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정이 아뢰기를, "해마다 연경(燕京)에 가는 상인들의 수레가 그전보다는 배나 되어 수십리에 걸치고 있는데, 이는 팔포법(八包法 ★)이 폐치되어 있기 때문에 상인들이 제한없이 은(銀)을 가지고 가는 소치입니다.
하니, 임금이 엄명하게 신칙(申飭)하도록 명했다.'-<숙종실록 3년 8월 23일> 인용문의 '신칙'은 '단단히 타일러서 경계하다'라는 뜻으로, 여기서 그렇게 할 대상은 '팔포'라는 것이다.
'팔포', 쉽게 와닿지 않는다.
미리 말하면 팔포는 의외로 무게 단위다.
조선시대 사무역의 일종으로 팔포무역이 성행했다.
조정은 사신이 중국으로 갈 때 8포(包)를 가져갈 수 있도록 허용했다.
사신들은 8포의 물품을 압록강 국경을 넘자마자 팔아 이를 현금화했다.
이 현금을 가지고 중국 책, 그림 등을 구매하는 사례가 많았다.
'포'는 말 그대로 짐꾸러미를 의미한다.
이때 압록강 국경에서는 1개 꾸러미의 무게를 10근(斤)으로 제한했다.
따라서 '팔포'를 가져갔다는 것은 80근 무게의 물품을 휴대하고 국경을 넘었다는 것이 된다.
이때 가장 많이 가져간 것이 인삼이었다.
국내 인삼이 팔포무역 영향으로 품귀를 빚을 정도로 중국으로 빠져나갔다.
심지어 청나라 사람들이 압록강을 몰래 넘어와 인삼을 캐갈 정도였다.
숙종은 인삼 휴대을 금지하고 대신 은(銀)을 가져가도록 했다.
청나라가 은본위제도를 채택했기 때문으로, 이는 은행(銀行)의 어원을 낳았다.
본래 '은항'으로 불러야 맞으나 언중들이 오해, 지금의 은행(bank)이 됐다.
/대기자(문학박사) 팔포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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