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석준 RPA 건축연구소장 |
현대의 많은 수의 한국인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매우 많은 사람은 언젠가는 한국을 떠나겠다고들 말한다. 한국에서의 치솟는 부동산값과 물가 그리고 심화되는 부의 양극화 때문에 생겨나는 상실감, 그리고 지속되는 경제적 불황과 극심한 경쟁 등등 불안한 요소가 한둘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남들과 비교하는 심리에서 비롯된 상실감이 한국인을 불행하다고 여기게 하는 큰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인들은 역사적으로 유례없이 풍족한 사회에 살고 있다. 적어도 경제의 수치상으로는 매우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먼저 한국은 현재 전 세계 GDP(국내총생산) 10위 수준의 국가다. 즉 사실 대한민국은 물질적으로 단군 이래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혹시 한국이 지금보다도 더 잘살게 되면 이러한 불행감은 없어질 것인가? 한국인이 유독 불행하다고 느끼는 근원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 벼랑 끝의 풍요
전후 폐허에서 일어난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가 우러러보는 기술 강국이자 문화 강국이다. 그러나 그 화려한 지표의 이면에는 "행복하지 않다"는 절망적인 고백이 쏟아져 나온다. 풍요가 깊어질수록 갈증은 심해지는 이 기이한 역설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먼저 한국은 '비교'라는 엔진으로 달리는 사회다.
한국의 경제 성장을 견인한 동력은 역설적이게도 "남들에게 뒤처지면 끝장"이라는 집단적 불안과 경쟁심이었다. 이 엔진은 국가를 부유하게 만들었지만, 개인의 내면은 황폐하게 만들었다. 현대 한국인에게 부(富)는 더 이상 생존이나 안락의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과의 서열을 결정짓는 '점수'가 됐다. 내가 아무리 높은 곳에 올랐어도 내 옆의 누군가가 한 계단 더 높이 있다면, 그 성취는 순식간에 수치스러운 패배로 둔갑한다.
그리고 한국은 이러한 경쟁 속에서 '평균의 감옥'이 설계됐고, 이의 평균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획일적 욕망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이 평균적 목표에 달성했다는 것을 겉으로 보여주기 위한 '체면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평균주의'는 한국인의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견고한 감옥이다. 우리 사회에는 인생의 단계마다 반드시 획득해야 할 표준의 잣대가 존재한다. 특정 지역의 브랜드 아파트, 일정 수준 이상의 연봉, 자녀의 국내외 명문대 진학 등, 사회가 규정한 '평균'의 범주는 숨 막힐 정도로 좁고 구체적이다.
이 보편성의 굴레 안에서 개개인의 고유한 색깔인 창의성과 다양성은 사라진다. '나답게 사는 것'보다 '남들만큼 사는 것'이 우선시될 때, 인간은 자아를 잃고 데이터화된 비교군으로 전락한다.
전반적으로 부의 수준은 높아졌으나, 그 부를 소비하는 방식마저 획일화되면서 개개인의 영혼의 만족감은 메말라 가고 있으며 모든 이들이 무차별한 비교에 의해 불행하다고 느낀다.
◇ 기술 공화국 현대의 한국과 소외되는 인간
우리는 세계 최고의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한 한국이라는 '기술 공화국'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네트워크가 사실 개개인에게는 실시간으로 타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SNS와, 고도화된 알고리즘에 의해서 펼쳐지는 비교의 지옥을 일상으로 끌어들였다. 과거에는 보이지 않던 '상위 1%'의 화려한 일상이 내 손안의 화면을 통해 24시간 중계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대적 박탈감은 물리적 빈곤보다 더 치명적인 정서적 내상을 입힌다. 그리고 그곳에 속하지 못한다는 절망감은 한국인의 의식 속에서 절대적으로 자리 잡으며 불행감의 씨앗이 된 것이다.
결국 현대 한국인이 회복력을 잃은 이유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내면의 철학'이 아닌 '외적 소유물'에 의탁했기 때문이다.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 로고로 자신을 증명하려 할 때, 인간의 존엄성은 외부의 변동성에 휘둘리는 연약한 존재가 된다.
