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전세계’라는 활동명으로 마약을 유통했던 박왕열이 25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성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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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스로를 ‘전세계’라 칭한다. ‘전 세계 모든 마약을 다 구해줄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는 필리핀에서 텔레그램을 통해 국내에 엄청난 양의 마약을 퍼뜨리는 조직의 총책이었다. 필리핀 유흥도시 앙헬레스에서 잔조(ZANJO)라고 불리던 남성은 사설 카지노를 운영하며 불법 도박 사업을 했다. 그리고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카지노>의 모티브가 된 ‘사탕수수밭 살인사건’의 범인 박왕열. 놀랍게도 이 세 명은 동일 인물이다.
박왕열의 범죄 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난 건 2016년 10월이다. 국내에서 투자 사기를 저지르고 필리핀으로 도주해온 남녀 3명에게 접근해 거액을 투자받은 그는 이들이 투자 수익금 배분을 요구하자 사탕수수밭에서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했다. 그는 사건 발생 37일째에 검거됐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하지만, 진짜 황당한 일은 이때부터다. 그는 2017년엔 이민자 수용소 천장을 뚫고, 2019년엔 화장실 창문을 통해 도주했다. 두 번째 탈옥 땐 다시 체포될 때까지 1년간 도주 생활을 했고, 마약 유통에 손댄 시기도 이때였다. 2022년 징역 60년을 선고받고 현지 교도소에 갇혀서도 그는 국내 마약 시장을 흔들었다. 그가 수감된 교도소가 돈만 있으면 ‘황제 생활’이 가능한 데다 휴대전화 사용도 자유로우니 독버섯 같은 마약을 퍼뜨릴 수 있었다. 상상을 넘는 ‘황제 수감’이다.
한국 법무부는 박왕열의 신병 인도를 필리핀 정부에 수차례 요청했지만, 현지 형집행 우선 원칙에 가로막혀 지지부진했다. 60년형이니, 그가 살아서 한국 땅을 밟을 일은 없어 보였다. 요원했던 박왕열의 국내 송환은 이재명 대통령이 이달 초 한·필리핀 정상회담에서 ‘임시 인도’를 요청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25일 새벽, 박왕열이 마침내 한국으로 끌려왔다. 정부가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칠 곳은 없다’는 걸 보여준 것 같아 통쾌하다. 인천공항에서도 그는 취재진을 향해 “넌 남자도 아녀”라는 폭언부터 내뱉었다.
국내 송환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마약을 계속 유통시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를 한국 법정에 세워 흉악한 죄상을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범죄자가 호화 생활을 하며 발 뻗고 자게 하는 건 정의가 아니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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