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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7 (토)

    ‘직지’의 마음으로 천년을 거닐다…뚜벅뚜벅 김천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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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길은 직지사로 통한다

    경향신문

    평화의 탑이 우뚝 선 사명대사공원은 승병장 사명대사의 역사와 이야기를 품은 공간이다. 해 질 녘 조명이 켜지면 금빛으로 빛나는 탑 그림자가 연못에 내려앉으며 낮과는 또 다른 장면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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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金泉), 금빛 샘이라는 뜻이다. 이름 두 글자 안에 이 도시의 역사와 자존감이 녹아 있다. 옛날 이 지역에는 금이 난다고 하여 금지천(金之泉)이라 불린 샘이 있었다. 고려시대 초 샘 아래에 역참이 들어서면서 금천역(金泉驛)이라 불리게 되었고, 김천이라는 지명도 여기서 비롯됐다. ‘금천’이 ‘김천’으로 바뀐 데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병자호란을 일으킨 청나라(후금)가 자신들을 금나라의 후손이라 일컫자 같은 ‘금(金)’ 자를 쓰는 것을 치욕으로 여긴 선비들이 ‘김(金)’으로 바꿔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니 김천에서 떠올릴 것은 김밥천국만이 아니다.

    고요한 숨결이 내려앉은 천년 고찰

    경향신문

    직지사 비로전(위)과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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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의 고고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천년 고찰 직지사와 만난다. ‘직지(直指)’라는 이름은 선종의 중요한 가르침인 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바로 들여다보는 것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뜻한다. 신라 눌지왕 시기 아도화상이 창건한 직지사는 오랜 시간 황악산 자락을 지켜온 고찰이다. 영남 북부 일대를 대표하는 중심 도량으로 긴 세월의 흔적이 경내 곳곳에 배어 있다. 숫자보다 먼저 느껴지는 건 고요함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깊은 정적 속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사찰 진입로를 지나 일주문에 들어서면 천년 세월을 훌쩍 건너온 듯한 느낌이다. 현재의 대웅전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건축물을 이후 중건한 것이다. 석가모니불과 약사불, 아미타불 세 불상을 모시고 있으며, 그 뒤를 가득 채운 세 폭의 삼존불 탱화는 조선 후기 불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으로 꼽힌다. 앞마당에는 두 개의 삼층 석탑이 나란히 서 있다. 늠름하고 웅장한 자태가 마치 대웅전을 호위하는 수호신처럼 보인다. 비로전 안에 봉안된 천불상 앞에 서면 ‘직지’의 마음을 반듯하게 세울 수 있다. 수많은 불상 가운데 자신과 인연이 맺어지는 부처가 하나씩 있다고 한다. 마음가짐을 정갈히 한 후 절을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첫눈에 들어오는 불상이 바로 그 부처라고 한다. 말보다 침묵이 어울리는 곳. 오랜 시간 이곳을 찾았던 간절한 마음들이 작은 전각 안에 켜켜이 쌓여 있다.

    이곳에는 한 소년의 이야기도 스며 있다. 조선 후기 부모를 모두 여읜 유정은 열여섯 살에 황악산 직지사로 들어와 머리를 깎았다. 이후 출가한 지 2년 만에 승과 선과에 합격했으며 30세에는 직지사 주지로 임명됐다. 이 소년이 훗날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일본과 강화협상을 이끌어낸 사명대사다. 그가 이뤄낸 공이 얼마나 컸던지 당상관 관직이 내려졌으며 사후에 비석도 건립되었다. 비로전과 관음전 사이에 자리한 사명각에는 지금도 그의 진영(초상화)이 모셔져 있다.

    낮과 밤이 다른 평화의 탑

    경향신문

    김천시립박물관에 전시된 김천 광덕리 석조보살입상 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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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지사를 나선 후에도 사명대사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사찰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내려가면 수만평 부지에 조성된 사명대사공원에 닿는다.

    공원 입구에서부터 거대한 목조탑이 시선을 압도한다. 높이 41.5m, 5층 구조로 건립된 평화의 탑이다. 이 탑에 사용된 목재만 37만3300여재, 기와는 3만6000장 정도 쓰였다. 신라 황룡사 9층 목탑을 참조한 것으로 국내 목조탑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청 대신 천연 옻칠로 마감한 목재는 빛이 새어드는 각도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탑 안에 들어서면 덩달아 마음도 웅장해진다. 평화의 탑은 나라가 위태로울 때 용감히 나선 사명대사의 정신을 담고 있다. 사명대사는 승병장으로 왜군에 맞섰을 뿐 아니라 전쟁이 끝난 뒤에는 국서를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담판을 짓기도 했다. 협상을 통해 강제로 끌려갔던 조선인 포로 3000여명을 데려온 일화는 역사에 길이 남아 있다. 탑 내 전시실에 사명대사와 관련한 많은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져 있다.

