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는 주변의 의견에 귀를 열었다.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 속에 난상토론이 벌어지는 엑스콤 회의에서 그는 좀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상정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두고 소모적일 만큼 상세하게 다뤘다. 케네디는 자신의 존재가 참모진의 솔직한 발언을 막고 예스맨을 만들 것을 우려해 종종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한 참석자에게는 “무조건 내 의견에 반대하고 허점을 찾아내라”는 임무를 맡겼다.
냉전기 세계 패권을 다투던 소련의 벼랑 끝 전술에 맞선 케네디는 군사 대응 요구를 뿌리쳤고, 소련의 미사일 철수와 미국의 쿠바 불침공 약속 등을 교환하면서 위기를 넘겼다. 이러한 케네디의 지도력은 미국 역사학자 셀던 M 스턴이 지은 <존 F 케네디의 13일>이란 책을 통해 상세히 알려졌다. 케네디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여러 갈래지만 약 2주간에 걸친 쿠바 미사일 당시 보여준 리더십은 참모진의 집단 지성과 결합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이란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여준 리더십은 케네디와 매우 대조적이다.
미국 언론 보도를 보면 트럼프는 균형감을 상실했으며 참모진은 그에게 직언하지 못했다. 최근 사임한 미국의 대테러 수장은 “이스라엘 고위 인사들과 일부 미국 언론이 허위 정보 캠페인을 통해 전쟁 여론을 조성했다”고 폭로했으며 트럼프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정보에 휩쓸렸다는 보도도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집권 2기 보좌진은 트럼프의 뜻을 말리는 것이 아니라 실현하는 데 자신들의 임무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1기 행정부 당시에는 짐 매티스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트럼프를 제어하는 참모들이 존재했으나 2기에는 그러한 인물들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참모를 견디지 못하는 독단적 성격은 거리낌 없는 권력 행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사람의 생사가 걸린 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한 국가가 내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결정이다. 그리고 전 세계가 촘촘히 엮인 현실에서 글로벌 시스템을 흔들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전쟁은 당사국만의 문제일 수 없다. 트럼프가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급소인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가능성을 간과한 것이나 이란의 항전 능력을 과소평가해 신정체제가 붕괴할 것으로 낙관한 것은 오판의 사례들이다.
트럼프는 전쟁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도 오락가락했으며, 대이란 군사행동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미국 여론이 60%를 넘는다. 앞뒤 재지 않은 전략적이지 못한 전쟁이라면 미국이 군사적으로는 이길지 몰라도 정치적·외교적으로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을 다른 나라들에 부담시키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승리를 선언할지도 모르겠다.
국가 지도자가 편향된 정보나 편견, 충동에서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린다면 재앙이다. 열린 자세로 의견을 수렴하는 자세를 지녀야 주변에 레드팀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다. 지도자의 망상과 독단, 참모진의 견제 기능 상실이 어떤 참사로 이어지는지는 우리도 12·3 내란 사태를 통해 경험한 바다.
미래의 미국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 미국의 민주주의와 대외관계 시스템이 구조적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 속에서 힘이 지배하는 질서로 가고 있는 상황을 바로잡을 해법도 나오기 힘든 형편이다.
전쟁이 어떤 식으로 끝나든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듯하다. 국내에서도 유가 상승을 넘어 에너지와 연계된 원자재 공급망까지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호르무즈 파병 요구에서 보듯 한·미 동맹의 성격도 공동 운영으로 바뀌고 있어 안보상 이익은 줄고, 부담해야 할 비용은 커지고 있다. 트럼프가 안겨준 국가적 과제가 겹겹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위신과 신뢰를 잃은 트럼프가 앞으로 어떤 오판을 해 전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지 걱정이다. 위대하지는 않더라도 상식적인 지도자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요즘이다.
오관철 사회경제연구원장 |
오관철 사회경제연구원장 okc@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