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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6 (월)

    [논현광장_이상미의 예술과 도시] 시니어 문화정책 ‘산업’ 전환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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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아트 대표이사/백남준포럼 대표

    초고령사회에 문화 소비력 커져
    ‘복지’ 넘어 비즈모델 창출 돕고
    K컬처 문화 영토 생태계 다져야


    이투데이

    매화 소식이 들려오는 서울은 차가운 봄바람 속에서도 예술적 열기가 감돈다. 오는 4월 8일 코엑스에서 개막할 제44회 화랑미술제를 앞두고 갤러리들은 벌써 분주하다. 1979년 출범해 한국 미술 시장의 산증인이 된 화랑미술제는 한 해의 소비 지형을 가늠하는 가장 확실한 지표다. 특히 대한민국이 65세 이상 인구 비중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지금, 이번 전시는 인구 구조의 변화가 약 1조 원 규모의 미술 시장 실핏줄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 확인하는 결정적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봄철 미술 시장의 풍경은 MZ세대의 화려한 오픈런과 신진 작가들의 파격적인 실험성으로 대변되었다. 그러나 2026년 현재, 시장은 차분하고 내실 있는 성숙한 자본의 공존을 목격하고 있다. 고금리와 경기 둔화의 여파로 투기성 자본이 일부 빠져나간 자리를, 오랜 시간 안목을 쌓아온 시니어 컬렉터와 디지털 환경에 능숙한 젊은 세대가 나란히 메우며 시장의 선택적 반등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세대 간 역할 분담에 있다. 키아프나 프리즈서울을 통해 글로벌 감각을 익힌 MZ세대가 온라인 거래와 신진 작가 발굴의 엔진 역할을 한다면, 자산 여력을 갖춘 6070 액티브 시니어들은 중견 작가의 작품을 장기적 관점에서 소장하며 시장의 하방 경직성을 확보해 주는 든든한 닻이 되고 있다.

    문화 산업 전반에 걸친 시니어 계층의 영향력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25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온라인동영성서비스(OTT) 이용률이 81.8%를 기록한 가운데 50대 이상의 이용률 또한 꾸준히 증가하며 전 연령대의 디지털 문화 향유가 보편적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26 콘텐츠 소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고령층의 OTT 소비 시간은 전년 대비 7.06%나 증가했다. 이들은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안정적인 유료 구독자로 자리 잡으며 미디어 산업의 수익 구조를 지탱하는 핵심층이다. 공연 예술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대형 뮤지컬과 클래식 공연의 VIP석을 채우는 가장 충성도 높은 관객은 5060세대다. 자녀 세대의 팬덤 문화를 수용하며 아티스트를 지원하고 관련 굿즈를 구매하는 이들의 행보는 문화 소비가 더 이상 특정 연령대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가 고령화를 부양의 부담이라는 복지 프레임에서 벗어나 문화적 생산과 소비의 주체라는 산업적 프레임으로 전환해야 함을 시사한다. 이제 시니어 문화 정책은 단순한 바우처 지원을 넘어, 민간 영역에서 이들의 세련된 취향을 공략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도록 돕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최근 논의되는 시니어 컬렉터를 위한 미술품 상속 세제 혜택이나 OTT 기업들의 시니어 특화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 그리고 배리어 프리 기반의 프리미엄 예술 공간 확충 등은 문화 자본의 선순환을 돕는 구체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예술은 이제 노년에게 소일거리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우아한 수단이자 강력한 경제적 동력이다.

    2026년 4월 찾아올 화랑미술제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대한민국 문화 경제의 지속 가능성은 시니어 세대의 노련함과 MZ세대의 새로움이 결합하는 지점에 있다. 시니어의 안정적인 자본이 시장 깊이를 더하고, 젊은 세대의 역동성이 외연을 확장할 때 K컬처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단단한 생태계를 완성할 수 있다. 초고령사회는 위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화적 밀도가 짙어지는 과정이다. 이번 봄, 전시장의 문턱을 넘는 다양한 세대의 발걸음 속에서 우리는 복지 그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문화 영토의 확장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투데이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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