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세계 최초 ABS 도입 2년, 99.96% 정확도 뒤에 감춰진 진실야구에서 판정 시비만큼 오래되고 뿌리 깊은 갈등은 없다. 포수 뒤에서 200개 넘는 투구를 눈으로 추적하며 0.1초 안에 결론 내려야 하는 주심의 일은, 사실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시험하는 작업에 가깝다. 그 오랜 불완전함에 마침표를 찍으려는 시도가 바로 ABS, 이른바 '로봇 심판'이다. 한국 KBO리그가 2024년 세계 최초로 전면 도입했고, 2026년엔 MLB까지 합류했다. 기술은 완벽에 가깝다. 그런데 야구까지 완벽해졌을까.
2 MLB 2026년 챌린지 방식 채택, WBC는 여전히 '인간 심판'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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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는 지금 어떤 혁명 위에 서 있는가
투수는 시속 150km짜리 공에 회전을 실어 꽂아 넣는다. 심판은 그 공이 17인치(약 43cm) 폭의 홈플레이트를 통과했는지, 무릎과 어깨 사이 어딘가에서 끊겼는지를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인간이 틀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틀림이 야구 경기의 일부였다.
그 틀림을 기계로 대체하려는 실험이 시작된 건 한국이었다. KBO리그는 2024년 세계 프로야구 최초로 ABS(Automated Ball-Strike System)를 전면 도입했고, 2년이 지난 지금 그 결과는 수치로 증명됐다. 그런데 혁명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기계는 거의 완벽했지만, 그 기계를 둘러싼 사람이 흔들렸다. 스캔들이 터졌고, 선수들은 재적응을 강요받았다. 그리고 여전히, 세계 최고의 국제대회 WBC는 '인간 심판의 존'을 선택했다.
혁명은 진행 중이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 ABS란 무엇인가, 기술의 작동 원리
ABS는 야구장 외야 주위에 설치된 고속 카메라와 센서가 투수의 공을 3차원 좌표로 실시간 추적해 스트라이크와 볼을 자동 판정하는 시스템이다. 공이 홈플레이트를 통과하는 순간의 위치를 감지해 미리 설정된 스트라이크존과 비교하고, 판정 결과를 귀에 꽂은 무선 이어폰(인이어)을 통해 주심에게 즉각 전달한다. 심판은 그 신호를 받아 선언만 하면 된다.
스트라이크존은 타자마다 다르게 설정된다. 타자 신장에 비례해 상단과 하단 경계가 자동 계산되며, 타석에 새 타자가 들어설 때마다 실시간으로 재설정된다. KBO는 국내 스포츠 데이터 기업 스포츠투아이가 개발한 PTS(Player Tracking System)를 사용하며, 투구의 궤적이 3차원 좌표로 추적된다. 공이 존의 경계에 걸치는 경우에도 접촉 여부를 기준으로 판정이 내려진다.
MLB는 2026시즌부터 영국 테니스 선심 기술로 유명한 호크아이(Hawk-Eye) 카메라 12대를 각 구장 외야 펜스 주변에 배치해 투구를 추적하며, T-모바일의 5G 전용 네트워크를 통해 판정 결과를 전광판과 주심에게 거의 실시간으로 송출한다.
■ KBO…세계 최초의 실험, 그 2년간의 기록
KBO리그는 2024년 3월 9일 시범경기를 시작으로 세계 프로야구 리그 최초로 ABS를 전면 도입했다. 수십 년간 누적된 불만, 즉 경기장마다 주심의 성향이 달라지고 특정 심판이 운영하는 날엔 스트라이크존이 미묘하게 달라진다는 문제를 기계로 통일하겠다는 결단이었다.
