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6 (월)

    [헬스인·싸] 디지털 의료기기 임상시험, 합리적 제도 개선 시급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라포르시안]
    라포르시안

    [라포르시안] 최근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은 인공지능(AI)·빅데이터·클라우드 기술 발전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AI 기반 진단 보조 소프트웨어·디지털 치료기기·원격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 등 소프트웨어 중심의 디지털 의료기기는 의료기기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의료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이고 환자 중심 의료 환경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디지털의료제품법' 시행은 기존 하드웨어 규제 체계를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중심의 디지털 의료기기 환경에 맞게 발전시키기 위한 중요한 제도적 기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산업 현장의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의료기기 임상시험 제도는 디지털 의료기기산업의 성장과 직결되는 핵심 규제 영역 중 하나로 평가된다. 현재 의료기기 임상시험 제도는 환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사전 승인 중심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기업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임상시험 승인 이후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의를 거쳐 임상시험을 수행하게 된다. 해당 제도는 의료기기 안전성·유효성 확보를 위한 필수적인 장치이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임상시험 준비와 승인 과정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이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디지털 의료기기 분야에서는 문제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전통적인 의료기기는 제품 성능과 안전성을 입증한 후 임상시험을 통해 임상적 유효성·안전성을 검증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반면 소프트웨어 기반 디지털 의료기기는 출시 이후에도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기능 개선이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인 개발 방식이다. 특히 AI 기반 의료기기는 새로운 데이터를 축적할수록 알고리즘의 정확도가 향상되는 특성이 있어 제품 개발과 성능 개선이 동시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재의 임상시험 제도는 여전히 전통적인 의료기기 개발 방식을 전제로 설계돼 디지털 의료기기의 개발 특성과 완전히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나 알고리즘 개선이 이뤄지면 추가적인 규제 검토가 필요할 수 있으며, 이는 기술 발전 속도와 규제 대응 속도 간 괴리를 발생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글로벌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국내 디지털 의료기기 기업은 이 같은 규제 환경이 기술 개발과 사업화 속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디지털 의료기기의 임상적 성능을 평가하는 방식 역시 기존 의료기기와는 차별화된 접근이 요구된다. 전통적인 의료기기는 물리적 성능과 안전성을 중심으로 임상시험을 통해 검증되는 경우가 많지만 디지털 의료기기는 실제 의료 현장에서 축적되는 데이터와 사용 환경이 성능 평가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따라서 실제 의료 환경에서 생성되는 실사용 데이터(Real World Data·RWD)와 이를 기반으로 도출되는 실사용 근거(Real World Evidence·RWE)를 활용한 임상적 평가 방식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더불어 AI 의료기기의 특성상 모든 임상 데이터를 실제 환자 기반으로 확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실사용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성된 합성 데이터(synthetic data)를 활용해 알고리즘 성능을 검증하는 방식도 점차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 기반 평가 방식은 디지털 의료기기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임상 근거 확보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산업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의료기기 임상시험 제도 역시 디지털의료제품의 특성을 반영한 보다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최근 정책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은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된다.

    네거티브 규제는 원칙적으로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 도입을 허용하되 국민 안전이나 공공의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일부 행위만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이는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른 신산업 분야에서 혁신을 촉진하는 동시에 필요한 안전장치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의료기기 임상시험 분야에서도 이러한 접근을 부분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인체에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낮은 저위험 디지털 의료기기는 임상시험 승인 절차를 보다 간소화하거나 일정 범위 내에서 기업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또한 실사용 데이터와 합성 데이터를 활용한 임상적 근거 확보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그 활용 범위를 확대한다면 기업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제품의 임상적 유효성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AI 기반 의료기기의 특성을 고려해 적응형 임상시험(adaptive clinical trial)이나 단계적 성능 검증 체계와 같은 새로운 평가 방식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해당 방식은 기술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알고리즘 개선을 일정 범위에서 허용하면서도 제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지속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규제 환경의 변화는 국민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네거티브 규제 접근을 도입하더라도 사후 관리 체계와 안전성 모니터링 시스템을 함께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실사용 데이터를 활용한 지속적인 성능 평가, 알고리즘 변경에 대한 보고 체계, AI 의료기기의 성능 모니터링 체계 구축 등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의료제품을 포함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은 향후 의료기기산업의 핵심 성장 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글로벌시장에서는 다양한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들이 빠르게 등장하고 있으며, 각국 규제기관 역시 산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국내 의료기기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기술 혁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규제 환경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료기기 임상시험 제도는 혁신 기술이 실제 의료 현장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관문이다. 따라서 '산업 발전'과 '환자 안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균형 있게 고려하면서 디지털 의료기기의 특성을 반영한 제도 개선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디지털 의료기기 시대에 적합한 임상시험 제도는 단순한 규제 완화를 넘어 기술 혁신과 국민 건강 보호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새로운 규제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지금이 바로 의료기기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위해 임상시험 제도의 합리적 개선을 위한 정책 논의가 이뤄져야 할 때이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Copyright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