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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뉴스 깊이보기] 모로코의 뒤늦은 ‘아랍의 봄’, 스페인 난민 위기 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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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지난 주말 유럽 도시들을 잇따라 공격한 테러리스트 대다수는 모로코 출신이었다. 모로코는 최근 계속된 반정부 시위로 굳건했던 왕권도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이번 테러를 계기로 정세 불안이 가속화되면 유럽 난민위기에 새 촉매가 될 수 있다는 위험성도 가지고 있다.

21일(현지시간) 엘파이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현재 스페인에 거주하는 모로코 출신 인구는 전체 외국인 455만명 중 16.4%다. 2003년 6% 수준에서 점점 늘어 가장 큰 이주민 공동체가 됐다. 스페인의 무슬림은 2% 정도에 그쳐 프랑스(7.5%)나 독일(5.6%)에 비하면 적고, 파리의 방리유처럼 북아프리카 출신 무슬림들만 따로 고립돼 모여사는 지역도 없다.

하지만 191명이 사망한 2004년 마르리드 기차 폭파 테러범 대부분이 모로코 출신 청년들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북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이슬람 무장세력이 스페인을 위협할 위험성은 커져있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11월 당국이 마드리드 인근에서 테러를 계획한 혐의로 체포한 외로운 늑대 청년 역시 모로코 출신이었다.

북아프리카 무슬림들이 나무배를 타고 스페인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 이탈리아 등 최근 2~3년 새 위기를 겪은 다른 유럽보다 오랜 난민의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 당시에도 일자리를 찾아, 더 나은 삶을 위해 유럽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모로코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가난과 내전을 겪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도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로 탈출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스페인으로 온 난민은 2006년 4만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스페인은 앞서 불법이민 행렬을 겪은 뒤 모로코 등과 협력해 (난민)흐름을 줄이는 노력을 해왔고, 전반적으로 효과를 봤다”면서 “그러나 상황이 변한 것은 지난해 10월 모로코 국내 정세가 급변하면서다”라고 보도했다.

2011년 ‘아랍의 봄’도 비켜갔던 모로코에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촉발된 시점이다. 북부 항구도시 알호세이마의 서른 한살의 노점상 무흐친 피크리가 정부에 압수됐던 자신의 생선을 되찾으려다 분쇄기에 빨려들어가 잔혹하게 사망하면서 시작된 움직임이었다. 특히 알호세이마가 위치한 리프 지역은 북아프리카의 원주민 베르베르인들이 다수인 곳이다. 피크리의 죽음은 그동안 이 지역 사람들이 느꼈던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과 정치적 억압, 지역 격차, 경제적 불평등과 높은 실업률 등 수십년간의 좌절감을 분노로 폭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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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부 과격시위는 카사블랑카와 수도 라바트 등지로 옮아갔고, 올해부턴 지역에 병원과 교육 등 인프라 확충과 일자리 창출 정책, 정치범 석방 등의 요구로 이어졌다. 모하메드 6세 모로코 국왕은 지난달 30일 즉위 18주년을 맞아 반정부 시위로 체포된 65명을 사면하기도 했으나 시위 도중 돌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졌던 22세 청년이 지난 8일 사망하면서 정부의 탄압조치에 대한 반발은 더 커진 상황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8일 미국 외교정책연구원(FPRI)의 비쉬 삭티벨 연구원 기고를 통해 이 같은 분위기가 성역이었던 왕권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시위대가 내걸었던 문구를 ‘신과 국가, 왕’에서 ‘신과 국가, 국민’으로 바꾸는 등 막강한 입헌군주제인 모로코에서 왕의 독재에 대한 의구심이 처음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삭티벨 연구원은 “군주제의 신성함, 비대한 정부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 혼란에 대한 두려움으로 균형을 맞췄던 모로코 정세의 핵심 요소들을 유지하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모로코의 불안정한 정세는 최근 지중해를 통한 난민 유입을 막으려는 유럽의 움직임과 맞물려 스페인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올 들어 바다를 통해 스페인에 도착한 이주자는 838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배다. 스페인이 1956년 모로코에서 철수한 이후에도 스페인령으로 유지하고 있는 모로코 북단의 고립도시 세우타와 멜릴랴 국경을 넘어 밀입국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지난해 16만명이 도착한 그리스는 올해 1만2000명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새 거점이 된 이탈리아는 올해 바닷길로 9만7000명이 들어와 이미 지난해 수준(10만명)까지 근접해 있다. 이에 이탈리아 정부가 지중해에서 구호단체들이 벌이는 구조활동 단속에 나서면서, 리비아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루트 대신 모로코에서 스페인으로 닿는 루트를 선택하는 난민과 인신매매 조직들이 늘어난 것이다.

국제이주기구(IOM) 대변인 조엘 밀먼은 AP통신에 “스페인에 매월 1500~2000명이 도착하고 있다”며 “그리스 난민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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