    공원은 사명대사의 서사만큼 넓고 깊다. 북암지 연못 주변을 따라 걷는 산책길은 자연을 그대로 품고 있어 발걸음이 절로 느려진다. 해가 지면 평화의 탑에 조명이 켜지고 수면 위로 탑 그림자가 내려앉는다. 어둠이 내려앉아야 비로소 완성되는 장면. 밤에도 이곳을 찾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공원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하나 있다. 처음에는 명칭을 ‘황악산 하야로비공원’이라 붙였다고. ‘하야로비’는 ‘왜가리’를 뜻하는 순우리 옛말이다. 그런데 일본어와 발음이 유사하다는 민원이 잇따랐고, 결국 시민 설문조사를 통해 개장 전 사명대사공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결과적으로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이 됐다. 공원 안에 자리한 카페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다. 평화의 탑을 바라보며 마시는 차 한 잔, 시간도 천천히 흐른다.

    김천의 시간을 걷다

    경향신문

    김천시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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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명대사공원 안에 김천시립박물관이 있다. 공원을 거닐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닿는 자리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도시의 모든 것을 한 공간에 담아 놓았다.

    첫 번째 전시에서는 김천의 가장 오래된 기억을 만난다. 송죽리 유적 고인돌을 재현해 놓았으며 옛적 토기와 출토 유물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고려청자와 항아리, 조선시대 읍지까지 시대순으로 전시가 이어진다. 유물을 따라 걷다 보면 고대의 시간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두 번째 전시실은 결이 조금 다르다. 불교, 유교, 기독교까지 김천에 뿌리내린 다양한 종교 문화들을 오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직지사를 비롯해 김천의 전통사찰이 8개, 폐사지는 22개에 이른다. 조선시대 서당에 관한 자료들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밖에 여러 전시를 통해 김천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해보는 시간이 된다. 아이가 있다면 어린이 자연체험실도 빼놓지 않아야 한다. 깨진 토기 파편을 맞춰보고, 토기를 복원해보고, 탑을 쌓고, 유물 퍼즐을 맞추고 알뜰히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것저것 체험 활동에 나서다 보면 아이도 부모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도자기로 떠나는 유럽 여행

    경향신문

    김천세계도자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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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명대사공원과 맞닿아 있는 직지문화공원 안에도 작은 박물관이 하나 있다. 김천세계도자기박물관은 일본에서 귀화한 복전영자(福田英子) 여사가 수십년간 수집한 유럽 도자기와 크리스털 1000여점을 김천에 기증하면서 시작됐다. 박물관은 아담하지만 도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곳곳에서 읽힌다.

    전시 공간은 세 개의 테마로 나뉜다. 먼저 도자기의 역사와 제작 과정 등을 살펴본 후 걸음을 옮기면 청자와 백자의 단아한 선이 눈길을 붙잡는다. 이후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독일 마이센, 프랑스 세브르, 영국 로열 크라운 더비 등 유럽 명가의 도자기들이 저마다 매력을 뽐낸다. 각국을 대표하는 도자기들을 서로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본차이나가 점토에 뼛가루를 섞어서 만든 고급 도자기라는 설명도 흥미롭다. 마지막에는 크리스털과 유리 공예가 기다리고 있다. 세계적인 유리 공예가인 르네 랄리크과 에밀 갈레의 작품들이 시선을 끈다.

    박물관을 나서며 하루를 돌아봤다. 천년 고찰의 종소리와 사명대사의 발자취, 세계 각지 도자기와 반짝이는 크리스털이 남긴 여운까지. 긴 역사를 품은 김천에서의 하루가 꽉 차고도 남았다.

    >> 김천 하면 역시 ‘김밥 천국’

    경향신문

    김천에서 김밥 한 줄 먹지 않고 돌아가는 건 아쉽다. 첫해부터 큰 성황을 이룬 ‘김밥축제’ 명소이기 때문이다. ‘김천’이 ‘김밥천국’의 줄임말처럼 들린다는 우스갯소리를 차용해 만든 축제 덕에 더 유명해졌다.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로컬 김밥 맛집 세 곳을 소개한다.

    오단이 꼬마김밥 >>

    경향신문

    이름부터 재밌다. 오뎅(어묵), 단무지, 오이 세 가지 재료 이름을 합쳐 ‘오단이’다. 꼬마김밥 단일 메뉴 하나로 3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집이다. 간장 소스에 볶아낸 어묵이 달고 짭짤한 맛을 낸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라 서너 줄은 금방이다. <생활의 달인>에 소개된 뒤 김천 밖에서도 찾아오는 이들이 생겼다. 부곡동과 신음동 두 곳이 있으며 포장만 가능하다.

    눈물이 펑펑 >>

    경향신문

    이름만으로 궁금해지는 집이다. 묵은지김밥, 아기김밥부터 매콤 오징어김밥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취향대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집이다. 내용물이 푸짐한 데다 특히 매콤 오징어김밥은 맵찔이도 자꾸만 손이 가게 하는 중독성이 있다. 포장만 가능.

    청개구리 분식 >>

    경향신문

    모암동 골목에 30년 넘게 자리한 분식집이다. 시그니처는 명태채를 넣은 김밥.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조합이지만 의외로 다른 재료들과 잘 어울린다. 여기에 고소한 참기름과 통깨 향이 한 줄을 더 집게 만든다. 면볶이도 이 집만의 별미인데 우동 사리를 넣어 매콤하게 볶아낸 맛이 여느 분식집과 다르다.

    김천 | 글·사진 정은주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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