내가 누구인지를 고민하기보다 무엇을 가졌는지를 증명하는 데 평생을 바친 이들에게, 경제적 풍요는 안식처가 아닌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려야만 하는 끝없는 허상의 목표일 뿐이다. 그리고 더욱 이렇게 외적 물질적 치장에 집착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유교에서 시작된 체면 문화가 큰 작용을 하고 있다. 즉 "나 정도면 이 정도는 해야지, 이 정도 집에서는 살아야지, 이 정도 차는 타야지" 하는 평균주의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 한국인들과 서구 사회의 사고의 차이점과 행복의 다른 관점
한국인들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 사회에 가보면 느끼는 것이 있다. "왜 이 사람들은 남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을까?"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개인주의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사실은 그들은 남들과 남들의 인생보다 그들 자신에게 더욱 관심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향을 더욱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은 남이 어디에 사는지, 무슨 차를 타는지, 무슨 옷을 입었는지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유독 일본은 한국이나 중국과는 다르게 남들보다는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기 자신에게 더욱 관심이 있어 보인다. 이런 면에서 일본은 그들의 성향이 조금 더 한국이나 중국에 비해서 서구적 성향이 있다고 할 것이다.
한국은 현재 세계에서 중국을 제외하고 최고급 세단인 벤츠 S클래스와 마이바흐 같은 최고급 수입차가 가장 많이 팔린 나라 중 하나다. 한국에서는 돈을 좀 벌고 조금 성공했다고 하면 이러한 최고급 자동차를 탄다. 그 이외에 다른 슈퍼카들의 소비도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독일인들도 한국에 와서 보고 놀란다고들 한다. 자신의 나라에서 만든 최고급 세단이 자신의 나라인 독일보다 훨씬 많이 돌아다닌다고 놀란다. 그리고 한국이 이렇게 부자 나라인지 몰랐다고 하며 마치 중동의 부자 나라인 두바이 같다고 말한다.
이러한 매우 기형적 과소비와 자기 과시적인 태도는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러한 비슷한 종류의 과시적 과소비는 중국과 한국이 마치 형제국같이 매우 비슷한 유사함을 찾아볼 수가 있다. 이는 이 두 문화권의 공통 분모인 공자에서 비롯된 유교, 그리고 여기서 중요시하는 체면 문화가 현대 자본주의 문명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를 만나면서 과시성 과소비 문화로 극도로 기형적으로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그러한 과소비를 하는 근원적인 체면 문화에 대해서 알아보자.
◇ 공자에서 비롯된 유교적 체면 문화의 시작
한국과 중국에서 '체면' 문화는 사회적 에티켓을 넘어,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위치를 규정하는 핵심 가치이다. 이 문화의 뿌리는 크게 두 가지 흐름에서 기원한다.
유교적 위계질서와 '명분'을 살펴보면, 가장 근본적인 시작점은 유교적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유교에서는 자신을 닦고 남을 다스린다는 유교의 핵심 가치는 개인이 사회적 역할에 걸맞은 도덕적 엄격함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공자의 말처럼, 각자의 직분과 위치에 맞는 '격식'을 차리는 것이 곧 정의로운 사회의 척도다.
타인의 시선은 내가 유교적 도리를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는 거울이었고, 이를 잃는 것은 곧 사회적 죽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을 사회적 체면이라고 불렀다. 특히 중국에서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서로를 돕기 위한 네트워크가 중요했는데, '체면을 세워준다'는 것은 상대의 가치를 인정하고 신뢰 관계를 유지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였다.
중국과 한국의 체면 문화는 유교의 도덕적 규범이 농경 사회의 집단주의적 특성과 결합하면서, 공동체 내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갑옷'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것이 유교적 체면 문화의 시작이며 이 사상은 당시의 농경 봉건주의적 사회에서는 아마도 최상의 제도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한 과거의 중국에서 만들어진 관습이 현대 한국인에게 그대로 전이되고 이식돼 현재의 과시 문화로 이어지는 과소비의 사회를 만들어낸 것이다.
반면 서양인들이 남들의 것들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자기 자신의 모든 것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그리고 그들은 다양성을 인정해 주고 이것이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무엇이 한국인과 서양인을 이렇게 다른 생각을 가지게 만든 것일까?
서양의 실존주의(Existentialism)는 "인간은 무엇으로 정의되기 이전에 먼저 존재하며, 자신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철학적 흐름이다. 이는 앞서 대화를 나눴던 동양의 '체면 문화'가 집단과 관계 속에서 개인의 가치를 찾는 것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2편에서 계속)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전문가 ▲ 미국 컬럼비아대ㆍ오하이오주립대ㆍ뉴욕파슨스 건축학교 초빙교수 역임 ▲ 고려대 겸임교수 역임 ▲ 현대자동차그룹 서산 모빌리티 도시개발 도시 컨설팅 및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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