결과는 숫자로 확인됐다. 2024 정규시즌 동안 ABS가 판정한 투구는 약 55,026개였고, 이 중 오심으로 분류된 사례는 단 21건이었다. 정확도 99.96%라는 수치다. KBO가 자체 시스템 검증을 통해 발표한 추적 성공률도 99.9%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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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첫해에는 혼란도 있었다. 초기에 설정된 스트라이크존이 기존 심판 시절보다 다소 높다는 불만이 선수들 사이에서 나왔다. KBO는 이를 수용해 2025시즌부터 스트라이크존을 하향 조정했다. 기존 상단 56.35%, 하단 27.64%에서 각각 0.6%포인트씩 낮춰 상단 55.75%, 하단 27.04%로 바꿨다. 이 미세한 조정이 2025시즌 투고타저 전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2026년에는 1군에서 완성 단계에 접어든 ABS를 퓨처스리그(2군 리그) 전 구장에도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1군과 동일한 판정 환경을 2군 선수들에게도 제공함으로써 선수들이 ABS에 익숙한 채로 성장하게 하겠다는 취지다.
■ ABS가 바꾼 야구 생태계, 투수·타자·포수의 재편
기계로 스트라이크존이 통일되자 야구 자체가 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높은 코스 직구의 부활'이다. 과거 KBO 심판들은 스트라이크존 상단으로 날아오는 공을 보수적으로 처리하는 경향이 강했다. ABS 도입 전인 2017년, 높은 코스 직구 투구 비율은 30.7%에 불과했다. 그러나 기계가 상단 경계를 예외 없이 적용하면서 그 수치는 가파르게 올랐다. 2023년 40.5%, 2024년 43.8%, 2025년에는 45.8%까지 치솟았다.
특히 스트라이크존 좌우 상단 코너의 스트라이크 판정 비율 변화가 극적이다. ABS 도입 전 좌측 상단 1.11%, 우측 상단 1.27%였던 수치는 2025년 각각 3.28%, 4.12%로 뛰었다. 투수들이 우타자 몸쪽 높은 코스를 공략할 때 유효 스트라이크로 인정받을 확률이 이전보다 세 배 이상 높아진 셈이다.
이 흐름을 가장 잘 활용한 투수가 SSG 랜더스의 마무리 조병현이다. 그는 2025시즌 리그 투수 중 8번째로 높은 비율(10.0%)의 공을 스트라이크존 상단에 던졌고, 해당 코스의 피안타율은 0.065에 불과했다. 시즌 전체 피안타율(0.179)보다 1할 이상 낮은 수치다. 같은 해 KBO에서 뛰다 MLB 진출에 성공한 드루 앤더슨은 리그 최고 비율(11.9%)의 공을 높은 코스에 쏟아 넣으며 245개의 삼진을 뽑아냈다.
변화에 적응한 투수들이 늘어나면서 삼진 수도 급증했다. ABS 도입 전 5년간 KBO리그 한 시즌 평균 삼진은 1만17개였지만, 도입 이후 두 시즌 평균은 1만925개로 908개 늘었다.
반면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투수들도 있었다. KBO의 대표 사이드암 투수 고영표(kt wiz)는 ABS 도입 원년인 2024년 평균자책점이 4.95까지 치솟았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진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낮은 릴리스 포인트 때문에 높은 코스 공략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사이드암 투수들에게 ABS 스트라이크존은 가혹한 환경이었다. 고영표는 이후 체중 이동 방식을 교정하는 과정을 거쳐 2025시즌 평균자책점 3.30으로 회복했다.
타자들도 초기 혼란을 겪었다. 기존 심판의 존과 달리 높은 코스에서 스트라이크 콜이 빈번하게 떨어지자, 선구안 중심으로 출루율을 끌어올리던 스타일의 타자들이 적잖이 흔들렸다. 2024년에는 타율과 장타율이 높아지는 타고투저 현상이 도드라졌지만, 2025년 ABS 존 하향 조정 후에는 정반대 흐름이 형성됐다. 2025시즌 전반기 리그 타율은 0.258로 전년(0.277) 대비 0.019 하락했고, 평균자책점은 4.91에서 4.20으로 떨어지는 선명한 투고타저가 나타났다.
포수의 역할에도 근본적 변화가 생겼다. 심판의 판정에 영향을 주기 위해 공을 받는 순간 미트를 존 안쪽으로 당기는 '프레이밍' 기술은 ABS 앞에서 무의미해졌다. 낮게 빠지는 공을 받으며 미트가 아래로 덮이는 '덮밥' 동작도 마찬가지다. 포수의 수비 가치 평가 기준 자체가 재편되는 계기가 됐다.
