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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7 (토)

    [AJP 데스크 칼럼] 유가 위기 현실화, 여전한 에너지 시스템의 취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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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유가가 다시 세계 경제의 취약한 고리를 건드리고 있다.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93달러를 넘어 2년여 만의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70달러 초반이던 가격이 중동 전쟁의 여파로 단숨에 20달러 이상 뛰었다.

    시장이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단순한 지정학적 긴장이 아니라, 원유가 실제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문제의 중심에는 페르시아만 입구의 좁은 해상 통로, 호르무즈 해협이 있다. 이곳을 통해 매일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약 20%가 이동한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상선 통과는 사실상 마비 상태에 가까워졌고, 하루 평균 130여 척이 지나던 해협의 통항량은 최근 한 자릿수 수준으로 급감했다. 공급 자체가 끊어진 것은 아니지만, 공급이 세계 시장으로 이동하는 경로, 말하자면 ‘기름길’이 막힌 것이다.

    이 상황은 산유국들을 딜레마로 몰아넣고 있다. 원유를 계속 생산할 수는 있지만 이를 실어 나를 수 없기 때문이다. 생산된 원유는 저장시설로 밀려들고 있고, 그 공간은 빠르게 차오르고 있다. 쿠웨이트는 저장 공간 부족을 이유로 감산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라크 역시 주요 유전의 생산량을 크게 줄였다. 루마일라 유전은 하루 약 70만 배럴, 웨스트쿠르나2 유전은 약 45만 배럴의 생산이 감소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의 대형 저장 시설 역시 몇 주 안에 한계에 도달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원유 산업에서는 저장 탱크가 가득 차는 상황을 ‘탱크탑(tank tops)’이라고 부른다. 이 단계에 이르면 산유국들은 결국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전은 단순히 스위치를 끄듯 중단할 수 있는 시설이 아니다. 생산을 멈추면 저류층 압력이 손상될 수 있고, 재가동에는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유전마다 차이는 있지만 정상 생산을 회복하는 데는 수일에서 수주가 걸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해상 운송이 재개되더라도 공급이 곧바로 정상화되기는 어렵다.

    천연가스 상황은 더 위태롭다. 세계 3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국 가운데 하나인 카타르는 최근 군사 공격으로 LNG 생산을 중단했다. 카타르 에너지부 장관 사드 알카비(Saad al-Kaabi)는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전쟁이 몇 주만 지속돼도 세계 경제 성장률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상승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여기에 또 다른 변수도 등장했다. 러시아는 최근 유럽에 대한 에너지 공급을 축소하거나 중단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동시에 중국은 정제유 수출 중단과 비축 확대에 나섰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정유업체들에 정제유 수출을 중단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이 공급을 외부로 내보내기보다 내부 비축을 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에너지 시장이 단순한 가격 문제가 아니라 전략적 자원 경쟁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현재의 가격 상승을 곧바로 경제 위기의 신호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브렌트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인 2022년에도 상당 기간 90달러 이상에서 거래됐고, 2011년부터 2014년까지는 100달러를 웃도는 수준이 이어졌다. 당시 세계 경제가 모두 침체에 빠졌던 것은 아니다. 에너지 시장은 지정학적 충격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공급 경로가 회복되면 가격이 비교적 빠르게 안정되는 경우도 많다.

    결국 관건은 가격의 절대 수준이 아니라 지속 기간이다. 유가가 단기간 급등했다가 다시 안정되는 경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100달러 이상의 가격이 장기간 유지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기업의 생산비가 상승하고 물가 압력이 커지면서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금리 인하가 예상되던 시기에 에너지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개를 들면 통화 완화 정책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는 이런 충격에 특히 민감하다. 국내 원유 수입의 약 70%가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중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사실상 한국 경제의 에너지 공급망 상당 부분이 이 좁은 해협에 연결돼 있는 셈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경우 한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약 0.3%포인트 낮아지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약 1%포인트 이상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국제유가가 10% 상승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약 0.22%포인트 높아질 것이라는 증권업계 추정도 있다.

    이번 유가 급등은 단순한 시장 변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세계 에너지 공급망이 얼마나 좁은 지리적 통로와 정치적 변수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다시 드러낸 사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러시아와 중국까지 에너지 전략을 조정하기 시작하면서, 시장은 단순한 공급 충격을 넘어 에너지 지정학의 재편 가능성까지 바라보고 있다.

    지금의 가격 상승이 장기적인 에너지 위기로 이어질지, 아니면 일시적인 지정학적 충격으로 끝날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국제유가가 단순한 상품 가격이 아니라 세계 경제 구조의 취약성이 드러나는 지점이라는 사실이다.

    유가 그래프가 흔들릴 때마다, 그 아래 놓인 에너지 질서 역시 함께 드러난다.

    아주경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충돌 속에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대한 공격을 경고한 가운데, 유조선들이 2026년 3월 3일 아랍에미리트 푸자이라 해안 인근 해상에서 대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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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혜승 AJP 편집국장 ellenshs@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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