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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7 (금)

    [K-VIBE] 신종근의 'K-리큐르' 이야기…BTS의 '아리랑'과 우리술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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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연합뉴스

    방탄소년단(BTS), 광화문 무대에서 컴백
    (서울=연합뉴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발매를 기념해 무료 공연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BTS THE COMEBACK LIVE|ARIRANG)을 열고 있다. 2026.3.21 [사진공동취재단] photo@yna.co.kr


    지난 21일, 전 세계의 이목이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향했다. K-팝의 상징을 넘어 세계 문화의 아이콘이 된 방탄소년단(BTS)이 서울 한복판 광화문 광장에서 컴백 쇼를 선보였다.

    수많은 화려한 수식어를 뒤로하고 그들이 전면에 내세운 타이틀은 다름 아닌 '아리랑'(Arirang)이었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가 세계적인 파괴력을 가진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그들의 목소리를 타고 넘어간 '아리랑'은 인종과 국경을 넘어 수천만 팬들의 가슴에 맴돌고 있다.

    현대적 비트 위에 얹어진 방탄소년단의 아리랑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이 오래된 민요가 가진 끈질긴 생명력에 새삼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아리랑'의 어원에는 여러 학설이 존재하지만, '크고, 밝고, 아름답다'는 뜻을 지닌 '아리'와 고개 혹은 사랑하는 임을 뜻하는 '령'(嶺)이나 '랑'(郞)이 합쳐져 '아름다운 임' 또는 '밝고 큰 고개'를 의미한다는 해석이 널리 알려져 있다.

    아리랑에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애절한 '한'(恨)의 정서가 깔려 있으면서도, 그 슬픔을 노래와 춤으로 이겨내려는 '흥'(興)이 공존한다. 슬픔에 머물지 않고 생명력으로 승화시키는 태도는 우리 민족 특유의 정서이며,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에 전하고자 했던 에너지일 것이다.

    이 한과 흥의 정서를 맛과 향으로 고스란히 담아낸 '아리랑 술'을 소개하고자 한다.

    술을 감상할 때, 맛과 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색'이다. 투명한 잔에 술이 따라지는 순간, 빛과 액체가 만나 만들어내는 일렁임은 그 자체로 훌륭한 키네틱 아트(Kinetic Art)다.

    이름에 아리랑을 새겨 넣은 우리술 중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선사하는 것은 전라남도 진도의 명주, 진도아리랑영농조합의 '진도 아리랑 홍주'다.

    연합뉴스

    진도아리랑영농조합의 '진도 아리랑 홍주'
    [제조사 홈페이지 캡처]



    알코올 도수 40도를 넘나드는 이 독한 증류주는 이름 그대로 매혹적인 짙은 다홍빛을 띤다. 인공 색소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이 깊고 투명한 붉은색은 지초(芝草)라는 약재에서 우러나온 자연의 색이다.

    하얀 사기잔이나 투명한 유리잔에 홍주를 조심스레 따르고 빛을 비춰보면 알 수 있다. 잔 속에서 타오르는 듯한 붉은빛은 마치 남도의 붉은 노을 같기도 하고, 혹은 척박한 땅에서 모진 세월을 견뎌낸 붉은 동백꽃 같기도 하다.

    홍주의 붉은색은 아리랑이 품고 있는 뜨거운 생명력(흥)을 닮았다. 하지만 입안에 털어 넣었을 때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그 알싸하고 독한 기운은, 고개를 넘으며 흘렸을 민초의 눈물(한)을 연상시킨다.

    시각적으로는 한없이 화려하지만, 미각적으로는 묵직하고 깊은 슬픔을 위로하는 술이다. 진도 아리랑 홍주는 한과 흥을 액체로 치환한 한 폭의 강렬한 추상표현주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진도 아리랑의 정취는 강렬한 증류주에만 머물지 않고 서민의 친숙한 탁주로도 이어진다. 진도주조장에서 빚어내는 '진도아리랑 생막걸리'와 '진도아리랑 울금 생막걸리'가 그 주인공이다.

    연합뉴스

    아리랑 울금 막걸리 여러 지역의 아리랑 생막걸리
    [제조사 홈페이지 캡처]



    특히 '밭에서 나는 황금'이라 불리는 진도 특산물 울금을 더한 울금 생막걸리는 매혹적인 샛노란 빛깔을 자랑한다.

    잔에 따르는 순간 시각적인 즐거움부터 선사하는 이 노란 탁주와 붉은 홍주를 나란히 두고 보면, 마치 한 폭의 강렬한 오방색 단청이나 팝아트 작품을 보는 듯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화려한 색을 빼고 쌀 본연의 담백함을 살린 뽀얀 '진도아리랑 생막걸리' 역시, 척박한 땅을 일구던 남도의 구수한 흙내음과 흥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다.

    강렬한 진도의 술과는 또 다른, 투박하지만 묵직한 매력을 지닌 아리랑 술도 전국 곳곳에 숨어 있다. 경북 영덕 칠보산주조의 '칠보산 아리랑 생막걸리', 강원도 원주의 '삼봉표 아리랑 막걸리', 그리고 충남 청양 '아리랑주조'의 술이다.

    걸음을 경상북도 영덕으로 옮겨보면, 동해안의 시원한 바닷바람과 백두대간의 정기를 맞고 익어가는 '칠보산 아리랑 생막걸리'를 만날 수 있다.

    맑은 물과 쌀로 빚어낸 이 탁주는 억지로 꾸며내지 않은 풋풋함 속에 자연스러운 단맛과 깊은 풍미를 간직하고 있다. 이 탁주를 한 사발 시원하게 들이켜면, 태백산맥의 험난한 고개를 넘으며 불렀을 경상도 특유의 씩씩하고 경쾌한 아리랑 가락이 입안에서 맴도는 듯하다.

    일반적인 뽀얀 막걸리를 상상했다면 삼봉표 아리랑 막걸리의 잔을 받고 놀랄지도 모른다. 원주 지역의 쌀 토토 미와 전통 앉은뱅이 밀 누룩을 고집하여 빚어낸 이 술은 짙은 색을 띤다. 인공 감미료를 배제해 단맛이 적은 대신, 곡물 본연의 걸쭉하고 묵직한 질감과 기분 좋은 산미가 입안을 가득 채운다.

    양조장 이름이 '아리랑'인 아리랑주조는 다양한 술을 빚고 있지만 그중 '겨울소주'는 뚝심 있는 기다림의 산물이다. 칠갑산 자락의 맑은 물과 햅쌀로 빚는 이 증류식 소주는 이름 그대로 '겨울에 빚어 이듬해 겨울에 완성'된다. 발효한 원주를 맑게 증류한 뒤, 다시 반년 이상의 오랜 저온 숙성을 거쳐야 비로소 세상에 나온다.

    연합뉴스

    아리랑 주조의 겨울소주
    [제조사 홈페이지 캡처]



    화려한 기교 없이 묵묵히 시간을 견뎌내며 완성된 이 술은, 척박한 삶 속에서도 끈질기게 이어져 온 슴슴하고도 깊은 아리랑 가락을 똑 닮았다.

    2026년 봄, 방탄소년단은 '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동시대의 가장 첨단에 선 K-팝 무대와 수백 년의 비법으로 빚어낸 전통술은 묘하게 맞닿아 있다. 오늘 밤은 방탄소년단의 새로운 '아리랑'을 들으며, 붉은빛이 황홀한 아리랑 홍주나 부드러운 아리랑 막걸리를 한 잔 따라두는 것은 어떨까.

    가장 오래된 우리의 유산이 가장 현대적인 문화로 교차하는 순간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 전시기획자 ▲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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