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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7 (토)

    이슈 미술의 세계

    강요된 여성의 모습에 반항하는 맥박[책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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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나고 찢긴,

    조이스 캐럴 오츠·마거릿 애트우드 등

    15명 지음 | 신윤경 옮김

    문학수첩 | 400쪽 | 1만8000원

    경향신문

    조이스 캐럴 오츠는 <조각나고 찢긴,>에 실린 단편 ‘평온의 의자’에서 여성의 심리·사회적 갈등을 ‘히스테리’라는 일탈적 질병으로 치부한 뒤 치료라는 이름으로 벌했던 19세기 미국 사회의 모습을 다룬다. ⓒCARISSA GALLO, 문학수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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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충제를 피해 여성 몸속에 들어간 달팽이 영혼 “다 사라지면 좋겠어”
    마거릿 애트우드 등 여성 작가들‘보디호러’ 작품 통해 가부장제 고발

    한 남자가 뿌려대는 살충제 때문에 죽을 뻔했던 달팽이의 영혼이 어쩌다 은행에서 고객 서비스를 담당하는 여성 상담원의 몸속에 들어간다. 아쉽게도 달팽이는 혼자서 그 육체를 점유하지는 못했다. 달팽이의 영혼과 여성의 영혼이 하나의 몸에서 공존하게 된다. 달팽이는 여성이 하는 지루한 상담 일이 따분하다. 문제는 하나 더 있다. 여성의 남자친구가 그에게 살충제를 뿌려댔던 남자와 놀랍도록 비슷했다는 것이다.

    “잠시 후 남자와 우리의 몸은 교미 초기 단계에 진입했다. 그리고 민망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작은 나의 초록 영혼은 초고속열차에 묶인 걸음마쟁이처럼 속절없이 그 과정에 휘말려 들어갔다. 달팽이와 비교했을 때 인간의 성교 행위는 얼마나 상스러운 것인지!”

    인간 여성의 몸에서 달팽이는 정체성 혼란을 느낀다. “신체 이형증”이라고 말하는 의사 앞에서 여성의 몸을 한 달팽이의 영혼이 말한다. “다 사라지면 좋겠어요. 전 잘못된 몸에 들어와 있거든요.” 달팽이의 영혼에게 ‘여성의 몸’은 그 자체로 떼어낼 수 없는 거대한 속박이다.

    <시녀 이야기>를 쓴 마거릿 애트우드의 단편인 ‘환생 혹은 영혼의 여행’ 내용 중 일부다. 여성 작가 열다섯 명의 ‘보디호러’ 작품을 모은 책 <조각나고 찢긴,>에 실렸다. 보디호러란 신체의 기괴한 변형과 절단 등을 통해 공포감을 조성하는 공포물의 하위 장르 중 하나다. 신체 이미지를 부각한다는 점에서 이를 여성의 몸과 결부시켜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할리우드 배우 데미 무어에게 생애 최초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겨준 영화 <서브스턴스>도 보디호러다.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의 독립예술영화였음에도 국내에서도 50만이 넘는 관객을 불러들이며 화제를 모은 작품은 주인공 엘리자베스(데미 무어)가 젊고 매력적인 신체를 얻으려다 기괴한 파국을 맞이하는 모습을 그린다. 영화에서 보이는 변형된 신체만큼이나 어린 나이와 젊은 외모를 우선하는 사회적 분위기 역시 공포스럽다.

    이 책에 실린 열다섯 편의 이야기도 비슷한 공포를 유발한다. 조이스 캐럴 오츠의 ‘평온의 의자’는 역사적 기록에 의존한 작품이다. 히스테리 환자로 불리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나의 이런 성향이 남편에게 얼마나 큰 조바심과 상처와 분노와 절망을 주었던가!” “내 ‘아름다움’은 남편의 소유이기에 내 마음대로 파괴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난 배워야 했다.” 여성은 반성하며 정신병원에 입원해 벌과 같은 치료를 받는다. 여성의 심리·사회적 갈등을 ‘히스테리’라는 일탈적 질병으로 치부한 뒤 치료라는 이름으로 벌했던 19세기 미국 사회의 모습을 담았다.

    책은 현지에서 2023년 출간됐다. 현대 미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매년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로 꼽히는 고딕소설의 대가인 오츠가 작품을 싣는 것 외에 책의 편집과 기획에도 참여했다. 그는 엮은이의 서문에서 이 책에 대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서로 너무나 다르지만, 그 안에는 하나의 맥박 같은 것이 고동친다.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강요한 속박에 반항하며 맞서는 맥박”이라며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묻혀 있던 꿈이 저주처럼 되살아나는 그 다양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열다섯 편의 이야기에서 주인공들은 다른 인물들에게 해를 가하거나 스스로 보디호러의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형성된 올바른 여성의 모습에서 벗어나며 충격과 같은 사건을 만난다. 타나나리브 듀의 ‘댄스’는 삶의 절반을 할머니를 돌보는 데 바친 마흔 살 여성이 할머니의 죽음 이후 발작과 같은 춤과 악마적 웃음에 사로잡히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리사 림의 ‘거울과 춤’은 할머니에서 어머니, 딸로 이어지는 3대의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의 독설이 다음 세대 여성에게 저주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에이미 라브리의 ‘육안 해부학’은 수록작 중 유일하게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의대생인 남성이 실습용으로 제공된 여성의 시체를 마주하고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남성이 시체에 벌이는 끔찍한 행동은 이후 그에게 더한 죗값으로 돌아온다.

    책 전반에 현대미술 작가인 로렐 하우슬러의 우울하고 괴기스러운 삽화가 더해져 음산한 분위기를 배가한다.

    경향신문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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