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
레바논 남부 요르모 마을에 백린탄이 쏟아져 내렸다. '악마의 무기'라 불리는 이 무기는 열 손상과 화학적 손상을 동시에 일으키며 살과 뼈를 녹인다. 국제법상 민간인 지역에서의 백린탄 사용이 명백히 금지되어 있지만, 애초 국제법을 위반한 이스라엘의 침공에서 그 규정을 지키려는 이는 없었다. 우리는 두려움에 항복하거나 저주를 퍼붓는 일 말고, 이 만행의 책임을 어떻게 물을 수 있을까.
국내 언론은 명분 없는 침략전쟁을 주도하는 트럼프의 오락가락하는 말들을 받아쓰며, 전쟁이 유가와 주가,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관련기사 바로가기). 그 과정에서 분쟁 지역에 수출되는 국산 무기들은 마치 의약품이나 자동차처럼 타국의 긴급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정상적인 교역상품으로 비춰진다. 지정학적 긴장에 대비한 전 세계적인 군사비 지출 증가와 국내 국방예산 확대는 무기산업의 호재이고, 방산 수출 규모를 키우고 수출 대상국과 품목을 확대해 세계 무기시장 점유율을 높일 계획을 세우는 것은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여겨진다.
'산업'으로서 방위산업 현황을 확인해보자. 한국의 방산 수출은 2024년 95억 달러(13조 6000억 원)로, 같은 해 의약품 수출(104억 달러)과 비슷한 규모이다. 정부가 공식화한 2030년 세계 방산 수출 4위를 위한 수주 목표는 정부가 제시한 의약품 수출 목표액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사람을 살리는 산업과 사람을 죽이는 산업이 국가 수출 통계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계산된다. 이 착시가 바로 문제의 출발점이다.
AI 정밀타격, '안전한 전쟁'이라는 착각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며 인류의 문화유산과 생활의 터전이 파괴되는 참혹한 현실 앞에서도 '수출 경쟁력' 이라는 목소리가 가능한 것은, 무기산업이 첨단기술산업으로 포장되어 국가전략산업의 지위를 얻고 각종 무기박람회를 열면서 국제 무기거래를 촉진했던 선전 덕분이다. 심지어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는 초중고 학생들을 단체로 유치하는 '학생의 날'을 운영하고 첨단무기를 게임처럼 체험하게 했다. 지독하게 유해한 상품을 오락처럼 일상에 스며들게 하는 밀리테인먼트(militainment, 군사주의와 오락의 결합)는 군사주의의 해악을 세탁하는 방식이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 이란공습 영상에 영화와 비디오게임 장면을 뒤섞은 홍보영상을 올렸다가 '슬로파간다(Slopaganda, 조잡하게 제작된 선전 콘텐츠)'라고 비판을 받은 것은 그 극단적 사례다.
최근 전쟁이 만들어내는 참담함이 또 다른 차원인 이유는 AI 기술을 앞세운 '정밀 타격' 이라는 수사로 대량 인명살상을 정당화하며 전쟁을 더욱 비윤리적인 방향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팔란티어 같은 빅테크 기업이 개입한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에서 AI는 보조도구가 아니라 사실상 '사령관' 이었다. 이스라엘군이 사용한 AI 표적 선정 시스템 '라벤더(Lavender)'는 하루에 수백 명의 표적을 자동 생성했으며, 담당 장교들은 AI의 선정 결과를 평균 20초의 검토만으로 승인했다. 연구자들은 "정밀타격 무기가 민간인 보호의 서사로 홍보되지만, 그 서사는 오히려 인구밀집 지역에서의 사용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된다"고 비판한다(☞관련논문 바로가기). '안전한 전쟁'이라는 착각은 전쟁 공범들의 책임을 경감시키고, 인간이라면 윤리적 부담을 느꼈을 결정을 알고리즘에 위임한다.
무기산업을 건강의 문제로 봐야 하는 이유
그런데도 무기는 정말 '많이 팔면 좋은' 상품인가? 2025년 영국의학저널(BMJ)에는 무기산업도 담배, 알코올, 초가공식품, 화석연료처럼 '건강의 상업적 결정요인(Commercial Determinants of Health, CDH)'으로 봐야 한다는 기획 시리즈가 실렸다. CDH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산업부문의 활동이 사람들의 건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이 프레임은 무기가 인명 살상에 직접 미치는 영향 뿐만 아니라, 무기산업이 로비와 마케팅, 규제 포획, 연구와 교육자금 지원을 통해 정책환경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조성하는 구조적 해악까지 포착한다. 담배기업들이 수십 년 간 암과의 연관성을 희석시키고, 주류·설탕음료 기업들이 개인의 책임과 자율 규제를 강조하며, 화석연료 기업들이 기후위기에 대한 허위 정보를 퍼트렸듯이(☞관련논문 바로가기), 무기 기업들은 안보 담론을 방패 삼아 자신들의 해악을 가린다.
