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선 고등학교 입학생이 화재로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화재 발생과 교육은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사교육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강남의 낡은 아파트에 이사와 참변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경기 김포에 사는 지인은 주말마다 대치동 학원까지 고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왕복 100㎞ 길을 운전한다. 주당 50시간 넘게 일해 월 300만원을 버는 또 다른 지인은 초등학교 6학년 아이의 영어·수학 과외 등으로 120만원을 쓰고 있다. 부모는 사교육비를 대느라 허리가 휘고, 아이들은 과도한 학습에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쳤다.
교육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공공재다. 사사로이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학교 수업 보완재로 출발한 사교육은 이제 공교육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불평등과 양극화를 야기하고 집값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이 대통령은 부동산 시장 정상화 의지를 피력하며 “정부를 이기려 하지 말라”고 했다. 사교육 시장에도 이런 경고를 보내고, 공교육 정상화에 총력을 기울일 수는 없을까. 이 대통령의 표현을 빌려 “돈이 마귀”라고 해도 ‘4세 고시’나 ‘초등 의대반’이 있어선 안 된다.
교육계 최대 현안은 학생 자살을 막는 일이다. 정부 자료로 2015년 93명인 학생 자살은 2024년 221명으로 늘었다. 2025년 상반기엔 180명이 자살한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경북의 한 경찰관이 자살을 시도하던 10대를 구했다. 아파트 11층 복도 창문에 걸터앉아 있던 아이를 설득해 돌발 행동을 막았다. 이처럼 생사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학생이 하루 20명에 이른다. 2021년 1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자살·자해 시도를 한 학생이 3만1811명이다. 시도교육청이 각 학교에서 보고받은 행정 데이터를 보고 산출한 수치이니 학교가 파악하지 못했거나 교육청에 보고하지 않은 사안, 학교 밖 청소년 사례까지 포함하면 더 많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모든 산재 사망 사고를 최대한 빨리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에겐 “직을 걸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학생 자살 문제도 산재처럼 직접 다뤘으면 한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과 전국의 교육감들을 불러 특단의 지시를 내리고, 사건 발생 즉시 직보를 받는 것이다. 이번처럼 학생을 구한 경찰관이나 시민에게는 상을 내려야 한다. 우리 사회의 높은 자살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장년과 노인도 많다. 그러나 기성세대의 죽음과 앞날이 창창한 어린 학생의 죽음은 성격이 다르다.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학업 스트레스와 과도한 경쟁이 핵심이다. 사회적 타살이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다.
이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청소년 관련 사안이 하나 있다. 현재 14세인 촉법소년(형사미성년자) 기준 나이를 낮출지 2개월 안에 쟁점을 정리하라고 주문한 일이다. 청소년 범죄가 날로 흉포화하고,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하는 비행 청소년이 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할 일은 아이들을 감옥에 보내는 것보다 가족·학교·지역사회를 엮어 튼실한 보호망을 구축하는 것이 먼저다. 더구나 시한을 못 박아 밀어붙일 일은 더욱 아니다.
교육도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이다. 이 대통령이 강조한 ‘먹사니즘’과 무관하지 않다. 이 대통령의 무관심이 의도된 것이라면,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고 정책의 실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사교육을 일거에 잠재우는 비법이 없고, 학부모와 학생들을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대학입시안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교육 주체들도 안다. 그래도 국민 삶과 직결되는 중요 현안엔 정책 결정권자가 구체적인 대책과 해결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공교육 제도 자체가 위기이고, 교사들도 힘들다. 교권 추락과 박봉으로 교직은 극한직업이 됐다. 20·30대 교사들이 학교를 떠나고, 심지어 목숨을 끊는 교사들도 있다. 새봄 새 학기가 시작됐다. 유가와 환율, 사법·검찰 개혁 등 신경 써야 할 사안이 많겠지만, 이 대통령은 학교에 한번 가시라. 학생들이 무슨 고민을 하는지, 교사들은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보고 듣고 오시라. 어려워도 교육개혁 시도와 노력은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학생과 교사를 한 명이라도 살리는 길이다.
오창민 논설위원 |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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