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박 중인 유조선도 공격받자
국제유가 하루 만에 8% 올라
카타르 “2주 내 150달러 될 것”
李 “기름값 바가지 엄정 대응”
6일 서울 서초구 경부고속도로 만남의광장 주유소가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들로 혼잡을 빚고 있다. 이 주유소는 한국도로공사가 운영하는 알뜰주유소여서 기름값이 시중보다 저렴하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날 오후 4시 기준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은 1930.52원으로 전날보다 41.45원 급등했다./장경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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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유조선 공격으로 국제 유가가 8% 넘게 치솟은 6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이 L당 1874원(오후 7시 기준)을 돌파했다. 닷새 만에 10% 이상 올랐다. 서울은 1927원으로 2000원대 진입을 눈앞에 뒀다. 앞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 페르시아만에 정박 중이던 유조선까지 공격했다는 소식에 5일(현지 시각)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하루 만에 8% 넘게 급등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유업계와 주유소를 향해 고강도 경고를 했지만, 유가 오름세를 막지는 못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중동 사태에 따른 국내 유가 상승을 지적하며 “기름값 바가지처럼 공동체의 어려움을 이용해서 부당한 폭리를 취하려는 반사회적인 악행에 대해서는 아주 엄정하고 단호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중동 상황이 금융, 에너지, 실물 경제 등 핵심적인 민생 영역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가용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X(옛 트위터)를 통해서도 “불법을 자행하며 국민경제 질서를 어지럽히는 악덕 기업들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치게 하겠다”고 했다.
대통령 발언 이후 정부는 전면 대응 체계로 전환했다. 범부처 합동점검단이 이날부터 불법 석유 유통, 매점매석, 가짜석유·혼합판매 등 불공정 거래 행위 집중 단속에 나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담합 여부 조사에 착수했고, 재정경제부는 유류세 인하 여부를 검토 중이다. 이날 청와대는 에너지 수급 안정화를 위해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총 600만 배럴의 원유를 긴급 도입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편 세계 2위 LNG 생산국 카타르의 사드 알카비 에너지장관은 6일(현지 시각)자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불가능한 상태가 2~3주 지속되면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아직 불가항력을 선언하지 않은 걸프 에너지 수출국들도, 이 상황이 계속되면 며칠 내로 모두 선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타르는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최대 LNG 생산기지가 피격된 뒤 통제 불능의 사태로 계약 이행을 할 수 없다는 불가항력 선언을 한 상태다.
/그래픽=김성규 |
◇비싸진 중동 원유는 도착도 안했는데… 주유소가 먼저 비싸졌다
6일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L당 1874.2원(한국석유공사 오피넷)으로 전날보다 39.9원 상승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은 하루 만에 59.6원이 오른 1889.8원으로 휘발유 가격을 추월했다. 서울은 휘발유와 경유 모두 1900원을 넘겼다. 평균 휘발유 가격은 전날보다 38.2원 오른 1927.3원, 경유 가격은 50.7원 상승한 1945.9원이다. 서울 휘발유 가격이 1900원을 넘은 건 3년 7개월, 경유 가격이 1900원을 넘은 것은 3년 3개월 만이다.
소비자들은 국내 유가 상승 속도에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전쟁이 나자마자 바로 다음날부터 가격이 오르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가격이 오른 원유가 도입도 되기 전에 시차도 없이 이렇게 가격이 급등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강경한 발언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실제 가격 구조를 들여다보면 상승 메커니즘이 보인다. 정유사들의 국내 공급가격은 싱가포르 원유 현물시장과 연동된다. 이란 사태로 현지 현물 가격이 급등했고, 정유사 공급 가격에 그에 따른 상승 폭이 일부 반영된 것이다. 여기에 추가 상승을 우려한 주유소 업주들이 재고 확보와 수익 보전을 위해 판매가를 선제적으로 올리면서 오름세가 가팔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부 주유소는 불안감에 쫓긴 소비자들이 한꺼번에 몰리자 가격을 크게 올리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가격 안정 수단으로 운영하는 알뜰주유소도 가격 상승을 피하지 못했다. 알뜰주유소는 공기업인 한국석유공사와 농협이 공동으로 석유제품을 구매해 일반 주유소보다 리터당 100원 안팎 저렴하게 공급하는 주유소다. 정부가 직접 기름을 공급하는 채널조차 싱가포르 현물가 연동을 피해 갈 수 없다는 의미다. 다만 석유공사는 이날 각 알뜰주유소에 공문을 보내 “2월 28일 이후 가격 인상 폭이 높거나 과다 마진을 취하는 주유소는 계약 미갱신 등 관리 조치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정부의 전방위적 압박에 국내 정유 4사를 회원사로 둔 대한석유협회, 석유대리점들의 단체인 한국석유유통협회, 전국 주유소 사업자를 대표하는 한국주유소협회 등 석유 3단체는 이날 “국제 유가 인상분이 주유소 가격에 급격히 반영되지 않도록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불타는 UAE 석유 탱크 지난 5일 오전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 석유산업지구의 석유 저장 탱크 중 일부가 불타는 모습이 위성 사진에 포착됐다. 탱크 중 한 곳은 이미 전소했고, 아래쪽에선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푸자이라 항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선박 급유 허브 중 하나로, 이란의 공격을 받고 있다./Soar Atl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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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정치적 시그널은 이처럼 업계의 자발적 자제를 이끌어내는 효과는 있다. 2011년 이명박 정부가 아랍의 봄 당시 정유사를 압박해 3개월간 리터당 100원을 낮췄던 전례도 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유가가 폭등하자 “석유값이 묘하다”며 정유사들을 압박해 3개월간 리터당 100원씩 가격을 낮추게 했다. 그러나 한시적 조치가 끝난 하반기부터 가격은 다시 올랐고, 정부는 결국 알뜰주유소 도입이라는 구조적 대안으로 선회했다. 사태 장기화가 우려되는 이번의 경우 추가적인 가격 오름세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기는 더욱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는 유류 최고 가격제를 검토 중이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23조는 석유의 수입·판매 가격이 현저하게 등락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경우 산업부 장관이 석유정제업자·수출입업자·판매업자의 석유 판매 가격 최고(저)액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한다. 법 조항은 존재하지만 1997년 석유제품 가격 완전자유화 이후 실제 발동된 사례가 없는 비상 카드다. 시행된다면 약 30년 만의 정부 직접 가격 통제가 된다.
가격 상한을 법으로 묶으면 당장의 소비자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 그러나 공급자 입장에서 적정 이익이 보장되지 않으면 정유사나 주유소들이 공급 자체를 줄이거나, 손해가 예상되는 지역·유종에 대한 판매를 기피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지역별·주유소별로 원가 구조가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일률적 상한선 설정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도 논란이다. 신현돈 인하대 교수는 “가격 통제보다는 유류세 한시 인하나 비축유 방출이 시장 왜곡 없이 소비자 부담을 낮추는 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말했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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