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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7 (금)

    K뷰티에 밀린 '뷰티공룡'…로레알이 엔디비아 손잡은 이유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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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혁기 기자]

    지금까지 로레알의 성공 공식은 공격적인 '인수ㆍ합병(M&A)'이었다. 유명 브랜드를 잇달아 M&A하는 방식으로 덩치를 키워왔다. 이런 로레알이 최근 인공지능(AI)과 손을 잡았다. 화장품 연구실에 AI 기업 엔비디아의 첨단 기술을 들여 신제품 개발의 체질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성장전략을 M&A에서 AI로 피벗(Pivotㆍ전략 전환)하겠다는 건데, 뷰티 공룡이 '낯선 카드'를 꺼내 든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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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레알이 엔비디아의 AI 플랫폼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사진 | 엔비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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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뷰티 산업 부동의 1위인 프랑스 기업 로레알(L'Oréal)이 최근 뜻밖의 기업과 손을 잡았다. 인공지능(AI) 열풍을 주도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 엔비디아다. 3월 20일(현지시간) 열린 세계 최대 AI 콘퍼런스 'GTC 2026'에서 엔비디아는 로레알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파트너십으로 로레알은 엔비디아의 화학ㆍ소재 혁신 AI 플랫폼인 '엔비디아 알케미(ALCHEMIㆍ이하 알케미)'를 전면 도입한다. 이를 통해 화장품 R&D의 핵심인 신소재 발굴과 제형(약물의 물리적 형태) 개발 과정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목표다.


    ■ 로레알이 선택한 AI 솔루션 = 로레알이 뷰티와 거리가 먼 반도체 기업의 AI 솔루션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시행착오'에서 찾을 수 있다. 뷰티 업체들은 신소재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겪는다. 최적의 비율을 찾아내기 위해 연구원들이 방대한 화학 성분의 조합을 일일이 배합하고 테스트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될 수밖에 없는데, 로레알도 다르지 않았다. 스킨ㆍ메이크업ㆍ향수 등에서 매년 3400개 이상의 신규 배합을 개발하는 이 회사는 연간 13억 유로(약 2조2612억원)가량을 R&D에 투자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로레알이 이번 협업으로 R&D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물리적 실험 과정을 컴퓨터 속 가상 환경으로 옮겨 진행하는 '예측 과학'을 통해서다. 알케미에 탑재된 AI 엔진은 수많은 화학 분자가 원자 수준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상호작용하는지를 사전 시뮬레이션을 통해 파악한다.


    이 과정에서 특정 성분들이 결합했을 때 자외선 반사 효과가 얼마나 높아지는지, 피부에 닿았을 때의 발림성과 보존력이 얼마나 좋아지는지 등 수천개의 변수도 동시 분석할 수 있다.


    이 사전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연구진은 무수한 후보 물질 중 최적의 분자 구조를 선별해 실제 연구실 실험을 진행한다. 사람이 수작업으로 수백번 반복해야 했던 과정을 디지털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한 셈인데, 그만큼 연구 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자외선 차단제의 분자 조합을 선별하는 것만 해도 기존 방식보다 최대 100배가량 빨라졌다는 게 로레알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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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로레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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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프로젝트는 피부 과학의 핵심 영역 중 하나인 자외선 차단과 피부톤 관리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춘다. 물리적 배합의 한계로 완벽히 해결하기 어려웠던 '백탁 현상(피부가 하얗게 뜨는 현상)'이나 끈적임 문제를 AI가 도출한 새로운 분자 구조로 풀어내겠다는 구상이다. 향후 1~2년 내에 AI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출시하는 게 로레알의 목표다.


    바바라 라베르노스 로레알 연구ㆍ혁신ㆍ기술 담당 부사장은 GTC 2026에서 "엔비디아와의 협력은 로레알 연구소에 새로운 차원을 열어줄 것"이라며 "AI 기반 분자 시뮬레이션을 핵심 활성 성분에 적용함으로써 소비자를 위한 효과적인 제품 개발을 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 M&A에서 AI로 = 그렇다면 로레알이 R&D 프로세스를 뜯어고쳐가면서까지 혁신을 꾀하려는 이유는 또 뭘까. 단순히 개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만일까. 로레알이 걸어온 길을 잠깐 훑어보자.


    이 회사의 핵심 전략은 '브랜드력을 높이는 것'이다. 로레알은 십수년 전부터 프라다, 미우미우, 에이솝 등 누구나 알 법한 유명 브랜드를 꾸준히 인수ㆍ합병(M&A)하는 방식으로 신성장동력을 얻어왔다. 국내에서 'K-뷰티 성공 신화'로 불렸던 색조 화장품 브랜드 3CE(쓰리컨셉아이즈)를 2018년 6000억원에 사들인 것도 이 기업이다. 2025년 기준 40개 글로벌 브랜드를 보유 중이다.


    이를 발판으로 로레알은 실적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 2021년 매출은 322억8000만 유로(약 56조1933억원)로 전년 대비 15.3% 증가했고, 이듬해인 2022년 매출도 382억6000만 유로로 두자릿수 증가율(18.5%)을 이어갔다.


    박종대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5월 보고서에서 "로레알의 사업 전략은 명확하다"면서 "M&A를 통해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하고, 글로벌 1위 인프라와 시너지 효과를 통해 견조한 매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같은 로레알의 성장세에 최근 브레이크가 걸렸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실적 증가율이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해 로레알의 매출은 440억5000만 유로(약 76조7095억원)로 전년 대비 1.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는 최근 로레알이 유럽 다음으로 큰 시장인 북아시아에서 부진을 겪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24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률(-3.4%)를 기록한 게 시작점이다.


    특히 '제2의 안방'이라 불리던 중국 시장에서 고전 중인데, 주요 원인으론 최근 중국 MZ세대를 강타한 '궈차오國潮(애국 소비)' 열풍이 꼽힌다. 이로 인해 프로야(Proya), 퍼펙트 다이어리 등 중국 가성비 브랜드가 급부상하면서 서구권 브랜드가 장악했던 중국 매출 상위권 순위가 중국 브랜드 중심으로 재편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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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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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레알이 빠른 트렌드를 주도하는 'K-뷰티'에 밀린 것도 성장세가 꺾인 원인 중 하나다. 국내 뷰티 업계에 따르면 한국 중소 화장품 업체들은 3~6개월마다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는데, 이는 1년 이상 걸리는 로레알이 따라잡기 힘든 속도다.


    이 때문인지 지난해 상반기 기준 로레알의 신제품 매출 기여도는 전체의 1%포인트에 그쳤다. 로레알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1년부터 전사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추진 중이다. 여기엔 신제품 출시 주기를 기존 18개월에서 6개월로 단축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로레알이 엔비디아와 손을 잡은 건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수천번의 실험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가상 실험실'을 통해 수익성을 꾀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뷰티 트렌드에도 즉시 대응하겠다는 거다.


    유통 컨설팅 전문업체 김앤커머스의 김영호 대표는 "최근 유통 업계에선 제품이 불과 몇주간 유행하는 패드(FadㆍFor a day) 현상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데, 앞으로 이런 현상이 점점 심화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면서 "로레알도 이같은 찰나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AI를 적극 도입하는 결단을 내린 듯하다"고 분석했다. AI와 손잡은 로레알의 '승부수'는 과연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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