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복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장 |
◇ 전장은 도로에서 법정·제도로 이동
2019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테슬라 모델 S 차량이 오토파일럿(Autopilot)을 켠 채 시속 약 110km로 주행 중에 대형 트레일러와 충돌한 사건의 판결은 자율주행 기술 경쟁의 무게중심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테슬라가 부담해야 할 징벌적 손해 약 2억4천300만 달러)
그동안 업계는 카메라·라이다·레이다 구성, 칩셋 TOPS, 알고리즘 성능을 앞세워 스펙 경쟁을 벌여 왔다. 그러나 이제는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무엇을, 어떻게 책임지는가'라는 법적·제도적 설계가 핵심 전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독일은 2021년 '자율주행법'(Autonomous Driving Act)을 통해 레벨 4 차량의 공공 도로 운행을 허용하는 대신, '기술감독자'(technical supervisor)라는 인간 역할을 법제화했다. 차량은 지정된 구역에서 사람 없이 스스로 운행할 수 있지만, 항상 원격에서 차량을 모니터링하고 필요시 개입할 수 있는 인간 감독자가 존재해야 한다. 감독자는 차량이 최소 위험 상태(minimal-risk state)에 들어갔을 때 원인을 분석하고, 여러 옵션 중 안전한 조치를 선택할 법적 책임을 진다. 기술이 운전을 대신해도, 최종 안전 책임을 지는 '인간 주체'를 제도 안에 다시 배치한 것이다.
영국은 2018년 제정된 '자동·전기차법'(AEVA)과 2024년 제정된 '자동화차량법'(AVA)을 통해 자율주행차 사고 시 책임 구조를 재설계하고 있다. 핵심은 자율주행 모드에서 사고가 나면, 기본적으로 차량 소유자의 자동차 보험사가 피해를 먼저 보상하고, 이후 보험사가 제조사나 시스템 제공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구조다. 동시에 AVA는 '자율주행 시스템 개발자'(ASDE)와 '운행자'(NUiC operator) 등 새로운 법적 주체를 만들어, 책임의 중심이 개인 운전자에서 기업과 조직으로 이동하도록 설계했다.
이처럼 유럽 주요국은 자율주행 기술의 상용화보다 한발 앞서, '사고가 났을 때 누구를 어떻게 책임자로 볼 것인가'를 법에 먼저 새기고 있다. 기술이 사회적 신뢰를 얻기 위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제도적 안전망을 미리 깔고 있는 셈이다.
◇ 설명 가능한 AI, '운전 잘함'보다 '이유를 말할 수 있음'이 중요
자율주행의 경쟁력은 이제 주행 능력을 넘어, 사고와 위험 상황을 얼마나 투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AI가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그리고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제시할 수 없다면, 사고 발생 후 신뢰 회복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 부각되는 개념이 '설명할 수 있는 AI'(XAI, Explainable AI)다. 시각 정보(카메라), 언어 정보(지도·신호·규칙), 행동(가감속·조향)을 연결하는 비전-언어-행동(VLA) 구조처럼, '이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단지 연구자의 학술적 관심사가 아니라, 사고 조사와 법적 책임 판단에 직결되는 요소다.
사고기록장치(DSSAD, Data Storage System for Automated Driving) 역시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언제, 어떤 모드에서, 어떤 센서 입력으로, 어떤 알고리즘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를 표준화된 형식으로 기록·보존해야, 사고 후 책임 소재를 합리적으로 가릴 수 있다. 독일과 영국 법제에서도 자율주행차의 운행 데이터 저장·제출 의무가 중요한 축으로 다뤄지고 있다.
◇ 한국이 쌓아야 할 것은 '속도'보다 '신뢰 인프라'
우리나라는 2027년까지 레벨 4 자율주행 상용화를 목표로 도심 시범 운영과 규제샌드박스 실증을 확대하고 있다. 시험 운행 구역 확대와 통신·정밀지도 인프라 구축도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이번 테슬라 판결이 보여주듯, 진짜 위험과 기회는 기술 스펙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 구조에 집중돼 있다.
지금 한국이 서둘러 준비해야 할 것은 영역은 우선 기능 명칭과 마케팅 기준 정립이다.
'자율주행', '자동 운전', '보조 운전' 같은 용어를 법과 가이드라인에서 명확히 구분하고, 레벨 2·3 보조 시스템에 과도한 기대를 유발할 수 있는 이름과 광고 문구를 제도적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사고기록장치(DSSAD) 표준화와 데이터 접근 규칙을 세워야 한다. 제조사·운행자·보험사·수사기관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데이터를 볼 수 있는지, 프라이버시와 안전 조사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 제조사-보험사-운전자 간 책임·구상 구조도 설계해야 한다. 영국처럼 '피해자는 보험을 통해 우선 보호, 보험사는 사후에 제조사에 구상'하는 구조를 참고하되, 국내 보험·자동차·IT 산업 구조에 맞는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또한, 독일식으로 '기술 감독자'에 준하는 감독과 운영 기준도 도입해야 한다. 원격 모니터링과 긴급 개입을 담당하는 인력을 어떻게 자격화하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책임을 지게 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자율주행차의 성공은 사고가 없을 때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고가 났을 때, 사회가 이를 얼마나 공정하게 이해하고, 책임을 합리적으로 나누고, 피해를 신속히 구제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시민이 안심하고 핸들을 놓을 수 있으려면, '사고가 나도 이 시스템이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신뢰가 먼저 구축돼야 한다.
K-자율주행이 글로벌 표준 경쟁에서 확보해야 할 진짜 기술력은, 센서 개수나 연산 능력보다 '책임과 설명을 투명하게 설계하는 능력'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 신뢰 인프라 위에서만, 한국이 자율주행 강국을 넘어 '자율주행 신뢰 강국'이 될 수 있다.
정광복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KADIF) 단장
▲ 도시공학박사(연세대) ▲ 교통공학 전문가·스마트시티사업단 사무국장 역임 ▲ 연세대 강사·인천대 겸임교수 역임 ▲ 서울시 자율주행차시범운행지구 운영위원 ▲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자율주행 자문위원 ▲ 강릉 ITS 세계총회 조직위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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