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목)

    이슈 유가와 세계경제

    유가 급등·보험 중단·불가항력 선언…'삼중고' 직면한 韓기업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법무법인 율촌, 이란 전쟁 전망·기업 대응 모색

    호르무즈 해협 봉쇄…유가 65→110달러 폭등

    이근욱 교수 "1~2주 내 종료? 최소 4주 지속"

    석화업계 불가항력 선언…계약서·보험 점검해야

    러시아산 원유제재 완화…실거래 가능성 불투명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우리 기업들이 유가 급등, 해상보험 중단, 불가항력 선언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봉쇄 상황이 최소 4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기업들의 선제적 법률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데일리

    사진=로이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8일 법무법인 율촌이 개최한 ‘테헤란에 봄은 오는가?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중동 정세 변화와 우리 기업의 대응 방안’ 세미나에서 이근욱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1~2주 안에 끝날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며 변수가 많아 정확한 시점을 예측하기 어렵다면서도 “최소 4주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이란을 공격해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 이란은 즉각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맞대응했고 유가는 공격 직전 배럴당 65달러에서 어느 새 110달러를 돌파했다.

    “전쟁 끝낼 사람이 없다”…종전 시나리오 불투명

    이 교수는 하메네이 사망이 오히려 전쟁 종결의 걸림돌이 됐다는 역설적 분석을 내놨다. 그는 “전쟁을 끝내려면 누군가가 싸우고 있는 부대에 중단 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그 명령 권한을 가진 사람이 사라졌다”며 “미국이 원하는 시점에 일방적으로 종전을 선언하기 어렵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메네이 사망 후 이란 전문가회의는 지난 8일 하메네이의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제3대 최고지도자로 선출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권한이 명문 규정상 있는 것과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것은 굉장히 차이가 있다”며 “모즈타바가 최고지도자로 선출됐지만 혁명수비대 등 강경파를 통제할 정도의 정치적 힘은 아직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마치 대통령 탄핵 후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며 “시간이 지나면서 모즈타바가 지도력을 인정받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지금은 아직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이번 전쟁이 ‘전략 없는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개전 초 “4주 안에 끝낸다”고 했다가 “무한정 지속할 수 있다”, 다시 “거의 다 끝났다”고 말을 바꾼 데서 드러나듯 명확한 전쟁 목표 자체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는 “탱고는 두 사람이 춰야 한다(It takes two to tango)는 영어 표현이 있다”며 “이란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려하지 않고 미국이 일방적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어리석은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이란 정권교체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테헤란의 봄은 오기 굉장히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외부 충격으로 정권이 무너지기엔 대안 세력이 충분하지 않고, 각국 정보기관도 정권 붕괴 가능성을 사실상 배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데일리

    이근욱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지난 18일 법무법인 율촌 세미나에서 ‘미국-이란 전쟁의 배경, 경과 및 전망’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법무법인 율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계약서 속 ‘전쟁’ 문구 없어도 불가항력 주장 가능

    국내 석유화학업계에서는 불가항력 선언이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있다. 여천NCC(한화솔루션(009830)·DL(000210)케미칼 공동투자)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중동산 나프타 수급이 막히자 지난 4일 국내 첫 불가항력을 선언하고 생산설비를 최소 가동으로 낮췄다. 이후 한화솔루션, 롯데케미칼(011170), LG화학(051910)도 잇따라 고객사에 불가항력 가능성을 통보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두바이 소재 영국 로펌에서 근무 경험이 있는 신동찬(사법연수원 26기) 법무법인 율촌 국제제재팀장(변호사)는 계약서에 ‘전쟁(War)’ 문구가 없더라도 불가항력 주장이 가능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무력충돌(Armed Conflict)’, ‘적대행위(Hostilities)’, ‘봉쇄(Blockade)’, ‘정부행위(Government Acts)’ 조항이 있다면 이번 사태 적용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재 미국과 이스라엘 모두 이란에 선전포고를 하지 않은 상태여서 법률적으로 ‘전쟁’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향후 분쟁의 쟁점이 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신 변호사는 두 가지 요건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약의 준거법이 한국법인지, 영국법인지, 유엔 국제물품매매협약(CISG)인지에 따라 불가항력 해석이 달라진다. 또 불가항력 요건이 충족된다고 판단했더라도 계약서에 명시된 통지 절차를 반드시 이행해야 효력이 발생한다. 그는 “통지 없이 의무 이행을 중단하면 채무불이행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해상보험 문제도 심각하다. 중동 지역 해상보험사들이 전쟁위험 커버리지를 잇따라 중단·취소하면서 개전 첫 주부터 보험료가 50% 이상 급등했다. 신 변호사는 “보험 가입이 불가능해지면 운항 자체가 금융계약이나 운송계약상 채무불이행 상태가 된다”며 “보험증권 조건을 지금 당장 세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데일리

    법무법인 율촌 국제제재팀장을 맡고 있는 신동찬 변호사가 지난 18일 세미나에서 ‘미국-이란 전쟁과 이란 제재의 향방’,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공급망 교란 관련 법률문제’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법무법인 율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산 원유 ‘기회’이지만 현실적 한계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지난 12일 제너럴 라이선스(GL) 134호를 발표해 제재 선박에 실린 러시아산 원유의 한시적 판매를 허용했다. 유가 안정을 위한 고육책이다. 신 변호사는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숨통이 트일 수 있는 기회”라면서도 “유럽연합(EU)과 영국의 대(對)러시아 제재는 여전히 강화 기조인 데다 금융기관들의 디리스킹(위험 회피) 현상도 살아 있어 실거래로 이어지기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짚었다.

    헬륨·알루미늄·화학비료 등 중동 의존도가 높은 원자재 공급망도 흔들리고 있어 반도체·식품업계까지 파장이 확산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이 교수는 “시간은 이란 편”이라며 “장기전으로 갈수록 이란이 유리한 구도”라고 덧붙였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