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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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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혀진 ‘곤론마루 침몰’…시모노세키 언덕에 낡은 위령비만 남아[침몰선 떠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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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지난달 23일 오후 일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 히요리야마 공원에 곤론마루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가 설치돼 있다. 시모노세키=김화영 기자 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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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처에 사는 주민들조차 이 비석이 어떤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지 잘 모릅니다.”

    지난달 23일 오후 일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 히요리야마 공원(Hiyoriyama Park·日和山公園). 향토사학자 오하마 히로유키 씨(79)가 높이 약 1.5m, 너비 2m 크기의 비석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비석 앞면의 약 3분의 1 면적에는 ‘위령비(慰靈碑)’라는 한자가 크게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건립 취지를 설명하는 한자로 된 글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비문에는 “옛 연락선 기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공원에 비석을 세워 희생자의 영면을 진심으로 기원한다”는 취지의 문장이 담겼다. 비석이 서 있는 곳은 해발 약 50m 높이의 구릉지다. 이곳에서 부산을 오가는 부관훼리의 출발지인 시모노세키항과 관문해협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 66년 전 비문만…안내표지판 없는 위령비

    이 위령비는 1940년대 시모노세키항과 부산항을 정기적으로 오가던 연락선 ‘곤론마루(崑崙丸)’ 침몰 희생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이 배는 1943년 10월 5일 새벽 시모노세키항을 출항한 뒤 약 10해리를 항해하던 중 오키노섬 인근 해역에서 미군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한 것으로 일본 언론에 보도됐다. 승선자 655명 가운데 72명만이 살아남았고, 하부 승선실에 있던 조선인과 일본인이 대거 희생됐다.

    83년 전 분명히 발생한 사건이지만 한일 양국에서 이 사건과 관련된 내용이 조사돼 제대로 밝혀진 것은 거의 없다. 양국 국민 상당수는 이런 역사적 사실이 있었다는 점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이 위령비는 현재 한일 양국에서 곤론마루 침몰 사건을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념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공간이다. 위령비는 침몰 17년이 되던 해 곤론마루와 같은 연락선에 물자를 수송했던 철도 기관인 일본국철 관계자와 희생자 유족들이 돈을 모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비석 앞 둥근 석조 조형물에는 동서남북 방향으로 ‘崑崙丸(곤론마루)’이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다. 이를 통해 이곳이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래돼 검녹색 이끼 탓에 읽기 어려운 비문 외에는 한국어와 일본어로 된 안내표지판조차 설치돼 있지 않았다. 위령비를 둘러싼 철제 울타리는 녹슬어 붉게 산화돼 있었다.

    오하마 씨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 공간과 함께 사건 자체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지고 있다”며 “과거에는 비석 앞에 꽃을 놓고 가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취재진이 약 30분 동안 현장에 머무르는 동안 공원을 찾은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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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3일 오후 일본 시모노세키 히요리야마 공원에 설치된 곤론마루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의 뒷면. 1960년 설치 후 시간이 흐르면서 이끼가 끼어 있다. 시모노세키=김화영 기자 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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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모·연구 이어가는 韓日 80대 학자

    곤론마루 침몰 사건 이후 유족이 거의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세월만 흐르면서 한일 양국에서 제대로 된 추모행사조차 열리지 못하고 있다. 현재는 양국의 고령 학자 두 명이 개인적으로 추모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국내에서는 조세이탄광 수몰 사건 연구자로 알려진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81·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이 자비를 들여 매년 10월 조촐한 추모제를 열고 있다. 국내에서 확인된 유일한 유족인 김영자 씨(86)의 가족과 지인 등 10여 명만이 추모제에 참석 중이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나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 소장은 “국가보훈부와 부산시가 관심을 갖고 더 늦기 전에 추가 유족을 찾고, 예산을 들여 매년 10월 공식 추모 행사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부관훼리를 타고 시모노세키를 찾는 한국인들이 위령비를 찾아 추념할 수 있도록 시모노세키시 등과 협의해 현장에 한글 안내 표지판을 설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 일본의 한 박물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했던 오하마 씨는 “쓸데없는 일을 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곤론마루 침몰 관련 사료 수집과 연구를 이어왔다. 그는 최근까지 지역 초등학생과 시민을 대상으로 곤론마루 격침 사건을 알리는 강의를 계속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역사 조명부터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산 근대사 전문가인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회 소장은 “승선자 가운데 일제 강제동원과 관련된 조선인이 상당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부산의 일제강제동원역사기념관이 일본 연구기관과 협력해 사료 수집과 분석 작업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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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3일 오후 일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 히요리야마 공원에 곤론마루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가 설치돼 있다. 시모노세키=김화영 기자 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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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모노세키=김화영 기자 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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