■ 팬과 시청자의 시선…달라진 직관과 중계 풍경
야구장에서 가장 먼저 바뀐 건 분위기였다. 주심의 볼 판정이 내려지는 순간 관중석에서 터지던 야유와 항의가 줄어들었다. 특정 심판의 이름을 부르며 스트라이크존 성향을 지적하는 팬들의 문화도 자취를 감췄다.
당시 KBO 박종철 심판위원은 "ABS 도입 이후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있었던 팬들의 불만 표출이 거의 없어졌다. 팬들이나 선수단 입장에서는 국내 야구가 공정해졌다고 느끼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중계 화면도 달라졌다. 각 투구마다 타자의 스트라이크존 박스와 공의 궤적이 그래픽으로 표시되면서 시청자들은 판정 결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도입 초기에는 타자의 키와 무관하게 동일한 박스 이미지가 사용됐지만, KBO가 3D 시뮬레이션 영상과 추적 데이터를 방송사에 제공하면서 점차 개인별 맞춤형 시각화로 개선됐다.
공정성에 대한 신뢰 상승은 관중 수 증가로 이어졌다. 2024년 KBO리그 관중은 1,000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ABS 도입이 인기 상승의 유일한 요인은 아니지만, 판정 시비 감소가 경기 속도감을 끌어올리고 팬들의 경기 몰입도를 높였다는 평가가 많다. KBO는 2025년 목표치를 1,200만 명으로 설정했다.
■ 충격의 반전… '기계는 옳았다, 사람이 문제였다'
ABS가 야구에 공정의 시대를 열었다는 찬사가 이어지던 2024년 4월, 그 공정성의 심장부에서 도저히 있어선 안 될 일이 벌어졌다.
사건은 2024년 4월 14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삼성 라이온즈 경기.
주심 문승훈은 ABS가 스트라이크로 판정한 공을 볼로 선언했다. NC 강인권 감독이 어필을 제기하자 4명의 심판이 그라운드 한가운데 모여 약 8분에 걸친 논의를 벌였다. 이 대화가 중계 마이크에 그대로 포착됐다.
이민호 심판 (팀장·1루심): "음성은 분명히 볼로 인식했다고 들으세요. 아셨죠?
이거는 우리가 빠져나갈 구멍은 그거밖에 없는 거예요. 음성은 볼이야. 알았죠?"
ABS 시스템이 스트라이크라고 알려줬음에도 자신들이 잘못 들은 것처럼 거짓으로 말을 맞추자는 제안이었다. 이 대화는 전국에 생중계됐다.
KBO는 파문이 확산되자 허구연 총재 주재로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이후 4월 19일 해고와 정직 등 징계 결과가 발표됐다.
이 사건이 야구계에 남긴 메시지는 분명했다. ABS라는 기술 자체는 오작동하지 않았다. 스트라이크를 스트라이크로 정확히 판정했다. 그 결과를 무력화하려 한 것은 사람이었다. 기계가 공정성을 보장하더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의 도덕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시스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 MLB의 참전, 글로벌 ABS 시대의 개막
이러한 KBO리그의 실험이 세계 최고 리그를 움직였다. MLB 사무국은 2025년 9월 24일(한국시간) 공식 성명을 통해 "리그 경쟁위원회가 2026년부터 정규시즌 및 포스트시즌 모든 경기에 ABS 도입을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단, MLB가 채택한 방식은 KBO의 '전면 ABS'와 다르다. MLB는 '챌린지 방식'을 선택했다. 기본적으로 심판이 여전히 볼·스트라이크를 선언하되, 판정이 의심스럽다고 판단한 선수(타자·투수·포수 중 한 명)가 즉각 이의를 신청하면 ABS 데이터로 재판정하는 방식이다. 각 팀은 경기당 2회의 챌린지 기회를 가지며,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횟수를 유지하고 기각되면 차감된다. 감독은 챌린지 요청 권한이 없다. 연장전에는 매 회 1회씩 추가로 부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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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가 전면 도입 대신 챌린지 방식을 택한 데는 선수 노조의 반발이 결정적이었다. 포수들의 반대가 특히 강했다. ABS가 전면 도입되면 프레이밍 능력이 더 이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그 영향으로 포수들의 연봉이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반면 심판 노조는 100% 기계 판정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MLB가 2025 시범경기 중 진행한 설문에서 팬의 72%는 챌린지 시스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69%는 전면 도입을 원했다. 288경기를 대상으로 한 테스트 데이터에 따르면 경기당 평균 4.1회의 챌린지가 신청됐으며 판정 소요 시간은 평균 57초로 집계됐다.
