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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新 명인열전]“제주 돌담쌓기 전통 계승… 그림같은 돌집 짓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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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빛나예술학교 설립 조환진 씨

동아일보

제주 돌담이 새롭게 조명을 받으면서 전통 돌담 쌓기를 계승해 온 조환진 씨도 부쩍 바빠졌다. 그는 본인의 돌집 등을 직접 지으면서 반듯함, 자연스러움, 튼튼함 등 돌담 쌓기에 필요한 부분을 익혔다고 한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제주를 돌, 바람, 여자가 많은 삼다(三多)의 섬이라고 지칭하는 말 속에는 여자의 강인한 모습이 부각된 반면 남자들은 놀고먹는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밭담은 물론이고 돌로 만든 집, 묘를 둘러싼 산담 등에 이르는 돌 작업은 모두 남자의 몫이었습니다. 돌, 바람, 남자의 섬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주 제주시 한림읍에 돌빛나예술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조환진 씨(43)는 18일 학교 인근에서 돌집 짓기에 여념이 없었다. 돌집을 보수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시작한 일인데 공사를 하다 보니 거의 새로 짓는 수준이다. 25∼30kg인 돌덩이를 수시로 나르고 정과 망치로 다듬고 꿰맞추느라 땀이 흥건했다. 거친 돌 작업을 견딜지 의문이 들 만큼 체구가 작지만 손 마디마디가 상당히 두꺼웠다. 그는 “돌을 만지다 보니 근육이 생기면서 두껍고 거칠어졌다”고 말했다. 조 씨는 전통 방식의 돌담 쌓기 명맥을 잇고 있는 대표적인 ‘돌챙이’(석공을 뜻하는 제주어)다.

화산섬 제주는 돌 문화가 섬 문화의 핵심일 정도로 돌을 빼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땔감으로 쓰인 귀한 나무 대신 지천으로 널린 돌을 무한자원으로 이용하면서 의식주 전반에 걸쳐 독특한 생활 민속 문화를 형성했다. 얼기설기 쌓은 돌담은 보리, 조 등 밭작물의 새싹을 보호하고 밭과 밭의 경계 역할을 했다. 소나 말로부터 무덤을 지켰고 적의 침입을 막는 방어벽이기도 했다. 해녀들이 작업 후 쉬는 공간인 ‘불턱’도 돌로 에워 쌓는다. 전체 길이가 2만 km 이상으로 추정되는 제주 밭담은 거무튀튀한 현무암을 꾸불꾸불 쌓은 모습 때문에 ‘흑룡만리’로 불리기도 한다.

○ 전통 돌담 쌓기 계승


돌담은 제주 사람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자산이지만 도로 개발, 건물 신축, 농지 정리 등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 허물어진 돌담은 자갈로 쪼개지거나 땅속에 묻혔다. 돌담이 있던 자리는 시멘트 벽과 콘크리트가 대신했고 돌담을 쌓던 이들도 자취를 감췄다. 최근 돌담이 다시 등장하기는 했지만 원형에서 벗어난 것이 허다하다. 기계로 깎고 다듬어서 자로 잰 듯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변했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해안에 돌로 쌓은 서귀포시 ‘환해장성’, 제주시 ‘별방진’ 등을 복원했지만 그 또한 본래 모습이 아니다.

옛날 기술로 쌓은 돌담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아질 즈음 조 씨가 혜성처럼 나타났다. 2015년 돌담 쌓기 현장학습을 하는 돌빛나예술학교를 설립했고 제주연구원에서 추진하는 제주밭담아카데미에서 실기를 맡았다. 기술이 남다르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돌담 쌓기 주문이 이어졌다. 조 씨는 명맥이 끊기다시피 한 전통 돌담 쌓기를 다시 살려낸 주역이다. 2013년 제주밭담이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된 데 이어 2014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세계농어업유산으로 등재되며 돌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조 씨의 존재감도 덩달아 상승했다.

제주대 미술학과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돌을 다룬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는 “대학 2학년 때 혼자 강원 정선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본 창밖 풍경에는 돌담이 전혀 없었다”며 “그 순간 돌담이 제주에만 있는 귀한 보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기차 여행 후 돌과 인연이 이어졌다. 사진 동아리에 가입해 돌담을 찍고 그림도 돌담에 집중했다. 졸업 후 2000년 제주시 한경면 ‘생각하는 정원’에 취업해 성범영 원장으로부터 3년 동안 돌담 쌓는 일을 배웠다. 그러다 서귀포시 성산읍 ‘김영갑갤러리’에 찾아가 생전의 김영갑 작가로부터 사진을 배웠다. 그는 당시 갤러리 마당에 돌담을 쌓으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성 원장에게서 반듯하게 쌓기를 익혔다면 김영갑갤러리에서는 물 흐르듯, 바람이 넘어가듯 자연스럽게 돌 쌓는 법을 체득했다.

