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달성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평화로운 일상은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지는데 그로 인해 가장 많은 고통을 겪을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그것을 막거나 저지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 전쟁은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그간 한국 언론은 K방산이 벌어들인 수익에 환호했지만, 트럼프의 호르무즈 파병 요청은 그 돈에 한국인의 피도 섞이게 만들지 모른다. 갈수록 험해지는 국제정세 앞에서 우리 평범한 시민들은 무기력해진다.
더욱이 무기력만이 전부가 아니다. 오늘날 신경과학의 발전에 힘입은 인지전의 발달은 모두가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사회에서 개개인의 정보 인지 및 처리 과정에 개입하려 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미국은 자국에 유리한 정보를 강조해 승리가 목전에 다가온 것처럼 선전하며, 뒤로는 가짜뉴스를 흘리고 적국의 사회적 갈등을 부추긴다. 이란 정부가 지난 1월에 이어 이번에도 인터넷을 포함한 정보를 차단한 것도 극단적인 인지전의 사례다.
물론 이런 ‘인지전의 위협’은 과장된 면이 있다.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에서 신경과학적 지식과 인공지능(AI)이나 딥페이크 등 신기술을 활용한다는 것 외에는, 심리전과 정보전 같은 군의 기존 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과장된 위협은 그에 대항할 인지전의 명분이 되고, 이는 곧 군사주의의 논리가 사회를 침식하도록 만든다. 인지전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듯, 대통령과 군이 나서 정치적 반대세력을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반국가세력이라 단정하며 혐오와 갈등을 선동했던 기억이 아직 선연하다.
우리는 인지전 시대를 헤쳐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한국 언론은 그간 인지전의 영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채, 우크라이나와 중동에 관한 영미권 언론의 보도를 ‘받아쓰기’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또, 전쟁에 관한 트럼프의 말과 백악관의 브리핑 내용은 그 자체로 건조한 사실이지만, 거기에 담긴 기만과 왜곡, 그리고 인류가 쌓아 올린 국제규범을 공격하는 그 말들의 효과는 얼마나 비판적으로 걸러지고 있을까. 애초에 최소한의 합의된 규범이 무너져가는 상황에서 ‘객관적 팩트’조차 진영과 입장에 따른 인지편향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게 된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K방산을 칭송하는 한국 언론의 전쟁보도 윤리가 이런 시대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윤어게인의 부정선거론부터가 언론의 실패를 뜻한다. 정보의 생산과 유통에 더 많은 왜곡이 가해지고 혐오발언에 따른 인지편향과 사회적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시민의 ‘리터러시’ 증진도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이 혼란한 전쟁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까?
그러나 언뜻 무력해 보이는 우리에게도 힘이 있다. 2024년 12월3일, 시민들은 반국가세력과 부정선거라는 선동에 속지 않고, 그 선동에 어긋나는 모든 말과 행동을 불법화한 포고령에 맞섰다. 그 결과 내란으로부터 우리가 지킨 것은 민주주의만이 아니다. 외환으로부터 평화도 지켰다. 오염된 언어와 적대의 논리를 거부하며 평범한 시민의 관점에서 계엄을 불법이라고 말할 수 있었기에 파국을 막았다. 지금의 전쟁을 멈추는 것 역시 그러하다. 인지전이 말하지 않는, 전쟁 한복판에서 살아내는 평범한 시민의 관점을 듣고 상상하고 말하자. 속지 않는 말은 힘이 세다.
최성용 사회연구자 |
최성용 사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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