ABS 도입 필요성은 기존 심판의 한계에서도 확인된다. MLB 심판들의 볼·스트라이크 판정 정확도는 약 94% 수준이다. 경기당 200개 이상의 투구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이는 매 경기 6~10개의 오심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MLB 내 퇴장 사유의 61.5%가 볼·스트라이크 판정과 관련됐다는 통계도 ABS 도입 논의를 가속화한 배경이 됐다.
■ WBC와의 엇박자, 혁신이 닿지 않은 국제 무대
MLB조차 ABS를 도입한 2026년, 세계 최고 수준의 야구 국가대항전인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여전히 인간 심판의 판정에 의존하고 있다. 2026년 3월 개막하는 WBC에서는 ABS가 사용되지 않는다. 미국 매체 디 애슬레틱의 보도에 따르면, 이유는 단순하다. WBC에 참가하는 대부분의 국가가 ABS를 운영한 경험이 없고, 선수들이 시스템에 익숙해질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WBC 본선 경기가 열리는 마이애미의 론디포 파크와 다이킨 파크에는 이미 ABS 인프라가 구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채택이 보류됐다.
이 결정은 KBO리그 선수들에게 명백한 불이익을 안긴다. 2년 넘게 ABS 환경에서 훈련하고 경쟁해 온 KBO 소속 투수들은 이미 높은 코스 공략을 중심으로 투구 레퍼토리를 재편했다. 그런데 WBC 무대에서는 심판마다 스트라이크존이 달라지는 인간 판정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2025년 한·일 평가전에서 KBO 선수들이 일본 심판의 스트라이크존에 적응하지 못하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역설적인 장면이다. 세계 최초로 ABS를 도입한 리그의 선수들이 국제 대회에서는 오히려 '시스템 적응 역량'이 아닌 '인간 심판 파악 능력'을 먼저 갖춰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단, 이번 대회에서 MLB가 처음 ABS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시스템이 정착되면 다음 WBC에서는 도입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 그럼, ABS 다음 이닝은 무엇인가?
허구연 KBO 총재는 2026년 신년사에서 ABS, 피치클락, 피치컴, 비디오 판독 등 주요 경기 운영 시스템을 "실험이 아닌 완성 단계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2024년과 2025년이 변화의 기초를 다지는 시기였다면, 2026년은 그 기반 위에서 실질적 성과를 내야 하는 해라는 것이다.
기술적 확장도 예고됐다. ABS 개발사 스포츠투아이는 현재의 투구 추적 기능을 넘어, 수비 위치와 주루 상황까지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필드추적시스템(FTS)의 고도화 작업을 추진 중이다. 향후에는 투수-타자 분석에서 나아가 수비 시프트, 주자 동선, 타구 속도와 방향까지 데이터화해 AI 기반 전략 분석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일부 KBO 구단에는 이미 이를 활용한 비공개 AI 분석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스트라이크존의 경계 설정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타고투저 혹은 투고타저의 방향이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이 두 시즌을 통해 입증됐다. ABS는 공정하고 일관된 시스템이지만, 그 존의 기준값 자체는 인간이 결정해야 한다. 정답은 없으며, 지속적인 검토와 조정이 필요하다.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들의 경쟁력 약화 문제도 논의 테이블 위에 올려야 한다. 구속이나 구위 중심의 전략이 유리해지는 ABS 환경에서, 독특한 투구 폼을 가진 투수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야구의 다양성과 기술의 공정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 이것이 ABS 시대 KBO가 안고 가야 할 숙제다.
로봇이 심판을 대신하는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한국이 열고, 미국이 따라붙었다. 이제 국제 야구의 표준이 어디로 향할지, 그 다음 이닝은 곧 시작된다.
김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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