그 누구보다 최고의 스승은 아버지 조창옥 옹(94)이다. 아버지는 동네에서 이름을 날린 석공이었다. 1980년대부터는 일감이 없어서 농사에 전념했지만 몸은 여전히 돌담 쌓는 기술을 기억하고 있었다. 조 씨는 결혼한 뒤 물려받은 땅에 2005년부터 돌집을 짓기 시작했다. 긴가민가하며 바라보던 아버지는 실제 공사가 시작되자 돌집을 함께 지으며 기술을 전수했다. 조 씨는 아버지에게서 튼튼하고 단단하게 돌을 쌓는 법을 배웠다. 바닥 면적이 90m² 규모인 돌집을 짓는 데 3년이 걸렸다. 돌덩이 3000개가량이 쓰였다. 돌집을 완성할 즈음 돌담 쌓기에 필요한 반듯함, 자연스러움, 튼튼함을 익히면서 어떤 용도의 돌담도 쌓아올릴 자신감이 생겼다.

○ 돌담을 예술작품으로 승화

“우선 기초가 중요합니다. 땅을 단단히 다지고 커다란 돌을 깔아야 합니다. 그 위에 중간 돌을 쌓고, 틈은 자갈이나 작은 돌인 ‘고임돌’로 메웁니다. 옛날 초가에서는 짚과 흙을 섞어서 마감을 했지만 요즘은 현대식에 맞춰 내장재를 씁니다. 천장 높이도 다소 높아요. 외형은 돌담이지만 내부는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꾸밉니다. 직접 지은 돌집이 운치가 있는지 많은 분들이 구경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돌담을 한 줄로 쌓아올리는 ‘외담’이라 할지라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겉이 거칠고 요철이 많은 제주 현무암이기 때문이다. 거친 표면을 이용해 돌끼리 잘 맞물리도록 쌓아놓으면 태풍이나 강한 바람에 흔들거려도 쓰러지지 않고 견딘다. 제주 돌과 달리 육지 돌은 상대적으로 매끈하기에 산성 등에서 보는 것처럼 잘 다듬어서 벽돌처럼 쌓아올린다.

이런 돌의 특성과 역사를 알려줄 석공을 만나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과거 증언을 채록, 정리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조 씨는 올해 3월부터 아버지의 돌 이야기를 매일 10분씩 녹음하고 있다. 연로하지만 기억이 또렷하기에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전부터 아버지는 “책만 보더라도 돌담을 이해하고, 사람들이 직접 쌓을 수 있게 논문을 써라”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조 씨가 지난해 제주대 지리교육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이유이기도 하다. 돌 문화를 깊이 있게 연구하면서 돌담 기술서를 작성할 계획이다.

“돌담과 조경으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돌담 자체가 목표는 아닙니다. 돌담을 주제, 소재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예술작품으로 만들고 싶어요. 돌 조형물에 도전하기도 하면서 작품성이 돋보이는 돌집을 짓고자 하는 꿈이 있습니다.”

▼ “관광객이 쌓는 돌담 체험공원 만들어야” ▼

제주 돌담 활용 방안은…

제주 돌담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교육이나 관광자원 등으로의 활용은 걸음마 단계다. 돌빛나예술학교는 돌담을 체계적으로 체험하는 최초의 공간으로 돌담 쌓기, 돌탑 쌓기, 돌 놀이(비석 치기, 공깃돌 놀이), 고인돌 운반, 돌집 견학 등의 프로그램이 갖춰져 있다. 최근에는 주로 학생 대상 현장학습 위주로 운영하고 있는데 다음 달 5일까지 이어지는 제주여행주간에서는 ‘돌이야기’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 ‘잣질’의 관광자원화를 시도한다. 잣질은 밭에서 나온 잡석 등을 처리하기 위해 넓게 쌓은 밭담 위로 난 길을 뜻하는 제주어로 맹지(진입로가 없는 밭)를 다니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돌이야기 프로그램에서는 잣질을 걷는 특별한 이벤트가 준비돼 있다.

제주도농어업유산위원회가 15, 16일 주최한 제주밭담축제는 올해로 3회째다. 하지만 축제 이후 관광자원으로 이어지는 연속성이 부족해 아쉽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로 창립 49주년인 영국돌담협회와 아일랜드돌담협회처럼 전통 방식의 돌담을 고수하고 보전하는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조환진 씨는 “돌빛나예술학교에서는 돌담 쌓기를 하더라도 끝나면 다시 허물어야 한다”며 “마을 목장이나 공유지를 활용해 관광객이 쌓은 돌담을 남겨두는 체험공원을 조성하면 관광객들에게 다시 방문할 동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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