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은 비실명화·모자이크 원칙…기준 속 '회색지대' 논란
마약왕 박왕열 송환 |
(서울=연합뉴스) 최원정 양수연 기자 = 25일 필리핀에서 국내로 송환된 '마약왕' 박왕열(48)의 실명은 정작 경찰과 법무부 등 수사기관의 보도자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경찰은 이날 언론에 관련 보도자료를 잇달아 배포하면서 박왕열의 이름을 '박○○'으로 비실명화 처리했다. 박왕열의 신병을 넘겨받은 경기북부경찰청은 "신상정보 공개위원회를 개최해 공개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무부 역시 박왕열이 귀국하기 직전 송환 과정을 담은 사진과 영상을 공개하면서 언론에 "반드시 피의자 '블러(가림) 처리' 후 배포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마스크를 쓰지 않은 박왕열의 맨얼굴이 언론 생중계를 통해 그대로 공개되며 법무부의 공지는 무용지물이 됐다.
이미 박왕열은 2016년 10월 한국인 3명이 숨진 '사탕수수밭 살인 사건'의 주범으로 필리핀 경찰에 검거된 직후 현지 언론에 실명과 얼굴이 공개됐다.
2022년 인기리에 방영된 디즈니+ 드라마 '카지노'의 모티브가 되며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으나 '공식적'으로는 신상정보가 베일에 가려진 셈이다.
이 같은 '해프닝'은 결국 현행 신상공개 제도에 있는 '회색지대'에서 빚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으로 압송된 '필리핀 마약왕' 박왕열 |
현재 범죄자의 신상 공개는 '특정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중대범죄신상공개법)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각 지방경찰청과 지방검찰청은 변호사와 교수 등 외부 위원들이 참여하는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통해 강력범죄 피의자의 신상정보 공개 여부를 정한다. 심의위원 과반이 찬성하면 피의자의 신상이 대중에 공개된다.
유죄가 확정된 성범죄자의 경우에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법무부와 여성가족부의 행정 절차를 거쳐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에 신상정보가 공개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실적인 부분과 법률적인 부분은 엄연히 다르다"며 "정부나 수사기관이 (박왕열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한 적은 없고 마스크 착용 역시 본인 의사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일본 도쿄에서 벌어진 한국인 남성의 교제 살인 사건 당시에도 현지 언론은 40대 피의자의 이름과 나이 등 신상을 공개했다. 체포 직후 경찰차로 호송되는 장면이 공개되며 얼굴도 대중에 알려졌다.
그러나 정작 이를 인용한 한국 언론 대부분은 피의자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이름 역시 '박모씨'로 비실명화했다. '고도의 해악성을 가진 중대 범죄' 등에 대해선 실명 보도가 가능하다는 게 대법원 판례지만 여전히 추상적인 탓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는 국민의 알 권리 등의 공익을 고려해 언론이 자율적으로 피의자의 신상 정보를 공개한다"며 "저마다 기준이 다른 경찰보다는 여론을 반영한 언론의 판단이 더 객관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으로 압송된 '필리핀 마약왕' 박왕열 |
반면 이미 신병이 확보된 피의자의 신상정보 공개가 어떤 공익적 목적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내세워 말초적 호기심만 채우는 '범죄 상업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다.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아직 기소되지 않고 공적 기관의 판단도 이뤄지지 않았다면 기본적 절차를 기다려줘야 한다"며 "취약한 상황에 놓인 피의자의 인격권과 무죄 추정의 원칙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away77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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