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최근 들어 미국에서 ‘꿈’을 이룬 기자들이 너무 많아졌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한 후 2주 동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인터뷰를 한 언론사는 액시오스, 뉴욕타임스, 뉴욕포스트, 워싱턴포스트, 데일리메일, 타임스오브이스라엘, MS나우 등 십수 곳에 달한다. 폭스뉴스에선 이란 전쟁 개시 후 열흘 동안 네 명의 기자가, NBC에서는 첫 주 동안 세 명의 기자가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를 했다.
지금 워싱턴에선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뉴스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10자리 숫자”, 즉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구하기 위해 모두가 혈안이 돼 있다고 디애틀랜틱은 전했다. 로비스트·투자자는 거액의 돈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번호를 거래하고, 기자들은 다른 국가 정상이나 유명 인사 수십 명의 연락처를 줄 테니 트럼프 대통령의 번호와 바꾸자는 제안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전화번호를 알아내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가 어디 쉽겠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지난해 12월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인터뷰를 했던 폴리티코 기자는 인스타그램 영상에서 “믿기 어렵겠지만, 대통령 번호를 눌렀더니 전화 연결 절차나 신원 확인 절차도 없이 바로 그가 직접 받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의 전화 공세를 즐긴다고 한다.
한국은 대통령에게 직접 질문할 수 있는 기자회견이 자주 열리지 않고, 대통령이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자신을 줄기차게 비판하는 언론사까지 골고루 인터뷰에 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할 만한 부분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길어야 10분 남짓에 불과한 전화 통화는 대통령의 기분과 일정에 크게 좌우된다. 소셜미디어 메시지는 정제되지 않은 의식의 흐름처럼 보인다.
대통령의 발언은 의도된 신호를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즉흥적으로 떠들어대는 사람의 이야기’와 같아진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말을 하면 할수록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인지, 이 전쟁이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오히려 더 파악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는 첫날 액시오스 인터뷰에서 “2~3일 안에 전쟁을 끝낼 수도 있다”고 했다가, 다음날 뉴욕타임스에는 “4~5주 정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CBS에 “전쟁은 거의 끝났다”고 선언한 시각, 국방부 소셜미디어 계정에는 “전쟁은 이제 시작”이라는 메시지가 올라오고 있었다.
‘전쟁의 안개’라는 표현이 있다. 적의 의도와 능력, 심지어 아군의 상황조차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상태에서 벌어지는 불확실성과 혼란을 뜻한다. 그런데 지금의 이란 전쟁에서는 또 다른 안개가 드리워져 있다. 군사 작전과 외교 전략은 일관된 메시지와 신호 관리가 핵심임에도, 너무 많은 말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지기 때문에 생기는 혼란, 이른바 ‘트럼프의 안개’다. 이 안개가 걷히고 나면 눈앞에 어떤 결과가 펼쳐져 있을지 두려울 따름이다.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 |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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