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이 자극적인 음식에 열광할수록 SNS 알고리즘은 영양은 없고 특이한 질감만 강조하는 음식을 자동적으로 노출시켜 대중을 필터 버블에 빠지게 한다. ‘필터 버블’은 AI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과거 검색 기록, 클릭 후 머문 시간 같은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이 판단하기 전에 선호할 정보만을 자동으로 제공해 정보 편향에 빠지게 되는 현상이다. 필터 버블은 단순히 편향된 정보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세계’의 상실도 의미한다.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 의식뿐 아니라 인공감미료와 인공색소를 쓰지 않은 진짜 맛도 포함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SNS에서 봄동의 유행은 의외다. 2008년 한 예능프로그램의 봄동 먹방이 역주행하면서부터다. 월동 배추인 봄동은 스토리나 영양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고려 시대부터 먹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오래됐다. 봄동은 겨울을 이기기 위해 대지에 붙어 납작하게 자란다. 얼어 죽지 않으려고 세포벽을 두껍게 하고 당분을 합성해 세포에 저장한다. 그래서 일반 배추보다 아삭하고 달다. 비타민과 철분 등 영양도 탁월하다. 그렇지만 자동화된 데이터 수집과 처리로 자동화된 예측 시스템을 만드는 SNS 알고리즘 관점에서 보면, 봄동의 건강함은 따분함을 유발하는 데이터일 뿐이다. 그래서 봄동의 유행은 알고리즘의 오류처럼 보인다.
오류인지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봄동의 SNS 데뷔는 성공적이다. 봄동에 대한 구글의 검색량은 작년 3월 초에 견줘 12.3배나 증가했다. 봄동 성공 비결인 간단한 레시피도 한몫했다. 간장, 고춧가루, 액젓, 참기름이면 요리 초보도 봄동을 맛있게 무칠 수 있다. 가격이 두바이 초콜릿 한 알의 절반 이하인 것도 장점이다.
그렇다면 봄동의 유행으로 대중이 채소 맛에 눈뜨고 자동화된 SNS의 알고리즘에서 벗어나 자신의 음식을 직접 만들어 즐기는 주체성에 눈뜰 수 있을까?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필터 버블에 빠진 대중에게 봄동은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나온 ‘흙의 서사’가 아니라 그저 알고리즘이 제공해준 또 다른 자극의 하나로 여길 가능성이 큰 탓이다. 심지어 봄동은 자동화된 알고리즘의 디지털 세상이 ‘나의 욕망까지 감시받는 원형 감옥’이 아니라 ‘자유로운 들판’이라는 환상을 심어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봄동 덕에 알고리즘이 알려줄 수 없는 봄 채소의 알싸한 맛을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채소에 간장 같은 간단한 양념에 손맛만 보태면 건강한 한 끼를 뚝딱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을지 모른다. 곧 지천일 냉이, 달래, 미나리로 가족이나 친구들과 하는 조촐한 파티를 떠올릴 수도 있다.
요리를 하고 가족과 친구와 만나는 물리적 행위는 인공지능(AI)으로 자동화된 알고리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인간 고유의 사회적 행위다. 필터 버블에서 빠져나오는 최선책이기도 하다. “자유는 한 번 뿌리를 내리면 빠르게 자라는 식물”이라는 조지 워싱턴의 말처럼 봄동의 유행이 회색빛 알고리즘에 빠진 대중을 초록빛의 광장으로 이끄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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