 말을 돌려주자면 “산수부터 배우자.” 그가 말한 다니엘 관련 431억 중 300억은 다니엘의 위약벌이고 민희진까지 묶인 건 제3자 손해배상 소송 100억이며 민희진이 오직 자신과 관련한 소송을 다 진다고 가정해도 256억을 받으면 최종 마진은 100억이 넘는다. 그러니 단순히 1을 포기하고 2를 얻는 꼼수인양 말할 수 없다.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그를 통해 더 나은 결과를 만들려는 의도라 해도 그는 100억 이상을 포기하는 제안을 던졌으며, 그걸 대인배라 부르든 말든 통 큰 베팅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후 기사들은 무비판적으로 이진호의 프레임을 따른다. YTN은 “민 대표가 지켜야 할 돈은 이미 456억 원에 달한다. 이 과정에서 법원이 만약 하이브의 손을 들어준다면 민 전 대표는 이 배상금을 고스란히 짊어진다”는 잘못된 정보에 의지해 ‘민희진의 ‘256억 포기’가 사실은 남는 장사라면?’이라는 역시 냉소적인 제목의 기사를 썼으며, MK스포츠 역시 ‘입으로는 뉴진스, 손으로는 계산기…오만한 민희진의 256억 던지기’라는 악의 가득한 제목과 함께 “대의명분은 그럴듯하고 포장은 화려하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안으로 옮기면 그 속은 비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민희진은 확실히 영리한 크리에이터다. 본질적인 결핍을 감추고 감각적인 오브제를 덧씌워 ‘명품’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 그것이 그의 전매특허”라고 기획자로서 그의 역량에 대해서까지 원색적으로 비아냥댔다. MTN뉴스의 ‘민희진, 실체도 없는 256억으로 사고 싶었던 대인배 타이틀’ 같은 제목도 마찬가지다. 해당 기사에선 민희진이 1심에서 승소했을 뿐 2심에서 달라질 수 있기에 “실제로 손에 쥐지 않은 돈을 걸고 협상 카드로 내민 셈”이라고 비웃었지만, 그런 식이라면 아예 판결조차 나오지 않은 467억을 온전히 하이브와 어도어의 몫으로 계산하는 셈법이 더 우스운 것 아닐까.

    그나마 티브이데일리의 경우 467억 원 중 민희진에게 제기된 소송 금액을 분리해 256억 원을 포기할 경우 산술적으로는 민희진의 손해라는 것을 전제했지만, “민희진 전 대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최근 설립한 새 기획사 오케이레코즈 신규 투자 유치에 방해가 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이라며 “어쩌면 민희진 전 대표의 255억 포기는 오케이레코즈 위한 기회비용 정도가 아닐까”라는 심증으로 그의 제안을 폄하했다. 적어도 악의만 앞서서 사실 관계조차 왜곡한 앞의 기사들보단 훨씬 낫고 심증이라 해도 하나의 가설로서는 제시할 만한 내용이지만, 가설들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구성하기보다는 민희진이 기자회견으로 얻은 대인배라는 이미지를 어떻게든 깎아내리려는 목적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에선 대동소이하다. 시야를 조금 넓히면 256억을 받아낸 1심 승소 기사 다수에서도 판결문에 명시된 하이브에 대한 재판부의 의구심에 대해 다루기보단 판결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전속 계약에 대한 뉴진스의 패소에 대해서는 그토록 법의 지엄함에 의탁했던 매체들이. 이처럼 민희진 기자회견에 대한 부정적 기사들은 사실 기자회견에 대해서보다는 오히려 기사를 쓴 매체 혹은 기자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그들이 어지간히도 민희진을 미워한다는 것. 그것이 강자인 하이브에 동기화된 자본주의 사회 신민의 사고 때문인지, 설치고 외치고 싸우는 여성에 질색하는 한국의 정서 때문인지, 기자회견에 늦고 질의응답도 없이 간 것에 대한 치졸한 앙금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민희진이 거대 자본에 저항하는 혁명가나 순결한 피해자나 아티스트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한 순교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전략적이거나 계산적 모습이 있다고 해서 그가 말한 가치가 몽땅 거짓이 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수 매체가 민희진이 포기하겠다고 말한 금액과 그로 인해 하이브가 포기해야 할 금액의 비대칭을 말하며 누가 이득이고 누가 손해인지 따져보려 했지만, 나는 그러한 대차대조표보다 숫자로 환원될 수 없는 포기라는 행위의 결단성에 대해 주목하고 싶다. 누가 더 이득이고 더 손해이고를 따지는 걸 멈추기 위해선 우선 내가 가진 걸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에게도 결단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니 관대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엄정하기 위해선 그 결단을 통해 따라올 변화의 가능성과 책임에 대해 진지하게 다루고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희진이 벌인 게 쇼냐 아니냐를 질문하는 것보다는, 쇼라면 그 퍼포먼스가 어떤 가상적 믿음과 환상을 제공하는지, 그것에 좋거나 나쁜 잠재력이 있거나 없는지, 각 주체의 책임을 어떻게 재배치하는지 따져보는 것이 현상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 기자는 회의주의자여야 하지만, 의도를 한없이 의심하기만 하는 것은 실천적 차원의 숙제를 회피하는 것에 그칠 뿐이다. 민희진에 대한 악의 섞인 언어와 별개로, 그들의 의심은 딱 책임지지 않을 의심 그 자체의 안온함에 머물고 있다. 어쨌든 민희진은 ‘좋은 문화’를 위한 결단의 무게를 증명하기 위해 쇼든 뭐든 256억 원을 걸었다. 가장 쉬운 방식으로 그를 헐뜯는 언론들은 대체 무엇을 걸었나.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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