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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 깃털이 멋스러운 플로리다덤불어치(Florida scrub jay)는 새끼를 키울 때 두셋 이상의 베이비시터를 둔다. 어치 베이비시터들은 직업의식(?)이 매우 투철한데,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는 것은 기본이고, 여럿이 한꺼번에 시끄럽게 울어대며 천적을 위협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베이비시터들의 도움은 어린 어치들의 생존에 결정적이다. 베이비시터의 도움을 받는 어치는 그러지 못한 어치에 비해 한 번의 번식 기간 동안 키워낼 수 있는 새끼의 평균 수가 3배나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덤불어치에게 베이비시터가 있다면, 황제펭귄에게는 어린이집이 있다. 번식기에 들어선 황제펭귄 부부는 알과 갓 태어난 새끼를 번갈아 발등 위에 올리고 따뜻하고 두툼한 뱃가죽으로 덮어 남극의 칼바람으로부터 보호한다. 하지만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 품 안에서 온전히 보호하기 어려워지면, 펭귄 부모들은 각자의 새끼들을 모두 한군데로 모아 크레슈라고 하는 일종의 펭귄 어린이집을 만든다. 이곳에 모인 어린 펭귄들은 지도교사 펭귄의 지시에 따라 허들링을 하는 법을 배운다.
허들링(Huddling)이란 수많은 개체들이 한데 모여 몸을 밀착시켜 체온을 나누는 행위로, 허들링이 제대로 이뤄지면 무리의 중심부는 주변 기온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상온을 유지할 수 있다. 허들링의 보온 효과는 체온을 유지시키고, 열량 소모량을 50% 이상 낮춰주어 어린 펭귄들이 부모와 떨어져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준다.
이 밖에도 돌고래는 출산 시 다른 개체들이 주변을 경계하다가 갓 태어난 새끼가 숨을 쉴 수 있도록 ‘업어서’ 수면 위로 올려주고, 항유고래는 먹이를 찾아 심해 깊숙이 잠수해야 할 때면 주변의 어른들이 아직 잠수 능력이 미숙한 새끼를 기꺼이 맡아 어미가 올 때까지 지켜준다.
심지어 미어캣 집단에서는 새끼가 태어나면, 출산을 겪지 않은 ‘미혼’ 암컷에게서도 유즙이 분비되어 보모를 넘어 유모의 역할까지 담당하기도 한다.
이처럼 자연에서는 부모가 아닌 개체들이 자발적으로 집단 내 어린 새끼들을 돌보는 대리자 양육(alloparenting) 현상이 종종 관찰되곤 한다. 주로 친족(손위 형제자매나 조부모 등)들이 맡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이웃이 대리부모의 역할을 자청하기도 한다.
알로페어런팅은 널리 알려진 진화 이론에 반하는 행동처럼 보였기에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충분히 생식이 가능한 성체들이 자신들의 번식 기회를 포기하고 그 자원과 에너지를 ‘내 자식’이 아닌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것은 소위 ‘이기적 유전자’의 본성에 모순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혈연관계가 있다면, 해밀턴의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를 적용시키면 된다. 꿀벌 무리에서 일벌은 암컷이지만 번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은 희생이 아니라 포괄 적합도에 따른 고도의 전략이다. 꿀벌이나 개미와 같은 사회성 곤충들은 염색체 특성이 사람과 달라, 부모·자식 간의 유전적 일치도는 50%이지만, 자매들 사이의 유전적 일치도는 75%로 훨씬 더 높다. 따라서 이들의 경우, 스스로 자식을 낳기보다는 여동생을 돌보는 것이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더 유리한 셈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이웃의 아이를 위해 기꺼이 나서는 행동까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자연은 결코 모순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혈연을 넘어 알로페어런팅 현상을 보이는 동물 집단의 공통점은 과연 무엇일까. 예상 외로 그 공통점은 극도로 척박한 환경이었다. 부족한 자원과 혹독한 조건 속에서는 아무리 부모가 최선을 다해도 새끼를 제대로 키워내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집단이 손을 내밀면 상황은 극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부모의 부재 시 아이를 맡아서 지켜주고 먹이는 일에 손을 보탬으로써, 훗날 직접적으로는 자신의 자식들에게 돌아올 이익을 보장하고, 간접적으로는 집단의 개체수 유지를 위한 사회적 시스템을 형성하는 것은 모두의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자연은 모순을 허락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처한 조건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공들여 찾아낸 셈이다. 누구처럼 부족한 자원을 독점하기 위해, 편을 갈라서 가장 약한 아이들을 가장 먼저 공격하는 대신에 말이다.
이은희 과학저술가 |
이은희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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