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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1 (수)

    [김택근의 묵언]지구가 한쪽으로만 돌아서 인간이 미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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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오고 있다. 눈이 녹아버려 대머리가 된 겨울이 외딴집에서 아무도 모르게 털모자를 벗는다. 해진 옷을 걸친 동장군을 향해 개들이 짖으면 남풍이 불어온다. 대지의 혈관으로 햇살이 흐르고, 나무에 물이 오른다. 그리고 절대 고요의 순간에 움이 튼다. 온갖 새싹들에게 비로소 새로운 시간이 주어진다.

    천지에 흐르지 않는 것이 어디 있는가. 대자연의 순환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거대한 의식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우주의 질서를 깨뜨리는 재앙이 해마다 이 땅에 떨어지고 있다. 바로 산불이다. 올해는 겨울 산불이 빈발했다. 심지어 설날에도 문경, 달성 등에서 산불이 일어났다. 정초에 초목들이 불에 타다니 심상치 않다. 하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다. 올봄에는 화마가 언제 어디를 칠 것인가.

    지난해 영남지방에서 일어난 산불은 공포 그 자체였다. 불길이 너무도 맹렬해서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안동 인근의 산불은 도시 전체를 삼킬 기세였다.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의 생가 쪽으로도 불덩이가 떨어졌다. 산불은 선생이 의지하고 사랑했던 뒷산 빌뱅이 언덕을 태워버렸다. 노을을 바라보며 저녁을 맞이했고, 숲에 든 생명들과 교감하며 ‘가난’을 나눠 가졌던 곳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유해를 빌뱅이 언덕에 뿌려달라고 했다. 결국 선생의 무덤이 타버린 셈이다. “하늘이 좋아라/ 노을이 좋아라// 해거름 잔솔밭 산허리에/ 기욱이네 송아지 울음소리// 찔레 덩굴에 하얀 꽃도/ 떡갈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하늘이 좋아라/ 해질녘이면 더욱 좋아라.”(시 ‘빌뱅이 언덕’) 그런데 뒷산 빌뱅이 언덕을 삼킨 화마는 선생의 오두막은 덮치지 않았다. 누군가 달려와 오두막에 물을 뿌렸고, 불길이 비켜갔기 때문이었다. 그 오두막을 찾아가 선생의 말씀을 얻어온 적이 있기에 관련 소식을 찾아 읽었다. 그러다 문득 그가 남긴 일화가 떠올랐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였다. 권정생 선생이 종지기로 있던 예배당은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었고, 마당에는 키 큰 참나무와 이팝나무, 대추나무들이 서 있었다. 신도들이 없을 때는 나무들이 예배당을 지켰다. 그 위에서 쏟아지는 새들의 노래는 또 다른 찬송이었다. 어느 날, 톱을 든 인부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시멘트벽을 쌓고 마당을 포장해야 한다며 나무들을 차례로 베었다. 수액 냄새가 진동했다. 선생은 자신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신도와 주민들은 이 광경을 보고만 있었다. 제발 말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아무도 종지기 말을 듣지 않았다. 인부가 마지막 남은 어린 대추나무 밑동에 톱을 들이댔다. 그러자 선생이 뛰쳐나가 대추나무를 끌어안았다. “제발 살려주세요.” 선생은 울고 있었다. 인부가 한참을 바라보다 혀를 차며 물러났다.

    선생이 살린 대추나무와 극적으로 화를 면한 선생의 오두막이 겹쳐 보였다. 선생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모든 생명체들과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오월에 다시 찾아온다면 모든 것이 사라진 검은 언덕에 무슨 말을 건넬까. 현자들은 나무와 숲을 소중하게 여겼다. 문명의 횡포를 비판했던 어진 현자들이 사라지고 영악한 지도자들만 남아서 그런 것인가. 환경론자들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있다. 시민단체들도 기업의 뒷돈을 받으며 환경운동 시늉만 내고 있다. 숲에 대한 예찬이 산처럼 쌓여 있지만 정작 숲은 불타고 있다. 산불의 불씨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숲은 권력을 지닌 자들의 것이 아니다. 수만년 이어온 민족의 자산이다. 그렇기에 적어도 산림을 관리하는 수장은 인간만이 아니라 나무의 얘기도 들어야 한다. 숲에 경배를 드리고 그 앞에서 겸손해야 할 산림청장이 술에 취해 난폭운전을 하는 나라에는 생명평화가 깃들 수 없다. 미련한 권력의 횡포에 강이 썩고 이제 산마저 위태롭다. 해마다 숲을 태우는 나라라면 당신들이 믿는 민주주의는 대체 어떤 것인가. 두렵지 않은가, 당장 무엇이라도 해보라.

    권정생 선생은 “지구는 한쪽으로만 돌아서 인간을 미치게 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미친 자들이 일으킨 전쟁에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는 검은 비가 내린다고 한다. 하늘이 오염되어 아침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인간만이 아니라 생명체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지구촌 제왕을 자처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골프장에서 보낸 시간의 반절만큼만 숲에 머물렀다면 세상이 화염에 휩싸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슬픔 어린 하늘을 보지 않고 주식시세표만 쳐다보는 우리들은 또 누구인가.

    경향신문

    김택근 시인


    김택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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