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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8 (토)

    [성장 일기] 선행학습에 갇힌 초등 5, 6학년 여아, 성장의 시계가 멈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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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승찬 하이키한의원 대표원장

    이데일리

    [박승찬 하이키한의원 대표원장] 초등학교 5, 6학년 교실의 풍경이 예전과 사뭇 다르다. 이제 막 사춘기의 문턱에 들어선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학업의 무게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교육 현장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에 중학교 과정을 시작하고, 6학년이 되면 중등 과정을 모두 마치는 이른바 ‘초등 의대반’ 식의 초고속 선행학습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지식이 쌓여가는 속도와 비례해, 정작 가장 왕성하게 자라야 할 아이들의 키 성장은 눈에 띄게 둔화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신체 변화가 빠른 여아들에게 있어 과도한 학습 부담은 단순한 피로를 넘어 성장의 문을 일찍 닫게 만드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의학적으로 초등학교 5학년 전후는 여아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성장의 변곡점이다. 대개 이 시기에 사춘기가 본격화되며 급성장기를 맞이하지만, 동시에 성장판이 닫히면서 성장의 유효기간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금쪽같은 시간에 투입되는 과도한 학습 스트레스다.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존을 위해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이는 성장호르몬의 작용을 직접적으로 방해하는 천적과 같다. 낯선 중등 수학 문제를 풀며 밤 늦게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아이의 몸 안에서는, 성장에 쓰여야 할 에너지가 스트레스를 방어하는 데 전용되며 정작 뼈와 근육을 키울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특히 학기 초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신체적·정신적 소모가 극에 달하는 시기다. 상급 학교 진학을 앞두고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선행학습은 아이들의 자율신경계 균형을 무너뜨린다. 숙면을 취해야 할 밤 시간에 뇌가 쉬지 못하고 긴장 상태를 유지하면 성장호르몬 분비는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실제로 진료실에서 만나는 아이들 중에는 학원 숙제와 평가에 시달리며 소화불량, 두근거림, 불면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신학기 긴장 증후군’이 만성화되면 아이의 몸은 성장을 뒷전으로 미루게 되고, 결과적으로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잠재 키보다 5~10cm 이상 손해를 보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한다.

    사춘기가 빨라진 요즘 여아들에게는 ‘시간’이 가장 귀한 자원이다. 초등학교 5, 6학년은 성장의 마지막 스퍼트를 올릴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이 시기에 학업 성취에만 매몰되어 신체 발달을 방치하는 것은, 나중에 아무리 큰 비용을 들여도 되돌릴 수 없는 매몰비용을 발생시키는 것과 같다.

    부모는 아이의 학습 진도표만큼이나 성장 곡선의 기울기에 예민해져야 한다.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선행학습으로 인해 기혈 순환이 정체되고 있지는 않은지, 성장의 에너지가 학습의 중압감에 억눌려 있지는 않은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진정한 실력은 건강한 신체라는 바탕 위에서 꽃을 피운다. 초등 고학년 시기에는 무리한 선행보다는 아이가 충분한 숙면을 취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발산하며, 정서적 안정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성장은 일방통행이며 결코 기다려주지 않는다. 학업은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서도 보충할 기회가 있지만, 키 성장의 골든타임은 오직 지금 이 순간뿐이다.

    우리 아이들이 빽빽한 문제집 사이에서 숨 가쁘게 허덕이기보다, 평온한 마음으로 자신의 키를 쑥쑥 키워나갈 수 있도록 부모와 교육자의 인식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아이의 평생 건강과 자신감을 결정짓는 성장의 키를 학습의 욕심과 맞바꾸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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