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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0 (화)

    [시간들] 관악산 연주대에서 소원 빌던 세조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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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악산, 때아닌 명산 입소문에 등산객 급증

    무학대사 걱정대로 관악의 火氣 국운 해쳐

    세조 예불에도 피부병 심화, 아들은 요절

    풍수 떠나 호연지기엔 북한산이 제격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최근 관악산이 '기운 받는 명산'으로 입소문을 타며 등산객이 급증하고 있다. 정상인 연주대엔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몰려 안전사고를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올초 한 예능 프로에서 한 역술가가 연주대에 오르면 일이 잘 풀린다고 말한 것이 때아닌 관악산 열기를 낳았다.

    연합뉴스

    기암절벽 정상에 있는 연주대
    (서울=연합뉴스) 북한산과 마주보고 있는 관악산은 개성 송악산, 가평 화악산, 파주 감악산, 포천 운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의 하나다. 기암절벽 정상에 위치한 연주대는 본래 이름이 '영주대'였지만, 조선 정조 때부터 '연주대'로 불리고 있다.


    관악산은 봉우리들이 불꽃처럼 곧게 솟은 형상이다. 풍수에서는 이런 산을 화기가 강한 화성(火星)으로 분류하는데, 기운이 강한 만큼 길흉화복 또한 극단적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풍수가들 사이에 견해가 엇갈리지만, 대대로 관악산은 길산(吉山)과는 거리가 있다. 전설에는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옮길 때 무학대사는 지금의 경복궁 터를 천하의 명당으로 꼽으면서 궁궐의 정문이 관악산을 바라봐선 안된다고 조언했다. 관악산의 불 기운이 도성으로 쏟아져 전란과 화재가 잦을 것이라는 우려였다.

    무학대사는 북악산 대신 인왕산을 주산(主山)으로 삼아 정궁이 바라보는 방향을 동쪽으로 틀자고 주장했지만,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에게 가로막혔다. 그는 유교의 전통을 들어 정궁은 남향이어야 한다고 역설했고, 이성계는 결국 정도전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조선 왕실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왕위 다툼과 숙청이 이어졌고 궁궐 화재도 잦았다. 당장 정도전이 태종 이방원의 칼날에 비명횡사했고, 200년 뒤엔 임진왜란이 일어나 경복궁이 불에 탔다. 관악산을 조심하라는 무학대사의 예언이 적중한 것이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이후 폐허로 남아 있다가 흥선대원군이 중건하면서 다시 정궁의 위상을 되찾았지만, 고종과 명성황후의 실정으로 조선 왕조가 몰락하면서 위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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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악산에 올라 소원 빌었던 세조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세조 존영도.<저작권자 ⓒ 2006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암절벽 끝에 위태롭게 선 연주대도 소원 성취와 거리가 멀다.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여생을 죄책감과 피부병에 시달리며 이곳을 자주 찾았다. 그는 조카를 죽인 업보를 씻고자 숙부 효령대군에게 명해 사찰인 연주암을 중창하고 왕실의 사찰로 삼았다.

    숙종 시대 기록을 보면 세조는 연주대에 올라 예불을 올렸지만, 병은 낫지 않았다.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가 꿈에 나타난 날 돋아난 종기가 갈수록 퍼져 극심한 불면증과 가려움의 고통 속에서 생을 마쳤다.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 역시 발에 생긴 피부 궤양으로 즉위한 지 14개월 만에 죽었다. 그의 나이 21살이었다.

    관악산에는 또 다른 패배자의 기록도 겹친다.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이다. 태종이 세자 양녕대군을 폐한 뒤 왕위를 동생 충녕대군(세종)에게 물려주자 효령대군은 관악산에 들어가 불도를 닦았다.

    그가 머리 깎고 승려가 됐다는 전설도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효령대군은 조카 수양대군의 쿠데타를 지지했으며, 단종 복위 운동이 일어나자 양녕대군과 함께 단종 처결에 찬동했다.

    현대에 들어서도 관악산의 운빨은 좋은 편이 아니다. 관악산 기슭에 있던 관악골프장을 헐고 그 자리에 서울대 본 캠퍼스를 만든 박정희는 아내 육영수를 잃고 관악의 상극인 북악산 아래 청와대 안가에서 암살됐다.

    일설에 윤석열은 액운을 피하려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겼다고 한다. 그렇지만 용산 역시 관악산을 바라보는 형세라 결과적으로 자충수가 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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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쪽에서 바라본 북악산과 청와대
    ▲ 북악산을 주산으로 둔 경복궁 뒤 청와대 (서울=연합뉴스)


    불은 인간에게 따뜻한 온기와 생명력을 주지만, 한순간 모든 것을 태워버릴 수도 있다. 관악산이 길산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몰려 기도하고 난리도 아니라지만, 그러다 사고라도 난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미신을 믿고 싶다면 험난한 관악산 대신 한민족의 기운이 모인다는 북한산에 오르는 게 나을지 모른다. 관악산에서 소원을 빌다 고통 속에 죽은 세조의 최후는 그렇다 치고, 호연지기를 키우는 곳으로 북한산만한 산도 없지 않나.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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