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환 특파원의 트럼프 스톡커(Stocker)
억만장자들, 블랙스톤 사모펀드서 5.6조원 환매
지난해 하반기 과잉신용 우려에 올 AI 도전 겹쳐
앤스로픽 ‘클로드 코워크’ 출시 후 ‘파괴론’ 확산
SW주 등 투자 대상 연쇄 급락에 자산 매각까지
주가 30% 하락...연내 1200억 달러 부실 경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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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누적된 과잉 신용에 인공지능(AI)의 파괴적 혁신까지 겹치면서 월가의 큰손들이 사모대출 시장에서 잇따라 이탈하고 있다. AI의 업종 대체 가능성을 미처 예상 못한 채 투자 대상의 신용을 계산한 것이 독(毒)이 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주요 투자 대상 기업이 자칫 AI의 공습으로 파산이라도 하게 되면 대규모 ‘펀드런(대규모 펀드 환매)’ 사태가 불거질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미국의 대(對)이란 공격으로 가뜩이나 글로벌 금융시장이 뒤숭숭한 상황에서 사모대출 부실 문제가 또다른 부담 요인이 될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다.
억만장자들, 세계 최대 사모 운용사 블랙스톤 펀드서 5조 6000억 원 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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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현지 시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에 따르면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인 블랙스톤은 비상장 사모대출 펀드인 ‘BCRED’의 자산 7.9%에 해당하는 환매 신청을 수용했다. 환매 요청 액수는 총 38억 달러(약 5조 6000억 원)에 달했다. 블랙스톤은 투자자 환매 요청에 대응하기 위해 분기별 환매 요청 한도를 펀드 전체 지분의 5%에서 7%로 늘렸다. 또 블랙스톤 임직원 펀드가 추가로 펀드 지분을 사들이는 방법으로 나머지 0.9% 자산 환매에 대응했다.
블랙스톤의 사모대출 펀드에서 대규모 자금 환매가 일어난 것은 지난 1월 12일 앤스로픽의 애플리케이션 개발 도구 ‘클로드 코워크’ 출시를 기점으로 AI에 따른 업종 파괴 우려가 월가에 빠르게 확산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투자 대상 기업들이 잇따라 도산한 상태에서 이제는 기존의 수많은 업종이 AI에 대체될 수 있다는 공포가 시장에 퍼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블랙스톤 BCRED는 25명 이상의 고위직들이 투자한 펀드”라며 “블랙스톤의 운용 자산 1조 2700억 달러 가운데 약 24%가 부유한 개인의 것”이라고 진단했다.
월가 전문가들은 초대형 사모펀드 운용사인 블랙스톤조차 펀드 환매 요청을 피해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사모대출이 추후 금융시장 위기의 뇌관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사모펀드들이 AI 리스크를 미처 반영하지 못한 채 사업 가치를 지나치게 고평가해 대출을 집행했는가가 문제의 핵심으로 꼽힌다.
실제 스위스계 투자은행(IB)인 UBS는 3일 보고서를 통해 “올해 블랙스톤 펀드에서 14.5%의 자금이 유출되면 수수료 수익은 1% 감소할 것”이라며 “이 경우 환매가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지 않더라도 투자자들은 부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JP모건도 “사모대출 펀드 ‘BCRED’는 블랙스톤의 대표 상품인데 자산의 7.9%에 대해 환매 요청이 들어온 것은 지난해 3분기 1.8%, 4분기 4.5%에 비해 상당히 늘어난 것”이라며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아레스매니지먼트, 블루아울캐피털 같은 주요 사모펀드 운용사들의 유사 상품들에 대해서도 4분기에 환매 요청이 전반적으로 증가했기에 투자 심리 악화 신호는 블랙스톤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짚었다.
사모대출은 금융위기 이후 대형 시중은행들이 대출 장벽을 높이면서 그 대안으로 급성장한 시장이다. 그러다 지난해 9~10월 자동차 부품 대기업 퍼스트브랜즈와 비우량 자동차담보대출 업체 트라이컬러·프리마렌드가 잇따라 파산 신청을 하면서 과잉 신용 누적 문제가 고개를 들었다. 당시 큰 손실을 입었던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는 “바퀴벌레가 한 마리 나타났다면 아마도 더 많을 것”이라고 경고했고, 앤드루 베일리 영란은행(BOE) 총재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앤스로픽 ‘클로드 코워크’ 출시 이후 ‘파괴론’ 전방위 확산...SW주 등 연쇄 급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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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서는 사모대출 부실 우려가 AI의 도전과 결합되며 또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올 1월 12일 앤스로픽의 ‘클로드 코워크’ 출시가 사모대출 시장의 불쏘시개가 됐다. 클로드 코워크는 프로그래밍 지식이 없는 사람도 AI와의 대화만으로 문서 요약, 데이터 분석, 계약서 검토 등의 업무 자동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는 유료 서비스다.
AI가 웬만한 서비스 업종을 모두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급부상하면서 사모대출의 주요 투자 업종인 소프트웨어(SW) 관련주의 주가가 연일 고꾸라졌다. 소프트웨어에 이어 부동산, 물류, 금융, 자산관리 서비스 업종 등도 AI에 파괴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평가를 연쇄적으로 받았다.
급기야 지난달 19일에는 사모대출에 강점을 가진 대형 사모펀드 블루아울캐피털이 환매와 부채 상환 자금 마련을 위해 운용 펀드 3개에서 총 14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매각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블루아울캐피털은 또 3개 펀드 가운데 하나인 ‘블루아울 캐피털코프Ⅱ(OBDC Ⅱ)’의 환매도 영구 중단하기로 했다. OBDC Ⅱ는 정보기술(IT)과 소프트웨어(SW) 비중이 높은 사모대출 펀드다. 크레이그 패커 블루아울 공동 창업자 겸 사장에 따르면 자산 매각 대상이 된 운용 펀드 3개 가운데 하나인 ‘블루아울 테크놀로지인컴코프(OTIC)’는 전체 자산의 46%를 소프트웨어 회사로만 채웠다.