통상 시장에 유통되는 상품은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려는 목적으로 개발된다. 그럼에도 상품의 결함으로 생명·신체·재산에 손해가 발생할 경우, 과실 유무를 불문하고 제조자에게 책임을 묻는다(제조물책임법). 반면 무기는 생명과 재산의 손해 발생 자체가 설계 목적이면서, 그 특수성을 이유로 책임을 제한하거나 면책하는 논리가 적용된다. 게다가 주요 무기수출국들은 무기 사용과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여러 국제 조약과 협약에 자국의 상업적 이익에 부합하는 양해 사항을 포함시키면서도, 조약 비준은 거부하는 특권을 행사한다. 이처럼 완전히 다른 목적으로 생산∙유통되고 불평등한 권력을 표상하는 무기가 정상적인 교역 상품처럼 취급되는 착시 자체가 이미 무기산업에 상업적 결정요인이 작동한 결과이다.
무기를 상품화하고 전쟁을 기술화할 때 생기는 문제들
첫째, 군사주의는 전쟁의 건강피해를 기록하고 연구하는 것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한국은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의 직접 당사자였다. 베트남전 파병 34만 5000명 가운데 고엽제 누적 피해자는 14만 9000여명이며(국가보훈부 2024년 기준), 그 영향은 3세, 4세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엽제 건강피해는 한국이 국가 차원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다뤄온 전쟁-건강 연구 분야다. 그 피해의 역사를 아는 나라가 오늘날 무기 수출국이 되어, 다른 나라의 민간인에게 향하는 무기를 팔면서 그 건강영향을 외면하고 있다. 자신이 겪은 피해자의 지위를 자신이 가할 수 있는 피해에는 적용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군사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뿐만 아니라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현실은 전쟁 위기를 명분으로 사회적 자원을 군사화에 동원하는 압력을 지속되게 한다. 그 결과 군사활동으로 인해 국내에서 발생하는 민간인 건강피해도 충분히 조사∙분석되지 못하고 있다. 지뢰 피해, 군사훈련 소음 피해, 접경 지역 주민의 정신건강, 주한미군기지 환경오염, 군사시설 설치로 인한 주민 갈등, 군용지 전용에 따른 강제 이주 등 이 모든 문제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자료 접근이 제한되어 연구가 어려운 구조에 있다. 데이터가 없으면 피해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피해가 보이지 않으면 책임을 묻기 어렵다. 이 순환이 바로 군사주의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둘째, 무기의 건강영향은 총성 이후에도 계속된다. 전장에서의 직접적인 사상자는 무기가 만드는 피해의 일부에 불과하다. 분쟁 지역 사람들에게 남겨지는 트라우마, 예방 가능한 사망의 증가, 학교·병원·인프라의 파괴, 식량 위기, 강제 이주는 말 그대로 '사회를 불구로 만든다'(☞시민건강논평 바로가기). 군사시설 주변의 토양과 지하수 오염, 유독성 화학물질로 인한 지역 주민의 건강 피해 역시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수십 년 간 이어진다.
2021년 용혜인 의원실이 유엔 세관데이터(UN Comtrade)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5~2020년 한국의 대(對)이스라엘 무기수출은 이전 6년 대비 22% 증가했으며 수출 품목의 53.7%가 폭탄·수류탄·탄약류였다. 이 무기들이 민간인 살상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확인된 상황에서(☞관련자료 바로가기), 무기 수출국으로서 한국은 이 책임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는가. 자기를 보호할 여력이 없는 전쟁 피해국의 침묵이 수출국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또한 방산산업에 우호적인 국내 담론은, 분쟁 지역에서 전쟁 이후 장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건강과 환경 피해에 대한 논의 자체를 봉쇄한다.
셋째, 군비 지출은 건강에 투자해야 할 공공재원을 잠식하고 국가의 건강보장 책임을 방치한다. 비견할 데 없이 해로운 상품을 개발하고 마케팅하며, 국제적 유통과 비축을 장려하고, 첨단미래산업으로 포장하는 권력은 누구인가. 국가안보라는 이름하에 얻어지는 이윤은 누구에게 돌아가고 있는가. 무기 생산과 이익 추구가 정상적인 기업 활동으로 보여지는 한, 실제로 그것이 만들어내는 파괴적 효과는 가려진다.
세계보건기구(WHO) '모두를 위한 건강경제학 위원회'는 국가는 GDP(국내총생산) 극대화보다 인간과 지구의 번영을 우선하고 보건에 충분한 재정을 투자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군비 지출의 팽창은 그 책임을 정면으로 방기하는 것이다. 건강∙인권∙평화라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의 정치적 이익과 그들 손에 무기를 들려주는 기업들의 경제적 이익 앞에 산산조각 나고 있다.
보건의료 연구자들이 해야 할 일
담배와 알코올, 대인지뢰의 해악이 공론화되기까지는 그 영향을 수십 년 간 추적하고 역학적 관계를 입증해온 보건의료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무기산업에 대해서도 같은 과정이 시작되어야 한다. 무기산업 생산물에 대한 건강영향평가, 군사지역 및 접경지역 주민들에 대한 건강조사와 데이터 공개, 군사시설지역의 환경영향평가 등을 보건의료 연구자들이 의제로 다루기 시작해야 한다.
무기산업을 건강의 상업적 결정요인으로 포착하고 그 건강영향을 연구 의제로 삼는 것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다. 상품과 서비스, 문화와 규범이 사회에 어떤 장단기적 건강 영향을 미치는지 따지는 것은 보건학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다. 방산산업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그 영향을 보이게 만드는 연구와 담론이 더욱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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