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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7 (토)

    칭찬을 유도하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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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주말]

    [김신회의 매사 심각할 필요는 없지]

    나이 들어도 칭찬은 고파

    용기 내서 ‘멍석’을 깔자

    조선일보

    일러스트=한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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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었던 한파가 수그러들어서인지 외출할 때마다 어르신들 모습이 많이 보인다. 여전히 무장한 차림새여도 발걸음이나 표정에서 봄을 기다리는 설렘이 느껴진다. 어제는 동네 공원 벤치에 70대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앉아 있었다.

    “요새는 입맛이 읍써.”

    “난 한참 됐어. 그래도 먹어야 혀.”

    “맞어. 어제는 동태찌개 해 갖구 삼겹살 궈 먹었어. 취나물 무치구.”

    입맛이 없음에도 반찬을 세 개나 해 드셨다는 어르신은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더니 옆의 어르신에게 화면을 보여줬다. 밥상 사진인 것 같았다. 화면을 본 옆의 어르신은 말했다. “야, 넌 혼자서도 잘 먹고 산다.”

    입맛이 없다고 말해 놓고 잘 먹고 산다는 말을 들어 머쓱한 건지 아니면 뿌듯한 건지 반찬 세 개 어르신(편의상 이렇게 칭한다)은 조용히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옆의 어르신은 다시 화면을 보더니 말했다. “밥을 왜 이렇게 많이 먹냐, 야.” 반찬 세 개 어르신은 반론을 제기했다. “아녀. 떠놓긴 했는데 (손가락 끝으로 작은 주먹을 만들며) 요맨큼만 먹었어.”

    대화는 묘하게 엇갈리고 있었다. 작가로서의 동물적인 감각을 발휘해보니, 반찬 세 개 어르신은 자신의 요리 실력을 자랑하고 싶은 눈치였다. 비록 입맛이 없더라도, 혼자 차려 혼자 먹는 밥상이라도 한껏 실력을 발휘해 만들어 먹었다는 걸 알리고 싶은 것 같았다. 옆의 어르신은 뒤늦게 눈치 챘는지 한 마디 덧붙였다. “야, 엄청 맛있어 보인다, 야.”

    그 말에 반찬 세 개 어르신의 표정이 풀어졌다. “에이, 그냥 대충 해 먹는 거지 뭐.” 그러자 옆의 어르신이 거들었다. “자기 음식 잘하잖여. 내가 자기 손맛을 알잖여.” 그러자 반찬 세 개 어르신은 드디어 웃었다. “후훗.”

    “혼자 그렇게 챙겨 먹고 살게 되질 않어. 잘 허구 사네.”

    연이은 칭찬에 반찬 세 개 어르신은 한껏 해사해진 얼굴로 말했다. “내일 밥 먹으러 오던가.”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또 다른 어르신들의 모습이 보였다. 동네 친구로 보이는 두 여성은 팔을 앞뒤로 흔들며 열심히 걷고 있었다. 그중 한 어르신이 말했다. “아니 그래서, 그 사람이 그날따라 유난히 편해 보이는 거야.”

    “자기가 있어서 그래. 자기가 사람을 편하게 해주잖아.”

    “내가?”

    “응. 자긴 사람들한테 싫은 소리 안 하잖아. 무슨 말을 해도 그냥 다 들어주고.”

    “그런가? 내가 사람을 편하게 해주나? 나 안 그래도 그 소리 많이 들었다.”

    그때, 사람을 유난히 편안하게 해준다는 어르신의 표정이 어떨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이미 봄이겠지.

    젊음과 멀어졌다는 자각이 드는 순간은 많고 많지만, 그중 하나는 아무도 나를 칭찬해 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때다. 예전에는 어딜 가더라도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산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존재감이 희미해진다. 다들 비슷하겠지, 하고 마음을 다독여 보지만 어쩐지 허전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칭찬을 듣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칭찬은 용기를 주고, 이만하면 잘살고 있다는 만족감을 전해준다. 자존감도 막 올라가는 것 같다. 그런데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을 땐 어떡하느냐고? 앞서 말한 어르신들처럼 스스로 칭찬을 유도하면 된다. 칭찬을 듣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칭찬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대신 상대가 맘 편히 칭찬할 수 있도록 친히 멍석을 깔아줘야 한다.

    오늘은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내 옆줄에 젊은 남녀 두 명이 섰다. 그 뒤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지게 차려입은 노파가 섰다. 잠시 후 그분은 앞에 선 젊은이들의 등 뒤로 말을 걸었다. “대학생들인가 봐?” 두 사람은 어색하게 등을 돌려 대꾸했다. “네.”

    그러자 노파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화를 이어갔다. “우리 손주들도 대학생인데.”

    두 사람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어색해하며 미소 지었다. 그 반응이 긍정의 신호로 느껴졌는지 노파는 거침없이 대화를 주도해 나갔다. “큰 손주는 ○○대학교 다녀. 둘째 손주는 **대학교 다니고.”

    청년들이 말없이 웃자 노파는 말했다. “애들이 다 공부 잘했어. 머리가 좋아.” 그 말에 청년들은 대단하다는 듯 “오~” 하는 표정을 지었고 노파는 기쁜 표정으로 손주들의 자랑을 이어갔다. 착한 청년들은 이후에도 노파의 손주 자랑을 인내심 있게 들어줬다.

    이틀 연속으로 자랑 멍석 깔기 기술을 목격했다. 진정한 외향인의 대화도 구경했다. 생전 처음 본 사람에게 손주들이 다니는 대학 이야기까지 한다는 건, 나 같은 내향인으로서는 생각만으로도 얼굴 빨개지는 일이다. 하지만 나도 그 뒤를 잇게 될까. 현재로서는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지만, 만약 그때 제가 용기 내서 멍석을 깐다면 옜다, 하고 칭찬 좀 부탁 드립니다.

    [김신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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