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될 전시 기획했던 로저 프라이
혹평에도 젊은 예술가 발굴 이어가… ‘후기 인상주의’ 용어 최초로 사용
‘블룸즈버리그룹’서 인연 쌓아온 버지니아 울프가 전기 집필 맡아
◇로저 프라이/버지니아 울프 지음·박병화 옮김/480쪽·2만6000원·글항아리
로저 프라이가 그린 자화상. 버지니아 울프는 언니 버네사 벨을 통해 프라이와 친해졌다. 프라이와 벨은 친밀한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프라이의 전기에서 울프는 이러한 관계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는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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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한 남자가 영국 런던의 로열 프리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케임브리지대의 슬레이드 미술학교 교수로 활발히 강의하고 글을 썼던 이 남자는 집에서 넘어졌다가 대퇴부 골절을 당해 수술을 받았지만 후유증에서 회복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문학가 버지니아 울프는 “내 삶의 커다란 빛이 꺼졌다”며 그의 전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 남자는 ‘후기 인상주의’란 말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비평가, 로저 프라이다.
울프가 프라이를 각별하게 생각했던 배경엔 두 사람이 교류했던 지식인 모임 ‘블룸즈버리그룹’이 있다. 울프와 그의 남편 레너드 울프, 화가 버네사 벨,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문학가 리턴 스트레이치가 주축이었다. 이들은 런던 블룸즈버리 지역에 모여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토론을 즐겼다. 지적으로 교류했던 친구가 세상을 떠난 것. 주변에서 울프에게 프라이의 전기를 써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프라이는 20세기 초 영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 비평가로, 대학에서 미술 강연을 하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도 일했다. 프라이는 특유의 감식안으로 작품의 진위를 감정하고 저서를 집필하며 권위를 얻었지만, 1910년 ‘마네와 후기 인상파’ 전시를 기획하며 혹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2회 후기 인상파 전시를 열고 젊은 예술가들을 이끌며 기획, 강연 등 여러 활동을 지속했다.
울프는 당시 프라이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를 인용하며 그의 내면을 보여준다. 프라이는 “세련된 안내자에서 믿을 수 없이 경박한 미치광이로 전락했다”며 당혹감을 토로했다. 전시에 나온 세잔의 작품을 두고 당대 유력 신문이 유보적인 비평을 한 데 대해 울프는 “시간은 프라이의 편이었고 지금은 누구도 세잔, 마티스를 비판적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현대 여성 독자들이 좋아하는 울프 특유의 섬세한 인물 내면 묘사는 프라이의 성장기를 쓴 책 초반부에 드러난다. 엄격한 퀘이커교도 집안에서 태어난 프라이가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과학을 공부하다가 케임브리지대에 가서 예술과 철학을 논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느끼는 마음의 변화를, 울프는 프라이가 쓴 편지의 행간에서 읽어낸다.
이 책은 울프가 세상을 떠날 무렵 쓴 책 중 하나다. 집필 당시 울프는 일기에 “이 책이 나를 노예처럼 부린다”거나 “무거운 돌을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기분”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전쟁과 우울증의 공포가 옥죄어 오던 상황에서 이 책의 집필이 울프의 중심을 잡아주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
문학 작품과는 달리 실존 인물의 삶을 재구성하는 전기라는 점에서 다소 건조한 문체가 주를 이룬다. 프라이와 개인적 교류가 있었음에도 울프는 ‘프라이의 친구’로 이 책을 썼다기보다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전기 작가’로서 글을 썼다. 두 사람을 둘러싼 인물들의 관계가 궁금한 독자라면 행간을 읽어봐야겠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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