무하마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그룹 고문은 당시 X(옛 트위터)에서 블루아울의 펀드 환매 중단 소식을 거론하며 “지난 2007년 8월과 유사한 ‘탄광 속의 카나리아(위험을 미리 알려주는 조기 경고 신호)’ 순간이 아닌가”라며 “업계 전반에 걸친 더 큰 체계적 위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썼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8월 프랑스 최대 은행 BNP파리바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관련 투자 펀드 3개의 환매를 전격 중단한 사실을 환기한 발언이었다. 당시 BNP파리바의 펀드 환매 중단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전조 현상이 됐다. 3일 블랙스톤의 환매 소식을 가장 먼저 보도한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몇 분기 동안 여러 사모대출 펀드에서 환매 요청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는 소프트웨어 기업에 대한 노출 우려에서 비롯됐다”고 짚었다.
1월 23일 장 마감 뒤에는 블랙록의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인 블랙록TCP캐피털이 지난해 4분기 말 순자산 가치가 3분기보다 19% 감소할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레이저 등 전자상거래 브랜드 통합 업체와 관련한 투자가 부실로 나타났다는 이유에서다. 브랜드 통합 업체는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팔리는 신생 브랜드를 관리하는 회사로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시기에 급성장했다가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다. 블랙록TCP캐피털의 손실에는 지난해 11월 주택 개조 업체 리노보홈파트너스의 파산 신청도 영향을 끼쳤다.
블랙록TCP캐피털은 기업가치가 1억∼15억 달러인 중견기업을 상대로 고금리 사모대출을 제공하는 펀드다. 블랙록이 2018년 사모펀드 운용사인 테넌바움캐피털을 인수하면서 이 펀드도 함께 편입됐다. 뉴욕 증시에서 일반 주식처럼 거래되는 이 펀드는 이 공시로 같은 달 26일 12.97%나 급락했다.
자산 매각하는 사모펀드들, 올 주가 30% 급락...연내 최대 1200억 달러 부실 경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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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6일 블룸버그통신은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도 최근 브랜드 통합 업체 퍼치에 투자한 1억 7000만 달러(약 2500억 원)를 손실로 처리했다고 보도했다. 퍼치는 2024년 초 경쟁사인 레이저에 인수된 기업이다.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의 마크 로언 CEO는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사모펀드에 대한 우려를 ‘광기’에 비유하며 “금융 시스템 전반에 위기를 초래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반박한 바 있다.
UBS는 지난달 11일 사모펀드가 소유한 소프트웨어·데이터 서비스 기업들이 AI의 위협으로 올해 안에 레버리지 론이나 사모대출에서만 750억∼1200억 달러 규모의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레버리지 론은 부채 비중이 높거나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에 대출 형태로 제공되는 자금을 뜻한다. 블룸버그통신은 같은 달 13일 식스스 스트리트,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 아레스 매니지먼트, 블랙스톤, 블루아울 캐피털 등 7개 주요 사모대출 투자회사가 관리하는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공시를 분석한 결과 소프트웨어 업종으로 볼 수 있는 투자 가운데 최소 250건이 관련 대출로 분류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1월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금융권인 미국 보험사들조차 전체 채권 투자액의 약 18%를 사모대출과 같은 비유동성 채권으로 채웠다. 보험사들은 지난해 상반기에도 전체 매입 채권에서 비유동 자산을 약 23%나 사들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 들어 뉴욕 증시에서는 사모펀드들의 주가가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올 들어 지난 3일까지 블랙스톤(-28.0%), 블루아울캐피털(-31.3%), 아레스매니지먼트(-30.3%),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26.0%), KKR(-29.0%), TPG(-30.5%) 등 대다수 사모펀드의 주가가 급락했다. 그나마 4일에는 증시 전체가 반등하면서 블랙스톤(2.90%), 블루아울캐피털(0.43%), 아레스매니지먼트(3.16%),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2.53%), KKR(3.62%), TPG(2.73%) 등이 모두 오름세를 탔다. 뉴욕타임스(NYT)는 3일 “거대 사모펀드들의 대출 문제는 ‘뱅크런(대규모 인출)’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이제 대형 사모펀드와 투자은행(IB), 헤지펀드 등 월가의 거의 모든 이들이 다음 번에는 누가 어떻게 시장에 내몰릴지 추측하는 암울한 게임에 돌입했다”고 평가했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도 3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호주 파이낸셜리뷰 비즈니스 서밋’ 연설에서 “자본 운용 경쟁이 심해지면 대출 기준이 낮아질 수 있다”며 “만약 경기 둔화나 침체가 발생하면 이런 영역에서 취약성이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캐나다중앙은행(BOC)의 티프 맥클렘 총재는 4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글로벌리스크연구소 행사에서 “경제적 불확실성이 이미 높은 상황에서 금융 불안정까지 더해지는 상황을 감수할 여유가 없다”며 “비(非)은행 금융회사들이 더 취약한 측면이 있다”고 걱정했다.
요컨대 사모대출 우려가 아직은 금융시장 시스템 전반의 문제로 확대되는 시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만 AI 기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할 수록 사모대출 펀드가 투자한 기업들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만약 AI로 업종 자체가 빠르게 대체되면서 무너지는 기업이 나올 경우 이는 사모대출 시장뿐 아니라 증시 전반의 충격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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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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