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는 한국 장애인운동의 현재적 기원에 있는 사람이다. 2001년 이동권 투쟁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진 장애인 대중운동의 현재를 만든 사람 중 하나다. 그렇다고 무슨 단체의 대표였던 것은 아니다. 한국 장애인운동사를 건물에 비유하자면 그는 멀리서 보이는 지붕도 아니고, 멋진 장식을 단 창문도 아니며, 현판을 단 대문도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이를테면 건물이 딛고 선 토대,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골조, 무엇보다 모래알들을 붙들고 있는 시멘트 같은 사람이다. 개인으로 좌절하고 개인으로 분노했던 장애인들을 하나의 대중으로 묶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장애운동 토대 세운 청년 정태수
“살아남은 자여 서로를 조직하라”
반영웅들이 만들어낸 질긴 연대
이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장애인 대중운동이 본격화된 2000년대를 앞둔 10년 동안 그가 했던 일은 사람을 모으고 조직하는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조직국장 아니면 사무국장이었다. 1990년 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 조직부에 있었고, 1993년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 조직국장, 1995년 장애인자립생활추진위원회 조직국장이었다. 1993년 노들장애인야학을 만드는 일에 나섰고, 1996년에는 전국 곳곳을 누비며 장애인 고용촉진을 위한 걷기대회를 조직했다.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와 서울장애인연맹이 통합한 뒤에는 서울장애인연맹에서 사무처장을 맡아 또 사람들을 조직했다. 2001년에는 장애인활동가들을 더 많이 키워야 한다며 장애인청년학교도 만들었다. 그러고는 이 학교의 수료식 행사까지 마친 날 갑자기 숨을 거두었다. 그 이력을 읽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는 이 젊디젊은 운동가의 사인은 과로로 인한 심근경색이었다.
2001년 장애인들이 서울역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고 광화문광장에서 버스를 멈춰 세웠을 때 많은 이가 놀랐다. 도대체 이 많은 장애인들은 누구이고 어디서 나온 것인가. 정태수의 생애를 따라가보면 알 수 있다. 그가 수첩에 적어둔 일들이 1980~1990년대 한국 장애인운동사이고, 그가 만난 사람들이 지난 20여년 한국 장애인운동을 이끈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올해 24주기를 맞아 평전이 나왔다. <살아남은 자, 조직하라!>(끌레마). 책 제목이 꼭 유언 같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의 삶에서 저 유언을 듣는다. 이 책을 읽어보면 그가 사람들을 어떻게 엮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정말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엮어서 전체 직물을 짰다. 그래서 한국의 장애인운동이 이렇게 질기고 탄탄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더 중증인 장애인, 더 못 배운 장애인, 더 가난한 장애인 쪽으로 나아갔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한국 장애인운동의 독특한 성격이 여기서 나왔다. 한국 장애인운동의 영웅들은 대부분 반(反)영웅이다. 미국의 경우만 해도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의 전설인 에드 로버츠나 미국장애인법 제정의 토대를 놓은 주디스 휴먼 등은 모두 대학을 졸업한 장애인 엘리트이고, 나중에 장애 인권 분야의 고위공직자가 되었다. 한국에도 그런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장애인운동 현장에서는 영향력이 별로 없다. 대학에서 이념을 익힌 장애인들도 일정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에 이 운동의 몸통을 짠 사람들은 말 잘하는 사람의 말, 지식 많은 사람의 지식에 기대지 않았다.
이 운동은 비뚤배뚤 맞춤법에도 맞지 않는 글을 쓰고, 불법노점을 해서라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절실함으로부터 장애인 권리와 장애인 자립생활에 대한 요구를 만들어왔다. 그래서 말 잘하는 사람이 말을 바꾸고, 지식 많은 사람이 논리를 바꾸어도 이 운동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이 운동의 시작, 이 운동의 방식, 이 운동의 비전, 이 운동의 자부심이 정태수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정태수상을 수상한 중증장애인운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장애는 우리의 자부심이다, 나는 이걸 정태수 열사에게 배웠습니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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