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진 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
황경진 교수 |
현대인의 바쁜 일상 속에서 수면 부족은 흔한 일이다. 대부분은 며칠 잠을 설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주일에 세 번 이상, 3개월 넘게 잠들기 어렵거나 자주 깨고 자고 나도 개운하지 않은 상태가 지속된다면 이는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만성 불면증’이라는 질환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만성 불면증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2024년 약 76만 명에 이르며 최근 5년 사이 16% 이상 증가했다. 이는 수면 문제가 개인의 불편을 넘어 공중보건학적 부담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신경과적 관점에서 불면증의 핵심은 ‘뇌의 과각성 상태’다.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낮 동안 활동하며 축적된 뇌의 대사 노폐물을 제거하고 기억을 정리하며 신경 회로를 재정비하는 회복 과정이다. 그러나 불면증 환자의 뇌는 밤에도 충분히 꺼지지 않는다. 교감신경이 항진되고 각성 신호가 과도하게 유지되면서 몸은 침대에 누워 있지만 뇌는 낮처럼 깨어 있는 상태가 지속돼 신경계가 휴식 모드로 전환되지 못한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단기적으로는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지고 판단력이 둔해진다. 장기적으로는 더 광범위한 건강 문제와 연관된다. 만성 불면증은 심혈관계 질환의 발생 및 사망 위험을 유의하게 높이며 고혈압과 뇌중풍(뇌졸중)의 주요 위험 인자로 작용한다. 또한 우울증, 불안장애 등 정신질환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국내 불면증 환자 중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비율은 여전히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환자가 불면증을 스스로 해결하려 하거나 치료를 미루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뇌의 과도한 각성 상태가 조절되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반복되고 그로 인한 불안과 긴장이 다시 수면을 방해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특히 수면에 대한 집착과 ‘오늘도 못 자면 어쩌지’라는 예기불안은 불면증을 만성화하는 주요인이다.
만성 불면증 치료의 기본은 인지행동치료다. 잘못된 수면 습관과 수면에 대한 비합리적 인식을 교정해 뇌가 스스로 수면 리듬을 회복하도록 돕는 방법이다. 다만 인지행동치료만으로 충분한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초기 증상이 심해 빠른 완화가 필요한 경우에는 약물 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
기존에 널리 사용되는 벤조디아제핀계와 비(非)벤조디아제핀계 수면제는 뇌 전반의 신경 활동을 억제하는 진정 작용을 통해 수면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약제는 단기적으로 수면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 사용 시 의존성, 인지 기능 저하, 주간 졸림, 고령자의 낙상 위험 등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따라서 환자의 연령, 동반 질환, 복용 기간 등을 고려한 신중한 처방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새로운 기전의 수면제인 오렉신 수용체 길항제(DORA)가 주목받고 있다. 오렉신은 뇌 시상하부에서 분비돼 각성을 유지하는 데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불면증 환자에서는 이 각성 신호가 밤에도 과도하게 활성화된 상태가 지속된다. DORA는 이러한 각성 신호를 선택적으로 억제해 뇌의 ‘각성 스위치’를 낮추고 자연스럽고 생리적인 수면 상태로 진입하도록 돕는다. 이는 불면증 치료가 ‘억지로 재우는 방식’에서 ‘선택적 각성 조절’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DORA는 기존 수면제에 비해 의존성과 내성 위험이 낮고 다음 날 아침의 몽롱함이나 인지 저하 측면에서도 비교적 우수한 안전성을 보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는 불면증 치료가 단순한 수면 유도에서 나아가 환자의 삶의 질과 안전까지 고려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수면은 선택이 아니라 뇌 건강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생리 과정이다. 반복되는 수면 문제를 단순한 생활 습관의 문제로 치부하기보다 조절되지 않는 ‘뇌의 과각성’이라는 신경계 기능 이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특히 3개월 이상 불면 증상이 지속된다면 전문적인 평가와 치료를 통해 만성화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는 단순히 잠을 유도하는 치료를 넘어 과도한 각성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뇌가 충분히 휴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접근이 필요하다.
황경진 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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