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발매를 기념해 무료 공연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BTS THE COMEBACK LIVE|ARIRANG)을 열고 있다. 2026.3.21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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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은 본디 눈물의 노래였다. 고개를 넘으며 삼키던 이별과 한(恨), 나라를 잃은 자의 통곡, 고향을 등진 이의 망향가. 수백 년 동안 이 민요는 한민족의 가슴 가장 깊은 곳, 말로 다 못 할 슬픔이 고여 있는 자리에서 불렸다.
채록된 가사만 수천 수(首). 지역마다 곡조가 다르고, 세대마다 담긴 사연이 달랐지만, 그 모든 아리랑이 공유한 것은 하나였다. 혼자서는 다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노래로 승화시켜온 민족의 집단적 숨결이었다.
그런데 오늘 밤, 광화문 한복판에서 열린 공연을 바라본 관객의 눈물은 달랐다. 과거의 한은 지금의 흥이 되어있었다. 슬픔은 환희로, 고개 너머 어딘가의 체념은 세계를 향한 함성이 되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관객의 기쁨이었고, 벅참이었다. 600년 역사의 돌담 위로 보랏빛 불꽃이 번지던 그 찰나는, 아리랑이 마침내 제 고개를 넘어선 역사적 순간이었다.
3년 9개월의 공백, 그리고 방탄소년단이 돌아왔다. 3년 9개월이라는 지난한 단절과 기다림의 시간을 깨고 완전체로, 대한민국의 심장 광화문으로.
이 기다림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었다. 각자의 군복무를 마치는 동안 세계는 계속 돌아갔고, 트렌드는 수십 번 바뀌었다. 그럼에도 '아미(ARMY)'는 흩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기다림은 더 단단해졌다. 오늘 광화문을 가득 채운 26만명 중에는 팬 카페에서 날짜를 세며 이 날을 기다려온 이들이 있었고,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채 이 자리에 선 해외 팬들도 있었다.
이순신 장군 동상 아래, 임진왜란의 포화도 일제의 수탈도 묵묵히 품어온 경복궁의 돌담 앞. 무대의 포문을 연 것은 화려한 전자음이 아닌,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처연하게 가르는 대금 독주였다.
이내 묵직한 선율이 심장 박동처럼 울리기 시작했고, 옅은 안개 사이로 일곱 청년이 뚜렷한 실루엣을 드러냈다.
수십만 개의 아미밤이 일제히 켜지며 광화문 광장은 단숨에 보랏빛 우주로 변했다. 정규 5집 '아리랑(ARIRANG)'은 그들이 견뎌온 공백의 시간이 빚어낸 결정체다. 불안의 나날을 이들은 화려한 퍼포먼스 대신 침잠과 성찰로 버텼고, 그 내면의 언어로 택한 것이 바로 아리랑이리라.
돌이켜 보면 이 선택은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데뷔 초부터 방탄소년단은 세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팀이었다. 입시 지옥과 취업 절벽, 사회의 기대와 개인의 욕망 사이에서 짓눌리는 청춘의 목소리를 정면으로 담아냈다. 그것이 전 세계 젊은이들의 심장을 건드린 이유였다.
이번에는 그 시선이 더 깊은 곳, 민족의 무의식 속에 오래 잠들어 있던 정서를 향했다. 가장 보편적인 아픔을 이야기하기 위해, 가장 특수한 뿌리로 내려간 것이다.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통과해 환희에 이르는 우리 고유의 미학이, 무대 위에서 2026년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방탄소년단에게 '한'은 머무르는 종착지가 아니라, '흥'으로 폭발하기 위한 찬란한 출발점이었다.
아주경제=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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