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단순히 숫자만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늘어난 인원을 수용할 교육 인프라 확충과 임상실습 내실화, 교원 확보 등 의학 교육의 질 저하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왔다. 의료계 역시 이러한 노력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제 교육 부실이라는 방어적 논리 뒤에 숨어 변화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더 우수하고 사명감 있는 의료 인력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지에 대해 함께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의대 증원 논의가 시작된 이래, 그 어떤 직역보다 의료 현장의 실상을 가감 없이 전달하며 사회적 합의를 위한 목소리를 일관되게 내왔다. 이 모든 과정이 지향해야 할 종착지는 결국 ‘환자의 생명 보호’라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해왔다.
이번 증원 결정을 지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한민국 의료의 가장 아픈 구석은 거주 지역에 따라, 혹은 앓고 있는 질환의 종류에 따라 생존율이 달라지는 불평등에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쏠림 현상과 필수의료 인력의 고갈은 이미 개별 병원의 자정 능력을 넘어선 국가적 재난 수준에 도달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의대 증원은 의료 자원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무너져가는 지역 의료를 살릴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시급한 대안이다.
이제 논의의 초점은 ‘얼마나 늘리느냐’에서 ‘어떻게 배치하느냐’로 옮겨가야 한다. 정부와 의료계가 진정으로 환자의 건강권을 최우선에 둔다면, 공공의료 확충과 지역의사제의 실질적 정착, 필수의료 체계 강화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단순히 의사의 숫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지역의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증원된 인력이 지역 거점 병원을 든든히 지키고, 소아과·외과·산부인과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분야로 유입되게 하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지금은 갈등을 증폭시키며 서로를 탓할 때가 아니다. 지역에 있는 중증 환자들이 더 이상 서울의 대형병원을 찾아 원정 진료를 떠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드는 데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의료계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의료인의 본분으로 돌아와야 하며,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겸허히 수용해 정책의 정밀도를 높여야 한다.
의대 증원은 그 자체가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 의료체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긴 여정의 ‘첫 단추’일 뿐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부디 중증 질환자들의 고통 어린 호소를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의 생명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 이번 증원 결정이 지역 간 의료 격차를 해소하고, 대한민국 어디서나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마중물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 |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